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단순한 사건이다. 타인을 사랑하기에 그리 많은 지식이나 사유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 몸으로 보여 준 사건이다. 내가 아직도 많은 지식을 필요로 하고 논리나 학설을 즐겨 말하는 것은 십자가를 질 수 없는, 저급한 신앙인이라는 뜻이다. (중략) 십자가는 복잡한 사유의 그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향한 단순한 열정이 만들어 낸 사건이다. 내 얼굴에 수많은 별똥별이 쏟아진 뒤에야 알았다." (48~49쪽)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교인의 집에 하우스를 지어 주면서 얼굴에 불똥이 다 튀고 말았다. 보호안경 없이 용접한 탓이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해도, 선풍기 바람을 쐬도, 얼음찜질을 해도 뻣뻣해진 피부는 돌아오지 않았다. 화끈거리는 얼굴에 엄습하는 고통 앞에서 그는 '십자가의 단순성'을 고백했다. 현학적이었던 지식 추구를 반성하면서. 충청북도 영동에서 시골 교회를 목회하는 김선주 목사 이야기다.

그는 농촌 어르신들에게 '이럴 때는 전화하세요'라는 전단지를 돌려 유명해졌다. 사실 '목사 사용 설명서'라고 이름 붙이고 싶었다는 이 전단지에 많은 이가 주목했다. <조선일보>·<한겨레>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그를 찾았다. 참신함도 참신함이지만, 삶을 담아내는 목회가 어떤 것인지 하나의 전범典範을 보여 준 탓이다. '목사 사용 설명서'에는 10가지 내용이 담겨 있다.

1. 보일러가 고장나면 전화합니다.
2. 텔레비전이 안 나오면 전화합니다.
3. 냉장고, 전기가 고장나면 전화합니다.
4. 휴대폰이나 집 전화가 안 되면 전화합니다.
5. 무거운 것을 들거나 힘쓸 일 있으면 전화합니다.
6. 농번기에 일손을 못 구할 때 전화합니다.
7. 마음이 슬프거나 괴로울 때 전화합니다.
8. 몸이 아프면 이것저것 생각 말고 전화합니다.
9. 갑자기 병원 갈 일이 생겼을 때 전화합니다.
10. 경로당에서 고스톱 칠 때 짝 안 맞으면 전화합니다.

김선주 목사의 에세이집 <목사 사용 설명서>(대장간)에는 위 10가지를 직접 실천한 이야기가 채워져 있다. 그가 현장에서 몸으로 겪어 낸 시골 목회 이야기는 일종의 귀감으로 다가온다.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이나 신학, 목회 단상도 실려 있다.

<목사 사용 설명서 - 어느 시골 교회 목사의 삶과 신학> / 김선주 지음 / 대장간 펴냄 / 252쪽 / 1만 원

교인과 함께 벌꿀을 빼러 가는 이야기, 교인의 집에 하우스를 지어 주는 이야기, 겨울날 새벽 3시에 독거노인이 사는 집 보일러를 고쳐 주고 사택의 연탄보일러에서 밑불을 빼 가져다주는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나도 잡놈이 되고 싶어졌다. 목사라는 제사장적 순혈주의, 그 위선적인 거룩함과 순혈주의적 사제의 모습을 벗고 잡놈이 되고 싶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도 참 잡스럽게 사셨다. 목수, 의사, 선생, 혁명가, 설교자, 상담가…"(34쪽) 같은 단상이 그저 멋이나 허세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그의 글은 진솔하고 직설적이다. 한국의 경쟁적인 교육 체제를 비판하는 대목이나, '기독자유당'을 '그리스도맘몬당'이라고 비꼬는 장면에서는 자신의 사상을 펼치는 데 거침이 없다. 현대인의 과다한 육식에서 '폭력의 과잉 섭취'를 짚는 대목이나, 무심코 벌레를 죽이려 한 자신의 무의식을 반성하는 모습에서는 예민한 영혼의 감수성이 느껴진다. 40만 원 남짓 받는 사례비를 이야기할 때나, 연탄보일러에서 밑불을 빼면서 한숨을 뱉듯 '내 가정을 어디까지 희생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질 때는 현실적인 고충도 엿보인다.

머리말을 보면, 그가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 주려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다. 삶과 현장에 가닿은 목회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에게 그의 책을 권한다.

"나는 소외되고 추락한 사람들의 변방에서 그들의 삶의 현장에 있으려고 노력했다. 교회가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서 분리된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그곳에 녹아들어 가는 살아 있는 공동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성경의 문자와 교리적 언어에서 삶의 언어로 소통의 도구를 바꾸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우리 시대와 또 내가 거하고 있는 상황이 요구하는 목회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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