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본부가 권고사직 논란에 휩싸였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A 목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권오륜 총회장) 총회에서 7년간 간사로 일했다. 동기 목사들이 임지를 떠돌 동안 총회에서 행정 업무를 봤다. 몇몇 지인은 우스갯소리로 한직이라서 편하겠다고 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개교회와 노회에서 제기하는 민원을 처리하고 총회 소식 등을 알리며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박봉을 받으며 총회 본부라는 특수 공간에서 일하지만, A 목사는 자신이 하는 일을 '목회'라고 자부했다. 기회가 주어지면 총회에서 3~4년간 더 일하고 싶었다. 그러나 A 목사는 신임총무 등장과 함께 꿈을 접어야 했다.

기장은 지난해 9월 101회 총회에서 이재천 목사를 총무로 선출했다. 교단 개혁을 절실히 원했던 기장인들은 '비주류', '신학자' 길을 걸어온 이 목사를 택했다. 그는 교단을 개혁해 내부 구성원이 원하는 '기장성'을 회복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사회참여와 성령 운동도 병행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교단 개혁을 위한 첫 번째 칼날을 빼들었다. 칼날은 총회 간사급 목회자 11명을 향했다.

"각자 임지 찾아 떠나라." 이재천 총무가 직원들에게 한 말이다. 총무에 임명된 지 한 달 정도 됐을 무렵이다. 간사급 직원 인사권은 '총무'가 쥐고 있다. 나가라고는 했지만, 정작 그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직원들은 동요했다. "실무 담당하는 간사직 없애고 국장 체제로 전환하려 한다", "자기 사람 채우려고 한다", "직원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처다" 등 갖은 소문이 피어올랐다. 그날 이후부터 이 총무는 직원들과의 만남을 피했다.

직원들은 12월 총무 면담을 요청했다. 지금까지 총회 본부에 이런 선례는 없었고, 당장 임지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기장 총회 직원은 3년마다 한 번씩 계약을 갱신한다.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은 이 총무가 말했다.

"기한은 못 박지 않았다. 임지를 찾으면 떠나라. 잔여 임기가 문제라고 느끼면, 임기 채우고 나가라."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권고사직은 근무 태도가 불량하거나 부진한 인력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기장 총회의 경우, 간사급 직원 인사권을 쥔 총무가 직원에게 퇴사를 요청할 수 있다. 단 사유가 명확해야 한다. 다퉈 볼 여지가 있지만, 직원들은 노동청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항의 차원에서 단체로 사직하기로 했다.

간사 11명 중 A 목사를 포함 7명의 직원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나머지 4명은 사직 시기를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월까지 일하기로 한 B 목사는 "일을 못해서 나가라면 그나마 이해는 하겠다. 그런데 이유를 밝히기는커녕 에둘러 넘어가려 한다. 여기 있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고 토로했다. C 목사는 "총회를 개혁한다는 방침에 동의하지만, 이유를 말해 주지 않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다. 교단 안에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했다.

이재천 총무 "믿고 기다려 달라"
거듭된 질문에도 이재천 총무는 말을 아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교단 개혁을 위한 '인적 쇄신'인지, 총회 하급 직원을 상대로 한 '직권남용'인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재천 총무는 해가 바뀌어도 침묵하고 있다.

<뉴스앤조이>는 자초지종을 듣기 위해 1월 10일 오전 10시경, 서울 종로5가에 있는 기장 총회 회관을 찾았다. 전날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잠시 후 서류 가방을 든 이 총무가 출근했다. 단도직입적으로 직원 인사 문제를 꺼냈다. 권고사직이 교단 개혁과 관련 있느냐는 말에 이 총무는 "지금 당장 말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수년간 일해 온 직원들을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내쳐도 되느냐고 하자 "직원들이 인간적으로 아쉬워할 수는 있다. 그러나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 나중에 가서 판단하자"고 이 총무는 대답했다.

거듭되는 질문에 이 총무는 "노코멘트"로 응수했다. 그는 "말은 자꾸 말만 낳는다. 더 이상 해 줄 이야기가 없다. 나도 (총회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러니까 믿고 기다려 달라"고 했다. 교단 내부에서도 인사 문제에 비판이 거세다는 말에 이 총무는 "글쎄…이 문제는 나중에 진하게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계속되는 질문에 이 총무는 더 이상 답변하지 않았다.

기장 본부는 평소와 달리 한산했다. 비어 있는 책상도 여럿 보였다. 한 직원은 "사람이 하나둘 빠져나가면서 본부 분위기도 위축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인사 문제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모른다. 당장 2월 말 열리는 총회 실행위원회에서 논란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기장 소속 한 목사는 "아무리 개혁한다고 해도 연착륙 방식으로 가야지, 이렇게 일괄적으로 내쫓는 건 아니다. 자기 사람 채우려는 것 같은데 무리수 같다. 실무진들이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닌데 이건 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기장 총회 회관은 평소와 달리 한산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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