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 가수 김명식 씨가 지난해 12월 30일 신곡을 발표했다. 노래 제목은 '새 아침이 올 꺼야'. 이 노래는 CCM이 아닌 발라드로 분류돼 있다. 이번 곡에는 예수·하나님·교회 등과 같은 기독교 언어가 없다. 앨범 소개도 마찬가지다. "천만 촛불에 헌정하며"라는 글귀만 적혀 있을 뿐이다.

"새 아침이 올 꺼야. 어둔 밤 지나면 작은 촛불 모여 소망의 꽃 피워 찬란한 태양 될 테니. 새 아침의 하늘로 작은 새 날개짓하고 들판의 꽃들도 사방에 피어나 노래하는 세상 될 테니. 깊은 밤 지나서 아침이 오면 어둠은 사라져. 어둠에 가려진 아름다운 세상 곧 보게 될 거야. 새 아침의 나라 봄이 오듯이 펼쳐질 거야." - '새 아침이 올 꺼야' 중

김명식 씨에게 2016년은 뜻깊은 해다. 솔로로 데뷔한 지 20주년이다. CCM계 대부인 그는 데뷔 20주년 끝자락에 '정규 앨범'을 내거나 '단독 콘서트'를 기획한 게 아니라, '촛불'을 주제로 노래를 발표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찬바람이 불던 1월 12일, 건국대 앞 한 카페에서 김명식 씨를 만났다. CCM 사역자이자 여러 신학교에서 예배를 가르치는 김 씨. 그는 두 시간 동안 차분한 어조로 교회와 학교 현장에서 보고 느꼈던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CCM 가수 김명식 씨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새 아침이 올 꺼야'는 지금까지 발표한 노래와 색깔이 다른 것 같다. 곡을 내게 된 계기가 있나.

사회에서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내면에 질문이 생긴다. 시대와 역사 앞에 나는 어떤 노래를 해야 할까,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이.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사건을 보면서 두 달 정도는 아무 말도 못했다. 기존에 하던 강의, 노래를 반복하기가 어려웠다. 우리가 하는 이야기와 노래가 이제는 좀 더 하나님의 시선으로 넓은 세상을 품는 것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두 달간 생각만 하다가 어느 날 '새 아침이 올 꺼야'라는 제목이 스치듯이 떠올랐다. 그날 새벽에 일어나 가사를 쓰고 다듬으면서 노래를 완성했다. 이 노래가 모든 사람에게 희망이 될 수는 없겠지만,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곡을 만들었다.

- 광화문에 직접 가 보기도 했나.

네 번 정도 갔다. 아내와 간 날도 있었고, 그중 두 번은 온 식구가 가기도 했다. 주말 저녁 광화문에 내렸는데 가슴이 울렁거렸다. 길가에 앉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하루하루 살기도 팍팍해 보이는 아저씨들, 유모차 안에 앉아 있는 아이들, 엄마 손잡고 나온 초등학생들이 많았다. 날씨도 추운데 길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안쓰럽고 애틋했다 이 사람들이 왜 나올 수밖에 없었을까.

누군가는 광화문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정치적이라고 말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시민들은 정의와 진실이 사라진 현실에 실망해 광장으로 나왔다. 상식을 가진 시민들이 끝을 모르고 달려가는 욕망과 거짓이 잘못됐다고 지적하기 위해 나온 거다. 이건 '정치' 문제가 아니라 '정직'과 '신실함'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 가사를 보면 기독교 색채가 거의 없다.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싶었다. 음원 등록도 CCM이 아니라 가요로 했다. 때로는 종교적 언어가 사람과의 소통을 막을 때가 있다. 이번 노래는 굳이 '예수님'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되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독교 가치를 보편적 언어로 풀려고 노력했다.

- '새 아침이 올 꺼야'를 발표하면서 부담스럽지 않았나. 사회문제를 언급하고 촛불 드는 걸 불편하게 여기는 교회가 많다.

물론 마음 한편에는 사람들의 편견이나 오해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이 문제를 두고 말이 많더라. 촛불을 들면 "기도는 안 하느냐"는 이야기를 듣는다. 기도하라고 하면 "가만히 앉아서 기도만 하라는 것이냐"라는 반응이 나온다. 기독교인이라면 촛불을 드는 행위가 무릎 꿇는 기도의 결과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분위기에 편승에 광장에 나가거나, 기도만 하라고 말하면서 현장을 비난하는 태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태도는 아닐 거다.

- 세월호 참사 때도 '새 아침이 올 꺼야'와 비슷한 이유로 노래를 만들었나.

이러한 노래는 내가 만들려고 만들었다기보다는 내 안에서 노래들이 터져 나왔다고 보는 게 맞다. 우리 존재의 근간을 뒤흔드는 시간을 보내는데, 그 시간을 품은 이야기가 안 나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나.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빠져 들어가는 장면을 본 후, 한 달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하나도 몰랐다. 그러다 한 집회에 참여했다. 가사가 머리에서 쏟아져 나왔다. 주보를 펼쳐 놓고 거기에 가사를 적었다. 그게 '남겨진 아빠의 기도'다. 그때는 멜로디를 따로 만들지는 않았다. 지난 음반에 실린 '새벽 기도'라는 곡에 가사만 붙였다.

