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무덤 속에 누운 예수가 '손가락 욕'을 날리고 있는 미술 작품을 본 적 있는가. 바로 한스 홀바인이 그린 '무덤 속 예수의 시신(The Body of The Dead Christ In The Tomb, 1521作)'이다. 이 작품을 보고 많은 이가 충격에 빠졌다. 중지를 뻗고 있는 예수의 손 모양도 그렇지만 '예수의 시신'에 머물러 있는 '죽음'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탓이 크다. <세 번째 세계 – 우리가 몰랐던 그림 속 시대와 역사>(새물결플러스) 저자 김채린은 이렇게 말한다.
"이 그림이 충격적인 이유는 너무나도 사실적이기 때문이다. 이제 막 죽음이 도착한 몸과 그 몸이 누워 있는 관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는 듯한 그림은 너무나 생생하기만 하다. 벌어진 입과 헝클어진 머리카락, 온기가 빠져나간 피부, 마른 나뭇가지 같은 손과 발. 거기에 과감한 구성까지 더해져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충격이 배가된다. 십자가에 매달린 흔적만 아니라면 누군들 저 시체를 예수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63쪽)
소위 욕으로 인식되는 무덤 속 예수의 제스처는 고대 그리스 때부터 존재했다고 한다. 저자가 '교회에 날리는 손가락'이라고 해석하는 이유다. 예수에 대한 당대의 주된 미술 작품이 초월적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성화(聖畫)였던 만큼 '무덤 속 예수의 시신'은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도스토옙스키가 <백치>에서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저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오히려 신앙을 잃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 "그들은 이 시체를 보면서 어떻게 순교자가 부활하리라고 믿을 수 있었을까?"라고 내뱉는 장면은 예사롭지 않다. 그만큼 이 작품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라는 시대의 변화를 잘 담고 있다.
이 작품을 그린 한스 홀바인은 사실적인 초상화를 남긴 인물로 유명하다. 1497년 태어나 1543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종교개혁 한복판에서 살았다. 종교개혁을 빼놓고 그의 그림이나 삶을 설명하기 어렵다. 홀바인과 그의 작품을 다루는 챕터명이 '인생의 8할이 종교개혁인 화가의 인생'인 이유다.
세간에 잘 알려져 있는 '르네상스 기둥 옆 로테르담의 에라스뮈스 초상'도 그의 작품이다. 그는 '무덤 속 예수의 시신'의 경우처럼, 적극적으로 교회를 비판하는 그림을 그려 밥줄이 끊겼다. 그러자 에라스뮈스는 영국의 토마스 모어에게 보내는 추천서를 써 주기도 한다.
<세 번째 세계>는 위와 같이 '그림 속 시대와 역사'를 파헤친다. 저자는 6명의 화가를 호명해 그들의 작품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되살린다. 책 제목인 '세 번째 세계'는 '물리적인 것', '정신적인 것', '객관적인 지식'으로 세계를 나누었던 과학철학자 칼 포퍼 말을 차용했다.
"첫 번째로는 그림을 그리는 기술에 관한 것, 두 번째는 그림이 그림만의 역사에서 갖는 의의, 세 번째는 그림이 그려졌던 시간적·공간적 위치이다."(10쪽) "나는 (중략) 세 번째 세계 끝에 서 있는 그림으로서의 존재를 살려 내고자 하였다."(11쪽) '예술과 관련한 인간의 감정과 인지주의 철학 연구'로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는 저자의 책은 그림을 통해 시대와 사회 속 다채로운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