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부산역 인근에서 만난 이재안 전도사(풀꽃강물교회) 손에는 처방전 하나가 들려 있었다. 인근에 사는 노숙인에게 약을 지어 주러 가는 길에 기자를 만난 것이다. 이 전도사는 기자에게 같이 가 보자고 말했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자 어지간해서는 묵고 싶지 않은 여관이 나왔다. 노숙인 2명이 이 여관 옥탑에 산다. 이재안 전도사가 여관 옥탑으로 올라가 방문을 두드린 후 들어갔다. 방에는 먹다 남은 소주병이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었고, 담배 재떨이에는 꽁초가 수북했다. 담배 냄새가 방 안에 짙게 배어 있었다.

이 아무개 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를 맞았다. 남자 세 명이 앉자 방이 꽉 찼다. 이재안 전도사가 근황을 묻자, 이 씨는 요새 수면제를 먹어도 잠이 안 오고 코감기 때문에 고생한다고 말했다. 이 씨가 약 바구니를 꺼내 요새 먹는 약을 보여 줬다. 우울증 약, 감기약, 관절 약 등 약만 한 바구니다. 그는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다른 아픈 곳도 많은데 요새는 특히 허리가 말썽이다. 이미 지난해 병원에서 CT 촬영을 하고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은 상태다. 허리가 아파 제대로 씻지도 못한다. 외출도 제대로 못 한다. 하루 대부분을 누워서 TV 보는 데 할애하는 듯했다.

이재안 전도사가 빨리 수술을 받으러 가자고 재촉했다. 이 씨는 벌금 300만 원 낼 일이 남아서 안 된다고 했다. 벌금 낼 돈이 없어 '학교'에서 몸으로 때우고 오려 한다는 것이다. 이 전도사는 수술 날짜를 잡아 다시 오겠노라 말하고 방문을 나섰다.

이재안 전도사가 쪽방 생활하는 이 아무개 씨를 찾았다. 아픈 곳도 많다. 바구니 안에 있는 게 모두 약이다. 요즘은 허리가 아파 고생이다. 잠이 안 와 수면제를 먹는데 내성이 생겼다. 잠을 잘 못 잔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노숙 이유, '외로워서'
밥 주고 사역 다 했다?
쉼터 만들어 주길

이재안 전도사는 부산 동구쪽방상담소에서 8년째 활동하고 있다. 지역 쪽방을 돌며 혼자 사는 노숙인들을 돌본다. 동구쪽방상담소가 살피는 노숙인은 450여 명. 사회복지사 7명 중 상담소 일을 제일 오래 한 이재안 전도사가 고위험군 노숙인들을 맡는다.

"거리에 나오면 같은 또래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끼리 얘기도 하고, 술도 먹고, 자기들끼리 커뮤니티가 형성돼요. 결국 얘기 나눌 사람이 없어서, 외로워서 거리로 나온 거죠."

노숙인들이 쪽방 생활을 그만두고 다시 거리로 나가지 않도록 정기적으로 찾는다. 노숙인들은 얘기 나눌 사람을 필요로 한다. 보호자 역할도 도맡아야 한다. 감옥 같은 쪽방에서 생활하는 한 노숙인은 "내가 이래 살면 뭐하겠노" 하며 우울증 약 3일치를 소주와 함께 털어 넣었다. 관심 갖고 자주 찾지 않으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대부분 노숙인은 무연고 변사로 처리된다. 공무원이 알아서 화장하고 가묘에 보낸다. 수십 년 혼자 살다가 마지막까지 거리에서 혼자 가는 것만은 막자는 게 상담소 사람들 마음이다. 이재안 전도사는 동구쪽방상담소가 살피는 노숙인들의 경우, 1년에 20여 명이 무연고 사망한다고 말했다.

"임종 때가 되면 가족이 있어도 99%는 안 와요. 30~40년을 남처럼 살았으니까요. 자식들에게 임종 지키라고 전화하면 '왜 전화하느냐'고 불쾌해하고요. 노숙인들도 그래요. 자식들 보고 싶어 하지만 '지은 죄 많은데 그런 것까지 바랄 수 있겠나' 해요. 그러니 우리라도 마지막에 함께해 주면 다들 고마워하죠."

이재안 전도사는 벌써 몇 번 임종을 지켰다. 눈도 감겨 주고, 얼굴도 닦아 주었다. 이 전도사는 노숙인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씨를 만나러 가는 길에 여관 주인을 만났다. 방세는 안 밀렸는지, 외출은 자주 하는지를 꼼꼼히 챙겼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8년의 경험을 토대로 이재안 전도사는 새로운 노숙인 사역을 계획하고 있다. 밥 주고, 옷 주는 식의 '시혜적' 노숙인 사역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감을 주고 싶다고 했다. 그럴 때 노숙인들은 마음을 연다고 했다.

"교회들이 노숙인 사역 많이 합니다. 부산역 와서 밥도 주고요. 그러면서 '당신은 수급자지만, 예수 믿고 성령 받으면 주님 아들로 살아갈 수 있다'고 가르쳐요. 간혹 보면 '노숙인 사역으로 한 달에 얼마 썼다'면서 '큰일 했다', '이만하면 됐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더라고요.

아까 만났던 이 씨요. 지난달에 자기가 밥을 산대요. 초량갈비라고 유명한 식당이 있어요. 제가 일부러 얻어먹었어요. 3만 1,000원. 그래야 자기 자존감도 높아지고 나도 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생겨요. 서로 진정성 있게 얘기하는 계기도 되고요. 평소에도 술 한 잔 들어갔을 때 기도해 주면 좋아해요. 손잡고, 안아 주고… 그러면 굉장히 좋아해요."

노숙인들 중 몇 명은 이 전도사와 사회문제에 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함께 거리에 나선 사람도 있다. 주권자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자존감이 생긴 사례다.

"수급자 중 한 분이 동아대 법대 출신인데 우울증이 심해요. 그분이랑 지난해 부산 소녀상 앞에서 송구영신 예배를 함께 드리고 촛불 집회도 참석했어요. 그분도 깃발 들고 스스로 사회적인 일에 참여한 거예요. 노숙인, 수급자들도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고, 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이재안 전도사는 자신이 보고 느낀 바를 목회에 접목할 계획이다. 지금 있는 풀꽃강물교회 10여 명의 교인은 이 전도사과 가치를 공유하며 이들을 돌아보고 있다. 이 전도사가 목사 안수를 받으면, 이 사역은 좀 더 구체화될 것이다. 노숙인이 단순히 밥 한 끼 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교회가 머물 곳을 제공하고 함께 삶을 나누기를 꿈꾼다. 한 사람의 인격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재안 전도사는 8년간 상담소 일을 하며 쌓은 경험을 목회와 접목하고 싶다. 노숙인들에게 밥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함께 소개하려 한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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