크리스챤아카데미 주최 평신도 포럼 대담자로 나선 김형석 교수. 뉴스앤조이 박요셉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98)는 백년 가까이 걸어온 인생을 반추하며 수필집 <백 년을 살아 보니>(덴스토리)를 지난해 출간했다. 그는 1960~1970년대 젊은이들에게 '3대 철학자 겸 수필가'로 불렸다. 다른 둘은 동갑내기 김태길 교수(서울대 철학과), 안병욱 교수(숭실대 철학과)다.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다. 세 교수가 여든을 넘겼을 때다. 안병욱 교수가 김형석 교수에게 전화했다. 셋이 일만 하다 늙었으니, 1년에 4번씩 만나 같이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자고 제안했다. 김태길 교수 생각은 달랐다. "이제 떠날 날만 남았다. 지금처럼 떨어져 일하다 누가 가면 그러려니 할 텐데, 지금 정들면 남은 사람이 힘들지 않겠냐"는 것이다.

셋은 그렇게 서로를 존중했다. 얼마 뒤 김태길 교수가 세상을 떠났다. 안 교수는 김형석 교수에게 왠지 김 교수 혼자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몇 년 뒤 안 교수도 김태길 교수를 따라갔다.

김형석 교수는 자신이 이렇게 오래 산 비결은 하나님에게 있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교회를 위해 봉사했으니, 장수를 복으로 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김 교수는 하나님께서 주님의 일을 시키기 위해 생을 허락하셨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요청이 들어오면 해외, 지방을 가리지 않는다. 노구를 이끌고 강단 위에 오른다.

크리스챤아카데미가 2월 8일 주최한 평신도 포럼에서 대담자로 나선 김형석 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김 교수는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리스도를 경험하고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교회가 인권보다 교권·교리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며 본래 정신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했다.

노교수가 전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1시간 계획했던 포럼은 두 시간을 훌쩍 넘겼다. 사회는 강영안 명예교수(서강대 철학과)가 진행했다. 대담을 문답 형식으로 요약해 정리한다.

강영안 교수는 김 교수에게 한국교회가 사람들에게 신뢰를 잃은 이유를 물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교회 나간다고
기독교인 아냐
한국교회,
울타리 치고 지내

강영안(강) / 한국교회는 그동안 민족을 위해 문화, 교육, 의료, 복지 등 여러 분야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최근에는 신뢰를 잃고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왜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김형석(김) /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교회 나가는 사람들'로 생각합니다. 저는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 다수가 진짜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봅니다. 교회에 나가기 때문에 스스로를 기독교인으로 여긴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인은 예수님을 만나 그분의 말씀을 자신의 사명으로 받아들인 이들입니다.

제 신앙의 은사들, 교계에서 많이 활동한 목사들 중에는 말년이 안 좋은 분들이 있습니다. 반면, 목사도 장로도 아닌데 인생을 마칠 때까지 신앙을 지키며 많은 이에게 존경을 받은 평신도도 있습니다. 도산 안창호, 인촌 김성수 선생님이 대표적인 분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 말씀을 자신의 인생관, 진리, 목적으로 받아들이며 살았습니다. 저는 이런 분들이 모인 교회가 많아지면 더 나아질 거라고 봅니다.

예수님 말씀을 교리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교리보다 인권(인간다움)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 계명을 놓고 말씀하실 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게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인권이 계명과 율법보다 소중합니다. 한 사람이 가장 인간답고 자유롭게 해 주는 것이 기독교 정신에 가깝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그동안 너무 울타리를 치고 지낸 것 같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개인을 변화시키고 역사의 변화를 이끄는 교훈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받아들이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이제는 교회가 예수님 말씀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고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역할을 감당했으면 좋겠습니다.

김 교수는 교회 중심주의로 회귀한 오늘날 대형 교회가 사명을 잃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중세 교회는 성과 속을 구분했습니다. 신부, 수녀로 사는 것은 거룩한 삶이고, 농사짓고 아이 키우는 삶은 세속적이라고 여겼습니다. 종교개혁 이후에서야, 루터와 칼뱅이 일상도 하나님 앞에 거룩하다고 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속된 것과 거룩한 것을 나누는 정신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 생각이 궁금합니다.

 / 500년 전 개신교는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올바른 뜻을 찾았지만, 대형 교회가 생기면서 교회 중심주의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나라를 상실하고 교회에만 집중합니다. 예수님은 교회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나라를 위해 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위해 일하라'는 사명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명을 잃은 교회는 앞으로 사람들에게 더 외면받을 것입니다.

사회는 성장하고 발전하는데 교회는 정체하고 있습니다. 설교를 들으면 50년 전이나 요즘이나 똑같습니다. 어느 대학교가 미국 한인 교회 목사들을 부흥회에 초청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 학생이 목사에게 질문했습니다. 무신론자인 사르트르, 카뮈의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목사들은 사르트르, 까뮈를 몰라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교회가 이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니, 이들은 다른 곳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책을 통해 신앙을 가졌습니다. 설교를 통해 신앙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교회 가는 시간도 좋았지만 책을 읽는 시간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교회에서 조금 동떨어진 채 지내왔던 것 같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에서 만난 학자, 기업인들 정말 열심히 삽니다. 주님의 사명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우리들은 인생을 너무 쉽게 보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신앙생활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교회 나오는 사람이 많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인생, 사회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포럼은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1시간 늦게 끝이 났다. 참석자 대다수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하나님나라
잃어버린 교회
사회는 성장
교회는 정체

 / 교회와 성경이 우리 신앙에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까.

 / 하나의 고백을 하고 싶습니다. 사실 저는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교회를 향한 불만, 비판이 전혀 없었습니다. 부산에 피난 왔을 때, 우연히 장로교 총회를 방청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교권과 관련한 문제가 나오니, 그곳에 모인 목사, 장로들이 싸우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지금 나라가 망하기 일부 직전인데 그 모습이 보기 안 좋았습니다. 이후 저는 다짐했습니다. 교회는 교회대로 맡기고, 저는 교회 밖에서 하나님나라를 위해 일해야겠다고.

우리가 교회를 너무 가볍게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모인 곳이 기독교 공동체입니다. 대표적인 게 교회입니다. 그 밖에 병원, 학교, 노동조합 등이 있습니다. 교회는 모체 역할을 합니다. 모체를 맡은 교회가 이후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지 않으려면 사회에 희망을 주고 약한 이를 돌봐야 합니다.

성실한 사람이 경건한 마음을 가지면 신앙밖에 갈 곳이 없습니다. 인간은 성실하게 살다가 경건한 마음을 가지면 겸손해집니다. 그럴 때 신앙이 생깁니다. 다른 교수들이 제게 신앙을 묻을 때가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예화를 들려줍니다. 호수가 잔잔하게 있는데 바람이 불면 수면이 흔들립니다. 그러면 별 그림자 달그림자가 보이질 않습니다. 이후 호수가 잠잠해지면 그림자가 수면에 드리워집니다. 성실하게 살 때에는 내가 나를 믿기 때문에 종교에 문을 두드리지 않습니다. 이후 경건한 마음을 갖게 되면 신앙을 갖게 됩니다. 신앙밖에는 갈 데가 없습니다.

 / 선생님이 생각하는 신앙을 간단하게 정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 교회에 나가는 것,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사명을 성실히 수행하는 게 중요합니다. 주님을 만나면서 나 자신이 성장해야 합니다. 사회의 변화를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지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목사, 장로, 집사 같은 직분은 상관없습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한평생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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