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국민연금연구원이 성직자의 노후 준비 수준이 매우 열악하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연구원이 1월 31일 발표한 '성직자 노후 보장 실태와 국민연금 가입 제고 방안'(유희원·한신실)에 따르면, 목회자는 일반인과 비슷한 70세 나이에 은퇴하면서도 여가나 질환을 대비할 수단이 미흡하다.

국민연금연구원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통합,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목회자 262명을 표본 삼아 1:1 면접 방식으로 2016년 4월부터 7월까지 조사를 실시했다. 설문 결과, 국민연금연구원은 목회자의 노후를 보장할 만한 수단이 딱히 없다고 지적했다. 일반 직장인이라면 필수적으로 가입하는 국민연금. 목회자는 의무 가입 대상이 아니다. 설문에 응한 목회자 중 34.7%만이 국민연금에 가입했다고 밝혔다.

가장 큰 문제는 돈이다.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목회자 62.8%가 '경제적 여력이 없어서'라고 응답했다. 25.7%는 종교인이라 근로소득이 없다고 답했다. 나머지 10.4%는 교단이 은급(연금)을 보장하기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설문 대상 목회자의 67.9%는 현재 은급금을 내지 않고 있다고 응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다. 국민연금연구원 보고서 갈무리

국민연금연구원은 사적 연금제도인 교단 은급에 노후를 기대는 것은 매우 불안하다고 지적했다. 장애·사망·질환 같은 위험에 대처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했다. 목회자를 노후 보장 '취약 집단'으로 분류했다.

안정적인 노후를 보장받으려면 은급 기금과 공적 연금인 국민연금을 연계해야 한다고 권면한다. 일례로 영국과 미국의 목회자는 두 제도를 연계한 '다층적 연금제도'를 시행한다.

영국과 미국의 경우, 목회자는 납세 대상으로 분류된다. 근로소득을 내고 국민연금에도 당연히 가입한다. 은퇴 후에는 납세 기록을 토대로 정부에서 연금을 받고, 교단이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다층적 연금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공적 연금이 중심이 되고, 사적 연금은 보충재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가톨릭도 공적 연금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까지 특례 가입 사업장 적용 등의 방법으로 가톨릭 사제 50% 이상을 국민연금에 가입시켰다. 교단과 사제가 절반씩 연금을 부담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공적 연금의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국민연금연구원은 "성직자 대부분은 면세 기준 이하의 소득을 가지지만, 일반 근로자와 동일한 과세 및 보험료 부과 체계로 편입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지니고 있어 (국민연금을) 수용하지 못한다"고 했다. 2018년부터 종교인 과세가 시행되나 목회자의 소득은 기타소득으로 분류되며 국민연금에 강제적으로 가입하지 않아도 된다.

65.2% "여유 없어 은급 못 내"
수십 억 전별금 남의 이야기
군소 교단 목회자 노후 '빨간불'

목회자 노후를 책임지는 교단의 은급 제도를 살펴보자. 현재 한국교회에서 은급 정책을 시행하는 교단은 총 8곳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통합·고신과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예수교대한성결교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여의도)다.

그러나 대다수 목회자는 은급 기금을 제대로 납부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목회자 262명 중 1/3(32.1%)만 기금을 내고 있다고 응답했다. 의무적으로 은급재단에 가입해야 하는 감리회 목회자도 41.9%에 그쳤다. 가장 큰 원인은 역시 '돈'이다. 은급 기금을 제대로 납부하지 못하는 이유로도 65.2%가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를 꼽았다.

목회자의 노후 기금을 관리하는 은급재단도 문제를 겪고 있다. 기금 손실과 수익률 악화, 비리 의혹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1,600억 원의 기금을 불법으로 운용한 예장통합 연금재단 관계자는 구속된 채 재판을 받고 있다. 예장합동 은급재단은 2003년 기금으로 불교계 납골당을 매입했다. 이 과정에서 자금 유용 의혹을 낳았고, 14년째 자체 조사를 벌이고 있다. 감리회는 위험성이 높은 펀드에 투자해 수익을 냈으나, 2008년 금융 위기를 맞으며 50억 손실을 입었다.

주요 교단들은 은급재단을 설치해 운용하고 있다. 대부분의 교단이 목회자 가입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실제 납부하는 목회자는 그리 많지 않다. 국민연금연구원 보고서 갈무리

일부 교회에서는 목회자에게 연금 대신 퇴직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교회 규모가 클수록 퇴직금 액수는 커진다. 일례로 충현교회는 김성관 목사에게 전별금 25억 원을 줬다. 삼일교회는 성추행으로 사임한 전병욱 목사에게 주택 구입비 등의 명목으로 13억 원을 줬다. 지방에 있는 중형 교회 목회자가 수억 원 퇴직금을 받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례는 1% 목회자의 이야기다. 전별금은 한 교회에 20년 이상 시무해야 주어지는 '원로목사' 직함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형 교회와 미자립 교회 목회자에게 전별금은 언감생심이다. 은퇴 이후 생계유지를 위해 폐지를 줍는 목사도 있다고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목회자의 노후 보장 제도를 개선하는 게 시급해 보인다. 국민연금연구원은 "국내 주요 종교 성직자들은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 노후 소득 보장 제도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높으며, 또한 종교 단체에서 제공하는 자체적인 노후 보장 제도 역시 급여 수준이나 적용 범위 측면에서 상당히 열악하고, 개인연금이나 가족 지원 역시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양상이 소규모 교단 소속 성직자들에게는 훨씬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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