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는 유성기업과 쌍용자동차 등 해고 노동자들과 연대하며 싸워 왔다. 사측의 불법 해고에 맞선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교단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면 앞으로 어떻게 (해고 노동자와) 함께할 수 있겠는가. 명분이 안 선다. 이번 본부 직원 인사 조치는 명백한 불법이자 '부당 해고'라고 생각한다." - 이병일 목사(강남향린교회)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진보 교단으로 분류되는 기장(권오륜 총회장) 총회가 새해 초부터 뒤숭숭하다. 지난해 9월 101회 총회에서 신임 총무로 당선된 이재천 목사가 교단 개혁 일환으로 인사 조치를 단행했는데, 그 방식과 명분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 총무는 12월 초, 총회 본부에서 일하는 목사·전도사 11명에게 "임지를 찾아 떠나라"고 말했다. 사실상 해고 통보였지만, 뚜렷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총무의 일방적 통보에 직원들은 일괄 사표를 제출하기로 뜻을 모았다. 7명이 사표를 제출했고, 4명은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 기장 일각에서는 총무 인사 조치에 반발하는 모양새다. 총무를 적극 지지했던 이들조차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가 새해 벽두부터 시끄럽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이병일 목사는 1월 16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이재천 총무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목사는 이 총무를 누구보다 지지하지만, 이번 일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유도 알려 주지 않고 그만두라는 건 인격 모독에 해당한다고 했다. 이 목사는 "잔여 임기가 남아 있는 직원이 대다수인데 나가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인격 무시이자 인격 모독에 해당한다. 노동청에 제소될까 일반 직원에게는 나가라고 말도 못하고, 만만한 목사·전도사만 건드렸다"고 꼬집었다.

기장 총회는 '교단 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운 이재천 목사를 총무로 내세웠다. 이병일 목사는 아무리 교단 개혁이 시급해도 일 처리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이 목사는 "신임 총무의 개혁 로드맵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 많다. 그러나 개혁으로 가는 데 불법적인 일이 발생해선 안 된다. 잘못된 일은 털고 가야 한다. 안고 가면 계속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천 총무를 지지한다고 밝힌 김희헌 목사(총회 사회정책협의회)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 김 목사는 "직원들에게 기한도 정하지 않고 나가라고 통보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엄포'였다고 볼 수 있지만, 면이 안 서는 쓸데없는 짓을 했다. 직원들이 일할 마음이 들겠느냐"고 말했다.

이재천 총무는 인사 문제에 함구하고 있다. 퇴사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 달라는 직원들에게조차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았다. 김희헌 목사는 기장 내 기득권과 총무가 싸움을 벌이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는 "총무를 만나 직접 이야기해 봤다. 총무가 직원들에게 억하심정이 있는 건 아니더라. 기득권 쪽에서 총무를 압박해 오니까, 기싸움에서 밀리면 안 되니까, 대응 조치를 취한 것 같다. 그러나 이유가 어떻다 한들 이런 식으로 파장을 일으키는 건 적절치 않다. 소통해 가며 일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총회 본부 직원 인사 문제는 총회장 선에서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101회 총회 기자회견 중인 권오륜 총회장(사진 왼쪽)과 이재천 총무.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이번 인사 조치는 이재천 총무와 권오륜 총회장 선에서 논의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부총회장 윤세관 목사는 "나도 자세한 건 모른다. 총회장 선에서 이야기가 오간 것으로 안다. 나중에 한번 깊이 (임원회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총무가) 총회 개혁을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절차가 매끄러웠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권오륜 총회장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총회 직원 인사 문제는 1월 23일 열리는 총회 사회정책협의회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김희헌 목사는 "총회 직원 문제를 다루는 자리는 아니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공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병일 목사는 뜻있는 목사들과 함께 이번 인사 문제에 대한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목사는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한 직원들을 이렇게 대해서는 안 된다. 이런 선례를 남기지 않도록 서명도 받을 것이다. 총무는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천 총무의 정책을 모두가 반대하는 건 아니다. 총무를 적극 지지해 온 이건화 목사(광염교회)는 "강제 해고로 볼 수 없다. (직원들에게) 임지를 찾을 때까지 근무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어차피 총회는 개혁돼야 한다. 이번 기회에 직원을 공채로 뽑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총무를 지지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교단 개혁'이란 말을 꺼냈다. 그러나 기장 총회에 어떤 문제가 있고 이를 어떤 방식으로 개혁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개혁의 과정에서 이런 식으로 직원들을 내보내도 되는지 명분도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목사는 "내가 알기로는 총무가 구상하는 그림이 다 안 그려졌다. 지금 시점에서 (개혁 내용을) 밝혀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다. 명확한 그림이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사회적인 목소리를 내온 기장은 이번 직원 인사 조처로 '부당 해고'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1월 말로 총회 본부를 떠나는 A 목사는 11일 기자와의 만남에서 시원섭섭하다는 듯 말했다.

"이런 식의 개혁이면 앞으로 기장 총회는 (총무 선거가 있는) 4년마다 '개혁' 바람만 일으키다 끝이 날 수 있다. 사유도 없이 해고하는 문화는 없어야 한다. 총회에 복직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지금과 같은 사례가 앞으로 기장 역사에 남지 않길 바랄 뿐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한국교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교단으로, 다른 교단이 관심을 두지 않던 쌍용자동차, 유성기업,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와 연대해 왔다. 성탄절에는 위문품을 전달하고, 고난주간에는 함께 촛불을 들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의 총회 직원을 '부당 해고'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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