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세월호 참사를 겪은 뒤 신앙관에 변화가 찾아온 사람들이 있다. 기성 교회에서 나라와 민족, 가족을 위해 기도하던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 뒤 하나님의 존재, 그동안 믿어 왔던 신앙이 무엇인지 뿌리부터 흔들리는 경험을 했다고 증언한다. 굳게 믿었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고 파괴되는 현상을 목격하는 체험이었다.

김홍중 교수(서울대 사회학과)는 이를 '파상'(破像)이라고 설명한다. 김 교수는 "세월호라는 파국에 마음이 부서지면서 던져졌을 때 '꿈'이 깨졌다. 과거 한국 사회를 이끌었던 산업화·민주화·세계화 등 '꿈'이 붕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참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이 붕괴 체험이 '파상'이다. 폭력적인 재난을 체험하는 것이 그 '꿈'의 허상을 직시하게 해 준다"고 말했다.

'기독교 신앙과 사회적 상상력은 어떻게 만나는가' 두 번째 공개 강좌. 김홍중 교수(서울대 사회학과)가 '<사회학적 파상력>이 필요하다'는 주제로 강의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거대한 재난 앞에 떠오른 질문
미래는 시간이 아니라 물질
꿈의 양극화·불평등 심한 한국

밤사이 내린 폭설에도 객석은 가득찼다. 기독교사회실천연구소·청어람ARMC·카이로스가 공동으로 기획한 프로그램 '프락시스'. 1월 20일 프락시스 두 번째 공개 강좌가 열렸다. 강사 김홍중 교수는 2009년 쓴 <마음의 사회학>(문학동네)에서 사회학이 관심을 보여야 할 것은 결국 그 사회의 마음이라는 것을 설명했다. 얼마 전에는 <사회학적 파상력>(문학동네) 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김홍중 교수는 '파상력'이라는 개념을 연구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을 목도하며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경험을 했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알 수 없는 이유로 소위 '멘붕' 상태에 있었다. 과거 유럽에 체류하면서도 체르노빌 사건에는 크게 충격받지 않았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 원전이 터졌고, 원전은 인간이 수습할 수 없는 물질을 계속 바다로 방출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무장해제시켰다. 원전 폐기물 반감기가 100만 년이라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땅속 깊은 곳에 폐기물을 묻는 일밖에 없었다.

원전 사고라는 거대한 재난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을 보면서, 우리를 구성해 온 것에 대한 지적 관심이 어느 순간 대단히 허망한 것, 장난처럼 여겨졌다.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위험 상황 속에서 인간이 컨트롤하지 못하는 무소불위의 힘을 느꼈다. '인류는 오지 않은 미래를 어떻게 살아 낼 수 있을까'."

김홍중 교수는 파상력이라는 개념을 논하기 전, 우선 이 사회를 설명하는 키워드를 '꿈'이라고 정했다. 잠잘 때 꾸는 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희망 영역의 꿈이다. 김 교수는 꿈꾸는 사람 즉 몽상인 집단으로서의 사회를 설명하며 몇 가지 이론적 전제를 들었다. "미래는 오는 것이 아니라 생산하는 것"이라는 개념이 그중 하나다. 그는, 미래는 시간이 아니라 물질이며 오는 것이 아니라 끌어당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래는 한 사람이 가진 물질과 힘으로 생산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70년대는 명확한 미래를 생산할 수 있는 시기였다. 아파트를 구입하면 10년 뒤 어느 정도까지 가격이 상승할 것인지 예측 가능한 사회였다. 자식 세대가 더 풍요롭고 좋은 환경에서 살 것이라는 확신, 매일 식탁에 오르는 음식들이 변화하는 것을 실제로 목격할 수 있었다.

김홍중 교수는 현재 한국 사회는 꿈조차 불평등·양극화된 사회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긍정적인 미래를 생산하는 힘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김홍중 교수는 미래를 생산하고 구성하는 힘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했다. 젠더·계급·시대·지역·부모에 따라 미래를 당기는 힘을 다르게 갖는다는 것이다. 부유한 부모를 둔 강남에 사는 청년과 지방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청년을 예로 들었다. 강남 청년은 지방 청년에 비해 더 풍요로운 미래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했다.