이 노래를 가끔씩 집회에서 불렀다. 세월호 1주기가 다가오던 어느 날 문득, '남겨진 아빠'의 마음이 깊게 와 닿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나도 그 또래 아들이 있으니 그 아픔을 비슷하게라도 깨달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3일간 금식하며 기도했다. 그래도 모르겠어서 40일간 저녁을 금식했다. 여전히 세월호 가족이 어떤 마음으로 여생을 살지 모르겠더라. 세월호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2016년, 김명식 씨는 솔로 활동 20주년을 맞았다. 그는 왜 20주년에 '촛불'과 관련한 노래를 발표했을까. 사진 제공 김명식

- 세월호 참사나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같은 큰 사건 이후,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나 신앙에 있어서 달라진 점이 있나.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변한다기보다, 하나님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대학교 3학년 겨울, '하나님은 애통하시는데 나는 경박하게 웃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 기도 제목이 '하나님 울 때 나도 울었으면 좋겠다'였다. 하나님 위해 살겠다고 다짐까지 했는데, 하나님 울 때 나 혼자 히히덕거리면 안 될 거 같았다.

그 기도를 하고 반년은 하염없이 울며 살았다. 그 이후로도 삶을 살다 보면, 종종 마음이 찢어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내가 사는 상황을 마주하면서 일종의 산통을 느낀다. 요즘도 그런 통증이 가슴에 남아 있다.

- CCM 가수로 활동한 지 20년이 넘었다. 그간 한국교회 예배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예배에서 모든 사람이 중요하지만 특히 예배 인도자는 너무도 중요하다. 주 중에 세상의 가치관으로 살았던 교인의 눈과 영혼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역할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배 인도자는 하나님 앞에 선 예배자여야 한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 예배 스타일이 많이 변했다. 이때 주로 예배 인도자로 기능적으로 뛰어난 사람을 세웠다. 노래 잘 부르거나 기타 잘 치면 예배를 인도했다. 기능적인 역할만 우선하니, 예배 도중 하나님에 대해 관념적인 이야기만 반복하는 경우가 있었다.

안타까운 건 예배 인도자의 기능적인 면만 보고 자라난 그 다음 세대들이 있다는 거다. 누군가의 아류로 자라난 이들은, 자기들이 본 대로 카리스마를 뿜어 낼 수 있는 말투나 멘트를 연습한다. 그것이 예배의 본질인 것처럼 착각한다. 즉 뜨겁고 역동적인 음악과 다이내믹한 말투가 은혜의 척도인 것처럼 여긴다.

- CCM 자체에 대한 비판도 있다. CCM에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학생들에게 그룹을 지어 예배 인도를 해 보라고 했다. 그때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사건'이 터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학생들이 예배 인도 중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한마디도 안 하더라. 나라가 이 지경인데, 시대와 역사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어떻게 예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서 있는 현실이 있는데, 최소한 이 상황을 외면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학생들에게 당부했다. 우리 신앙은 결코 추상적인 게 아니다. 역사와 연결돼 있다. 또 나는 기독교인이니까 이 문제의 실타래를 예배로 풀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더더욱 예배에서 현실 이야기는 빠질 수 없는 이슈이다.

김명식 씨는 우리가 믿는 신앙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왜 한국교회가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나.

권력은 무서운 거다. 우리의 영혼과 소중한 삶의 가치를 무너뜨릴 수 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원리로 진행되던 교회가 기득권을 얻고 세상 논리로 경영되면서 세상 문제에 무관심하게 됐다.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시선을 잃어버렸다.

하나님의 원리는 힘이 중심이 되는 논리가 아니다. 오히려 낮은 자, 약한 자를 찾아가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는 거다. 고아, 과부와 더불어 걷고 이들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논리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우리만의 울타리를 쳐 놓고 그 안에 머물러 있을 때가 많다.

분명히 한국교회도 초기에는 세상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오갈 데 없는 사람들에게 판잣집을 주고 살 길을 함께 찾아 줬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귀한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많다. 하지만 교회가 부흥하면서 교인이 많아지고 예배당이 커지고 헌금이 많이 들어오고 기득권이 생기면서 첫 마음을 잃어버린 경우들이 있는 것 같다.

교회가 이런 상태인데 어떻게 사회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들 스스로가 복음의 가치를 온전히 살아 내지 못하니 선지자처럼 세상에 외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싶다.

- 지금까지 '하나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한국교회를 보는 하나님은 어떤 마음일까.

여전히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이어 가는 교회가 다수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때로는 회중으로 앉아 있으면서 예배에 집중이 안 될 때가 있다. 설교자와 예배 인도자가 하나님의 시선을 잃어버린 채 종교적 언어로 포장된 세상 가치를 말할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 그런 모습을 보시면 마음이 아프실 것 같다.

때로는, 예수님이 재림하셔도 성공한 제도권 교회에는 안 계실 거란 마음마저 들 때가 있다.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로 대변되는 위선적 종교인을 외면하셨던 예수님께서 과연 재림하셨을 때 교계의 기득권층에게 오실까? 많은 수의 대형 교회들의 불법과 탈선을 보며 잘한다고 하실까? 이런저런 편법으로 세습하는 교회를 보고 잘하고 있다고 말씀하실까? 전혀 아닐 것 같다.

오히려 교계에서 인정받는 사람들에게는 가지 않으시고, 성경에서처럼 가난하고 목마른 사람들에게 가실 것 같다. 아마 광화문으로 가시지 않을까 싶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억울하고 가슴 아픈 사람들이 모인 곳이 광화문이니까.

거기서 주저앉아 있는 억울한 사람들, 피눈물 나는 사람들, 죽음 같은 절망 앞에 선 사람들, 고독한 싸움을 이어 오던 사람들을 껴안으실 거다. 우리가 예측할 수 없었던 억울함이 가리워진 누군가를 찾아 만나고 고치실 거다. 팽목항도 가고 동거차도도 가셨을 거다. 그 세상의 끝 같은 자리로 말이다. 이제 우리도 그런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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