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 자료를 모두 모으세요. 신용카드 청구서, 대출금 청구서, 연체 통지서… 그것들을 봉투에 넣은 뒤에 제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을 찾아가세요. 그분은 진정한 하나님의 종이시고, 빚을 없애 주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계세요. 틀림없어요. 하나님은 전능하시니까요. 제가 이런 충고를 해 드리는 분이 아주 많은데, 모두 효과가 있었어요." (<신 없는 사회> 279쪽)

이 얘기는 책의 '나오는 말' 부분에 있는 일화다. 저자 필 주커먼이 실제 경험한 일을 책에 넣은 것이다. 재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은행 직원이 건넨 말이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한국교회에서 존재했던 일이라고 해도 믿을 만하다. 한국교회 분위기상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아픈 사람에게 교회에 나가 기도를 받아 보라 권하는 일은 이상한 게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실질적인 도움이 될 일을 찾아 주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종교 성향이 강한' 이들에게는 종교의 힘에 위탁하라는 것이 일상적인 수사다.

그렇다면 종교는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인가? 이 질문은 위험하면서 중요한 질문이다. 신앙생활 가운데서 무척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질문거리다. 이러한 생각에 고민을 던져 주는 책이 <신 없는 사회>(마음산책)다. 종교성이 강한 국가 미국과 그렇지 않은 스웨덴·덴마크를 비교 연구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저자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1년간 덴마크와 스웨덴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비교적 세세하게 덴마크와 스웨덴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 있게 했다. 심층 인터뷰 방법을 활용해 양적 방법론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를 읽을 수 있게 했다.

<신 없는 사회> / 필 주커먼 지음 / 김승욱 옮김 / 마음산책 펴냄 / 367쪽 / 1만 6,000원
신이 '없는' 사회 vs. 신 '있는' 사회

종교 없는 사회는 불행하다는 것이 보수적인 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다. 저자는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신이 없는 세상은 지옥이 된다는 게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의 생각이다.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하느님이 없으면 부도덕하고 사악하고 타락이 들끓을 것이라고 가정한다고 설명한다. 하느님이 없는 사회는 지상에 있는 지옥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14-15쪽).

저자는 신 없는 사회가 불행하고, 비도덕적이라는 담론을 스웨덴과 덴마크의 사례를 통해 반대한다. 덴마크와 스웨덴에서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이들은 극소수다. "단순히 신앙이 없는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신앙이 없는 상태를 아무렇지 않게 볼 뿐더러 오히려 그것이 일상적이고, 규범적인 상태라고 생각하는 사회(32쪽)"다. 분석 대상이 된 북유럽 국가인 스웨덴과 덴마크는 성경을 읽지 않거나, 사후 세계를 믿지 않거나, 예수가 구세주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신이 없는' 스웨덴과 덴마크는 사회학적 지표로 봤을 때 가장 행복한 국가들이다. 정치가와 공무원의 청렴도는 덴마크 4위, 스웨덴 6위다. 세계 최빈국을 가장 많이 원조하는 나라 20개국 가운데 덴마크는 2위, 스웨덴은 3위다. 환경보호를 위해 가장 많은 힘을 쏟고 있는 나라가 스웨덴이고, 3위에 덴마크가 있다.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삶의 질' 지수에서 스웨덴은 5위, 덴마크는 9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제시하는 20여 개국도 비종교적인 곳이다.

'신이 존재하는 사회' 미국은 정치·사회·문화적으로 종교가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진화론 대신 창조론을 가르치는 지역들이 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근본주의 교회도 다수 존재한다. 정치를 하고자 한다면 신앙이 좋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동성애·낙태 등의 문제에 있어서 근본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는 사회다.

사회지표로 봤을 때, 미국은 스웨덴이나 덴마크보다 훨씬 더 불행한 사회다. 미국은 심각한 양극화와 여러 범죄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은 두 국가에 비해 복지가 훨씬 덜 발전되어 있다. 4,500만 인구가 의료보험의 보장을 받지 못한다. 집이 없는 사람도 많다. 이런 통계는 종교적인 국가 미국 사회가 결단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자료들이다.

저자는 종교성조차도 한 사회의 역사·정치·경제적인 배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 가지 이유를 들면, 스웨덴과 덴마크는 인구가 적고 소속감이 본래 높다. 반면, 미국은 다수의 민족과 이민자가 존재한다. 이를 통합하는 장치로서 종교가 사용됐다는 것이다.

결국 종교성이 약한 사회 역시 행복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핵심 메시지다. 저자는 "종교는 사회의 필수적인 행복의 조건이 아니다"는 것을 미국과 북유럽의 두 개 국가를 비교해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물론 신이 없어야 행복하다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스웨덴과 덴마크 역시 완벽한 국가는 아님을 첫 머리에서 명시하고 있다. 이 두 국가 역시 범죄가 존재한다. 불행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종교가 인간과 사회 행복의 필수적인 조건은 아니다.

어떻게 믿을 것인가?

미국 보수 기독교인들과 한국 보수 기독교인들은 별반 다르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고, 동성애자를 혐오하고, 개인의 윤리적인 문제에만 집중하는 등의 모습이 닮았다. 이런 신앙이 한 사회나 개인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작년, 한국 개신교에서 화두가 됐던 동성애를 예로 들어 보자. 동성애를 인정하면 소돔 고모라 성처럼 이 사회가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개신교인의 주장과는 달리, 동성애를 인정하는 북유럽 사회는 너무도 평온하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고, 동성애를 인정하는 북유럽 사회가 사회지표로 봤을 때 더 나은 사회다. 더 나은 정도가 아니라, 한국의 복지국가 롤모델이 스웨덴과 덴마크다.

<신 없는 사회>는 한국 개신교에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 이 사회에서 종교가 없어져야 함을 주장하는 바가 아니다. 오히려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신앙인이 많은 사회가 더 행복하다는 게 개인적인 견해다. 다만, 어떤 신앙을 갖는 게 중요한지에 대해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우리 개신교가 지금 가지고 있는 교리적인 부분들이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왔는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왜 우리가 이러한 신앙 체계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것이 정말 개신교 가치관에 합당한 것인지를 봐야 한다. 한 사회를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가 '우리가 만들어 놓은 신'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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