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은 구약학자다. 미국 유니언신학교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세인트루이스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든신학교(Eden Theological Seminary) 교수와 학장을 거쳐 1986년부터 컬럼비아신학교에서 구약신학을 가르쳤고 2000년 은퇴했다. 진보적인 개신교단 연합그리스도교회(United Church of Christ) 목사이기도 하다.

컬럼비아신학교 명예교수인 브루그만은 그동안 100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예언자적 상상력>·<안식일은 저항이다>(복있는사람), <구약 개론>·<구약신학>·<성경이 말하는 땅>(기독교문서선교회), <텍스트가 설교하게 하라>·<구약의 위대한 기도>(성서유니온) 등을 썼다.

캐나다 교계 신문 <UC옵저버>는 지난해 12월 월터 브루그만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전문을 번역해 싣는다. 원문 바로 가기 - 기자 주

-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을 향한 당신의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공적 의제는 신앙에 더해지는 사안이 아니라 복음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우리 대부분은 사적인 문제에 매달려 있다. 성·낙태·동성애 같은 문제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이 사안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핵심 이슈는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핵심 이슈는 공적·정치적·경제적 정의다. 정의는 예수님의 사역, 구약의 예언적 전통에서도 중심에 있었다. 예언적 전통이 따르고 있는 토라 전통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우리가 개인의 안락함을 위해 그동안 성경을 잘못 읽도록 배웠다고 본다.

-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어떻게 오독하고 있는지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대부분 사람은 성경이 개인적 행복과 웰빙, 죽었을 때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 도덕적으로 사는 법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건 그런 것이 아니다. 예언자들은 도덕적 선생이었지만 그들이 진짜 설파한 것은 사회 도덕이었다. 예언서 아무 곳이나 펴 보라. 예언자들은 언제나 과부·고아·이민자·빈자에 대해 말한다. 그들은 임금, 불공평한 저울, 경제를 왜곡하는 탐욕에 대해 말한다. 그들은 불평등이 결국 파멸로 이끌 것이라 말하는데, 이는 피할 수 없는 메시지다. 그러나 우리가 평소 성경을 읽는 방법이, 이런 주요한 관점을 개인의 안락보다 덜 중요하고 덜 가치 있는 것으로 바꾸고 있다.

월터 브루그만은 현대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오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SMU퍼킨스신학대 기사 갈무리

- 이런 이야기는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것 같다.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라 불린 적 있나.

언제나 그렇다. 내 대답은, 자본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를 주제로 대화하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논의해야 할 부분은 '이웃 됨'이다. 실제로 주변국의 경제적 관행과 경제정책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까 논의해야 한다. 특정한 경우에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 불리는 것을 혼합해야 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고 본다. 성경이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부분은 '이웃 됨'에 대한 것이며 정치·경제적인 부분에서도 나타난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가 이웃과 선을 위해 어떻게 돈과 권력을 지역적으로 혹은 더 넓게 쓸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 '넓게'라는 말은 이웃의 정의를 국제적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뜻인가.

물론이다. 지구에 있는 인류 전체를 이웃으로 보는 게 예언자적 관점이다. 사유화(Privatism)는 권력과 자원을 가진 몇몇이 자신들의 작은 오아시스를 만들고, 다른 사람은 올 수 없게 펜스를 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널드 트럼프의 벽도 그것의 실례다. 그것은 우리가 늘상 시도하던 일이다. 의료보험 제도로, 학교·주거 문제 등에서 (사유화를) 시도했다. 경제적인 문제조차도 다른 사람과 공유할 필요 없는 보호 구역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20세기를 거치면서 배운 것은 사유화된 구역을 보호하기 위한 총, 개, 군대가 충분치 않았다는 점이다. (이 시스템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저항의 수단으로 묘사했다.

안식일을 지키는 행위는, 탐욕 가득한 극심한 경쟁이 우리 삶을 규정하지 못한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내가 자주 말하듯이, 내 첫 요구는 (주일에) 전기를 끊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지 않는다. 우리 삶이 하루 24시간, 일주일 중 7일 모두 '접속돼' 있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언가 놓치는 것, 뒤쳐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면서 여유가 없다고 한다. 탐욕스러운 행위에서 얼마나 멀어질 수 있는지가 우리 행복을 결정하는 진정한 요인이라 생각한다.

-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이사야서 43장 19절이라 알고 있다. 예언자는 '새로운 일'을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라 묘사한다. 이 세계를 향한 당신의 새로운 비전은 무엇인가.

내 비전은 모든 사람이 위엄·안전·행복이 보장되는 삶에 다다를 수 있는 경제 개념을 포함한다. 이것은 나의 신앙고백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만큼, 다른 사람의 신앙고백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새로운 휴머니즘을 포함한다. 미국을 비롯해 그 누구도 다른 나라를 괴롭힐 수 없는 새로운 국제주의를 의미한다. 건강하고 생성적이며 복원되는 방향으로 우리 사회 관계의 모든 것이 재평가되는 것을 의미한다. 큰 비약처럼 보이지만, 마틴 루터 킹 2세가 "나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말할 때 이것을 뜻한 것이라 생각한다.

- 지난 3월 이든신학교에서 열린 '퍼거슨 이후' 컨퍼런스에서 강의했다. 인종차별과 정의를 어떻게 생각하나. (2014년 8월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경찰이 쏜 총에 18세 흑인 청소년이 사망한 일이 발생했다. 피해자가 항복 자세로 두 팔을 들고 있던 것이 알려지면서 퍼거슨시에서는 연일 시위가 열렸다 - 기자 주)

사법 체제와 경찰 시스템이 개혁돼야 하는 것이 정의의 문제라는 것에 이견이 없다. 그 모든 것들이 인종차별주의 범주에 너무 오래 있었고 더 이상 이렇게 놔둘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일을 해야 하며 나는 그것이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예언자적 임무에서 자라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 실제적으로 얘기해 보자.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공적 분야에서 이런 문제에 열정이 있는 리더십을 세우기 위해 투표의 힘을 보여 줘야 한다. 교회는 인종 간 경계선을 허물기 위해 장기적인 대화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단순하게 좋은 일 하는 것으로만 끝낼 수 없다. 서로의 이야기를 진실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하고, 시간을 헌신해야 한다. 개인적인 상호작용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와 똑같지 않은 사람들이 가진 이야기도 우리 것처럼 여길 수 있게 하는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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