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미국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2일(현지 시간) 재임 첫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게 표를 몰아준 사람들 앞에서 작정한 듯 발언을 이어 갔다.

"교회의 정치 참여를 금지하는 존슨 수정헌법(Johnson Amendment) 조항을 '완전히 파괴(totally destroy)'하겠다. 종교 대표들이 처벌받을까 두려워 (원하는 바를)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다.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겠다. 종교의 자유는 신성한 권리지만 오늘날 미국에서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정부는 종교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힘을 기울이겠다."

존슨 수정헌법 폐기 약속
대통령 선거공약
복음주의 기독교인 낚은 미끼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존슨 수정헌법'은 세금 면제 혜택을 받는 교회 혹은 비영리단체가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이다. 재산세·취득세·등록세를 면제받는 교회에서 목사가 설교 중 특정 정당 혹은 후보를 지지하면 면세권을 박탈당할 수 있다. 1954년 린든 존슨(Lyndon Johnson) 상원의원이 발의했고 초당적 지지를 받아 통과됐다.

대통령 당선 후 처음 참석한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존슨 수정헌법' 파괴를 외친 트럼프 대통령. NBC 뉴스 갈무리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나온 존슨 수정헌법 폐기는 뜬금없는 발언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운동 당시 공공연하게 존슨 수정헌법을 폐기하겠다고 밝혀 왔다. 대선을 불과 세 달 앞둔 2016년 8월 11일, 미국 남부 플로리다주에 지역 목회자 부부 700여 명이 모였다. '미국 회복 프로젝트'(American Renewal Project)가 개최한 행사에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도 참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만약 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가장 먼저 '존슨 수정헌법'을 완전히 제거하겠다"고 밝혀 참석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다음 날, 그는 기독교계 방송 CBN 뉴스에 출연해 자신의 발언이 일회성이 아님을 확인했다. CBN은 근본주의 기독교 진영 목사 팻 로버트슨(Pat Robertson)이 설립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는 기독교 케이블 방송사다.

CBN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교회에) 세금을 면제해 주는 501c3항(존슨 수정헌법)은 교회에 큰 타격을 입혔다. 이 조항은 그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나쁜 말이 아닌 좋은 말을 하는 위대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설교하지 못하도록 했다. 만약 내가 (이 법안을) 폐기할 수 있다면 종교 전체로 봤을 때 위대한 일이고, 나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에게, 종교 자유를 원한다면 3개월 뒤 모두 투표소에 나오라고 독려했다.

트럼프의 호소가 먹힌 것일까. 실제로 2016년 11월 8일 대통령 선거에서 플로리다주는 트럼프를 선택했다. 최대 격전지 중 하나였던 플로리다주 선거인단 29명을 모두 트럼프가 가져갔다.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이 플로리다주에서 승리를 거둔 것과 대조적이었다. 또 다른 격전지로 예상됐던 오하이오주·펜실베이니아주도 트럼프의 손을 들었다.

미 전역 동성 결혼 합법화
차별·혐오 발언 제재하는 분위기
부글부글 끓던 기독교 민심
트럼프 만나 폭발

근본주의 기독교계는 오바마 대통령 재임 8년 동안 큰 상처(?)를 입었다. 전면 반대하던 동성 결혼 합법화가 전국 단위에서 이뤄진 것이다. 동성 결혼 합법화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업적 중 하나로 손꼽히지만, 보수 기독교인들에게는 반갑지 않은 일이었다. 기독교 색채가 짙은 남부 바이블벨트(bible belt)에서도 강제적으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자 기독교인과 목사들이 크게 반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존슨 수정헌법' 폐기를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블룸버그> 기사 갈무리

현장에서 위기감을 느낀 목사들은 급기야 존슨 수정헌법을 무시하는 집단행동에 이르렀다. 미국 중간 선거가 있기 한 달 전인 2014년 11월 4일, 미국 일부 교회를 중심으로 '강단 자유 주일'(Pulpit Freedom Day)을 열었다. 친공화당 성향 자유수호연맹(Alliance Defending Freedom)이 주최한 행사였다. 강단에서 원하는 바를 자유롭게 설교하자는 취지였지만, 사실상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고 민주당 후보를 비난하는 설교가 주를 이뤘다.

존슨 수정헌법은 세금을 면제받는 교회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일을 금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 법안 때문에 교회가 면세 혜택을 박탈당한 경우는 1995년 한 차례에 불과하다. 이후 보수 교계 목사들은 동성애·낙태·이슬람 반대라는 큰 줄기 속에서 자신들의 정치적인 발언을 강화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보수 기독교계를 의식한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무슬림 7개국 출신자들의 입국을 90일 동안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보란듯이 백악관에서 기도도 했다. 백악관 공식 홈페이지에 있던 LGBTQ(성소수자를 아우르는 단어) 이슈 페이지도 없앴다. 이를 보며 일부 한국 기독교인들은 물론 교계 언론까지 "하나님이 하셨다"며 트럼프를 치켜세운다.

보수 기독교인을 등에 업고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미국 내에서 반발하는 국민의 눈총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당장 '무슬림 7개국 이민자 입국 금지 행정명령'은 연방법원의 결정으로 백지가 됐다. 시애틀 연방법원 제임스 로바트(James Robart) 판사는 2월 3일, 트럼프의 행정명령 집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백악관은 지난 1월 31일 발표한 공식 성명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운동에서 언급했듯이 LGBTQ의 권리를 지지하고 존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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