미래를 구성하는 힘을 '자본'으로 개념화했을 때 차이는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자본은 돈만 말하는 게 아니다. 돈은 경제 자본이다. 활용할 수 있는 인간관계는 사회 자본, 교양이나 학벌 등은 문화 자본, 언어 자본, 외모·인간성 등도 모두 자본에 속한다. 김홍중 교수는 이런 모든 자본을 활용해 자기 존재를 증강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봤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꿈꾸는 능력은 자본처럼 축적·상속된다. 꿈꿀 수 있는 힘은 사람의 능력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 힘에서도 불평등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빈곤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마음의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힘이 고갈되면 미래를 생산해 내는 능력도 덩달아 줄어든다. 한국 사회는 꿈의 양극화·불평등이 심화했다.

개인 혹은 집합적 꿈의 파괴를 체험하는 '파상'
깨지는 체험에서 얻는 힘 '파상력'

김홍중 교수는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축적돼 온 산업화·민주화·세계화라는 기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큰 꿈'이라고 했다. 그는 "현재 한국 사회는 이 중요한 꿈이 깨지면서 어떤 꿈 속에서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 해답을 찾기 어려운 시대"라고 말했다. 꿈의 단맛을 본 사람들은 꿈 밖으로 헤어나오기 쉽지 않은데 이럴 때 꿈을 깰 수 있는 방법은 뭘까.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파국 속에 던져지는 것이다. 세월호 파국 속으로 마음이 부서지면서 던져졌을 때 꿈이 깨졌다. 깨지는 방법은 언어로 성찰하거나 반성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중략) 어쩌면 우리가 지금 체험하고 있는 것은 산업화·민주화·세계화 등이 각각 다 우리의 꿈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꿈이 붕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참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 붕괴 체험을 '파상'이라고 하는데, 상상이라는 말의 반대 개념이다."

김홍중 교수는 사회를 지배하는 주요 꿈들의 파상 현장에 서라고 주문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파상. 나를 사로잡고 있던 꿈이 깨지면서 꿈에 뿌리내리고 있던 내 근거가 부정되는 체험을 말한다. 김홍중 교수는 "파상이란 인간이 살기 위해 끊임없이 생산해 내는 개인 혹은 집합적 꿈의 파괴를 체험하는 한 형식"이라고 봤다. 깨지는 체험은 도덕적·인지적·종교적 힘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봤다. 그것이 바로 '파상력'이다.

파상력은 긍정적이다. 김 교수는 파상력이 꿈과 욕망의 구조, 그 구조를 뒷받침한 신념, 그 신념이 만들어 낸 체계의 질서를 깨는 것이라고 했다. 사회를 지배하는 주요 꿈들의 파상의 현장에 서라는 것이 김 교수의 주문이다. 현장에서 고통받는 사람과 공감(共感)이 아닌 통감(痛感)하라고 주문한다. 자신을 없애고 타자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껴 보라는 것이다.

"세월호 사태가 터졌을 때 '공감'이라는 단어가 값싸게 느껴졌다. 공감은 고통받는 자가 내 눈 앞에 있고, 내가 그와 같은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라는 뜻인데, 이 단어조차 윤택한 말이라고 느꼈다. 세월호는 내가 없어지고 그 고통이 나에게 들어오는 것이다. 그때 내가 부서지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다.

'아 국가가 껍데기구나. 우리 완전 헛살았구나'라고 느낄 때, 이런 모든 것들이 힘이 되는 순간이 있다. 도덕적·사회적·정치적 힘일 수도 있다. 이 힘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다가올 고난은 벗어나야 할 나쁜 것, 악으로만 여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꿈이 깨어질 때 불가피하게 체험해야 할 아픔이 있다. 이 아픔은 거기서 주저 앉으라는 것이 아니라 여지껏 꿔 왔던 꿈과 다른 꿈을 만들어서 살아 나갈 것, 다른 꿈을 건설하라는 명령이다."

김홍중 교수는 파상을 경험한 개인은 그 힘을 바탕으로 다른 삶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만 혼자 꾸는 꿈은 환상이기 때문에, 이 꿈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현실화할 수 있는지 고민하면 좋겠다고 했다. 12명으로 시작한 기독교처럼, 몇몇의 마음 속에 있는 씨앗이 어떻게 거대한 현실로 변화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모색하고 깨지고 찢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양희송 대표(왼쪽·청어람ARMC), 김현준 대표(카이로스)와 대담하고 있는 김홍중 교수(가운데). 뉴스앤조이 이은혜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