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핍현대미술광장 외관. 뉴스앤조이 현선

2016년 12월 24일 광화문광장에 미술관이 생겼다. 그것도 하루 만에. '국립현대미술관' 로고와 글씨체가 비슷하지만 살짝 다르다. 이름하여 '궁핍현대미술광장'(Field Museum of Poor Political Contemporary Art)이다. 관장 대신 '광장님'이 있다. 초대 광장은 문화활동가 신유아 씨다.

'내가 왜'라는 제목으로 열린 개관전에는 송경동 시인의 시 '우리 안에 폴리스라인', 윤엽 판화가의 판화, 노순택 사진사와 민성훈 그래픽디자이너의 작품, 시민들의 꿈과 열망을 담아 구상한 가상 내용을 신문으로 발행한 '광장신문' 일부가 전시되어 있다. 

궁핍현대미술광장 안으로 들어가면 송경동 시인의 시와 노순택 사진사의 작품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뉴스앤조이 현선
판화가 윤엽의 작품들. 뉴스앤조이 현선
추운 날씨에도 관람객이 끊이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현선
미술광장 한편에 전시돼 있는 '광장신문'. 한 부에 500원이다. 뉴스앤조이 현선
전시관 전경. 뉴스앤조이 현선
광장님이 미술광장에 없을 때는 옆 천막을 찾으면 된다. 뉴스앤조이 현선
미술광장과 광화문광장 곳곳에 설치된 조형물. 뉴스앤조이 현선
12월 26일, 누군가 칼을 휘둘러 작품이 찢어졌다. 다시 한 땀 한 땀 바늘질해서 또 다른 작품을 만들어 냈다. 뉴스앤조이 현선
광화문 너머 경복궁 맞은편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있다. 뉴스앤조이 현선

궁핍현대미술광장은 '내가 왜' 소개문에서 "초라하고 궁색한 한국 정치의 풍경을 그립니다. 가난할지언정 삶을 위해 싸우는, 소중한 이들과 삶과 죽음을 기억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다채로운 광장의 외침을 담으려 합니다. 궁핍한 정치의 멱살을 잡습니다. 그것이 당대의 예술이니까요"라고 했다.

아래는 개관전 '내가 왜' 소개문 전문. 

당신은 지금 서울의 한복판, 광화문광장에 서 계십니다. 묻고 싶습니다. 왜 지금 이 자리에 서 계신가요. 다섯 명이 모인 자리에 다섯 개의 사연이 있습니다.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건 더 이어져야 할 304개의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똑같은 사람이 없듯, 삶의 이야기도, 삶의 이유도 같을 리 없습니다. 하물며 100만 개의 촛불이 타올랐던 이 광장의 이야기는 어떨까요.

박근혜 당선 이틀 뒤 목숨을 끊은 노동자가 있습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 최강서 씨는 회사의 부당노동행위와 손배 가압류로 고통스러워했습니다. 마땅히 사회가, 정치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였으나 '누군가'의 당선은 한 노동자가 품어야 할 일말의 희망마저 거두어 간 것이었습니다. 국정원 대선 개입과 부정선거에 항의해 서울역 고가에서 분신한 이남종 씨의 외침은 어떠한가요. 삼성전자 서비스 노동자 최종범 씨는 "힘들고 배고팠다"는 유서를 남겼습니다.

지금 이 광장에는 가혹한 노조 파괴의 과정에서 죽어간 동료 한광호 씨의 영정을 붙들고 힘겹게 싸우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이 광장은 노동자들을 버리고 야반도주한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한겨울 오체투지를 이어 가며 흐느꼈던 곳입니다. 쌍용차, 콜트콜텍, 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의 고통이 배어 있기도 합니다. 세월호 참사 304명의 작은 영정이 밤새 빛나는 광장이지요.

다시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지금 여기에, 왜 서 계신가요. 우리는 지금 여기에, 왜 서 있을까요.

궁핍현대미술광장 개관전 '내가 왜'는 노래패 꽃다지의 노래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 노래는 찬바람 부는 날 거리에서 잘 수밖에 없었던, 시리고 추운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농락당한 우리의 삶에 '왜'를 되묻고 있습니다.

당신과 나의 삶이 파괴되는 밑그림에 농락당한 사회가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입니다. 어두운 장막의 뒤에서 누군가 즐겁고 화려한 파티를 벌여왔음을 낱낱이 알게 되었죠. 그래서인가 봅니다. 당신과 내가, 지금 이 광장에서 만난 까닭.

어떤 시의 한 구절이 그 까닭을 말해줍니다. 이 땅에 살기 위하여, 사람으로 살기 위하여, 사랑으로 살기 위하여.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이 광장에서 만난 거겠죠.

'궁핍현대미술광장'은 초라하고 궁색한 한국 정치의 풍경을 그립니다. 가난할지언정 삶을 위해 싸우는, 소중한 이들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다채로운 광장의 외침을 담으려 합니다. 궁핍한 정치의 멱살을 잡습니다. 그것이 당대의 예술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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