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교회가 성탄의 기쁨으로 탄일종을 울릴 때, 한국에서 비행기로 12시간 떨어진 시리아에서는 전쟁의 포화가 주민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다행히 한국에서도 이들을 기억하는 교회가 있었다. 일산 예훈교회는 한국에 있는 시리아인들을 초대해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냈다.

그곳에서 키가 크고 외모가 준수한 시리아 청년을 만났다. 이름은 알하리리 누르(24). 그는 다른 시리아 친구들보다 한국어에 능숙하고 교인들과도 잘 어울렸다. 교회 아이들과 장난치며 까르르거리는 누르를 보며 친근감이 들었다. 사진기를 들고 그 모습을 찍던 내게도 활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 일산 예훈교회에서 누르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2011년, 누르는 열여덟 살에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누르보다 먼저 한국에 와서 일하고 있던 사촌과 친구들이 누르에게 한국을 소개했다. "한국은 기회의 땅이야. 돈을 많이 벌 수 있어. 음식이 불편하고 겨울이 춥지만, 참을 수만 있으면 한국에서 일하는 건 좋은 기회가 될 거야."

해가 바뀌었으니 누르가 한국에 온 지도 올해로 7년째다. 누르는 그동안 한국에서 어떤 삶을 살았을까. 무슬림인 누르가 한국에서 종교적으로 불편을 느끼지는 않았을지 궁금했다. 재작년 할랄 식품 단지 이야기가 나오면서 급격히 늘어난 한국교회의 이슬람포비아가 생각났다. 누르는 이런 상황을 알고 있을까. 1월 4일 일산 한 카페에서 누르를 만났다. 예훈교회 진경호 씨가 소통을 도왔다.

형편 어려워 '기회의 땅' 한국으로

한국에 와서 처음 취직한 곳은 일산에 있는 한 공장. 중고차 사업을 하는 사촌이 거래처 사장을 소개했다. 사장은 한국인 팀장에게 누르를 맡겼다. 누르는 그에게 분쇄기, 슈레더 밸브 등 작은 장비를 수리하는 일을 배웠다. 누르는 시리아에서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때려치우고 용접·정비 일을 시작했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돈을 벌어야 했다. 그때 경험이 한국에서 일을 배우는 데 도움이 됐다.

문제는 언어였다. 누르는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 영어도 능숙하지 않았다. 팀장이 일을 시키면 눈만 껌뻑거렸다. 180cm 이상 되는 큰 젊은이가 멀뚱히 서 있기만 하니 직장 상사는 답답해했다.

"처음에 많이 힘들었어요. 한국어도 모르고 영어도 모르고. 팀장이 일을 시켜도 전혀 알아듣지 못했어요. 시리아인 동료가 3명이 있는데, 이들이 해 주는 통역으로 일을 배웠어요. 근데 동료들이 오역해서 같이 혼나는 일이 더 많았던 거 같아요. 팀장이 우리를 몹시 싫어했죠. 사장님한테 왜 자기에게 이런 애들을 맡겼느냐고 따지기도 하고 그랬어요."

누르는 누구보다 한국에 빨리 적응하고 싶었다. 퇴근하면 한국어를 공부했다. 외국인에게 무료로 한국어를 알려 주는 사이트에서 배웠다. 한국 드라마를 찾아보기도 했다. 누르는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를 제일 좋아한다.

누르는 이제 한국에서 만난 시리아인 중 자기보다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자부한다. 일도 손에 익어 지금은 중장비 수리를 맡았다. 그렇게 괴롭히던 팀장과도 지금은 친한 형·동생 사이가 되었다.

누르는 18세 나이에 언어도 모르는 이국땅을 찾아왔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아버지와 형이 정부군에 잡혀가다

한국에 온 지 1년이 되었을 때, 누르는 가족들에게 믿기지 않는 소식을 듣게 된다. 친형이 정부군 총에 맞아 숨졌다는 것이다.

시리아에서는 내전이 시작됐다. 40년 넘게 독재해 온 알 아사드 정권에 대항한 시민들이 정부군에 맞서 군대를 조직했다. 시리아에 내전이 발생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누르는 당시 한국에 적응하기 바빠 고향에 관심 쓸 여유가 없었다. 형이 갑작스레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누르가 시리아 상황에 눈을 뜬 계기가 되었다.

누르가 살던 곳은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남부 지역. 정부군 점령지였다. 정부군은 민주화 운동을 하던 누르의 삼촌을 체포하려 했다. 누르의 삼촌은 이를 알고 다른 지역으로 피신했다. 정부군은 삼촌 대신 누르의 아버지, 형, 숙모, 사촌 동생을 연행했다. 삼촌과 동료들은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 정부군과 교전을 벌였다. 그러던 중 누르의 형이 탈출을 감행하다 정부군 총에 맞은 것이다. 누르의 삼촌도 저격수 총에 맞아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정부군은 삼촌과 형의 시신을 수거해 갔어요. 숙모는 풀어 주고 아버지와 사촌 동생은 교도소로 끌고 갔어요. 둘은 1년 3개월 동안 수감됐어요. 그 얘기를 전해 듣고 많이 힘들었어요. 제가 너무 무관심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6년간 진행된 내전으로 시리아 주민들이 입은 피해는 극심하다. 사진 출처 <포커스뉴스>

내전으로 민간인이 입는 피해는 극심했다. 미사일·포탄에는 눈이 달려 있지 않았다. 전쟁과 무관한 여성과 아이들이 공습으로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누르는 자신의 형처럼 무고한 민간인들이 내전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고 말했다.

6년 동안 진행된 내전은 시리아 경제를 집어삼켰다. 기간 시설이 파괴되고 주요 도시는 폐허로 변했다. 누르의 가족들은 매달 누르가 보내 주는 돈으로 생계를 해결한다. 누르는 휴대폰으로 가족들 안부를 확인한다. 한국에 온 후 단 한 번도 고향에 가지 못했다. 가족들이 보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네, 보고 싶어요"라고 짧게 답했다.

12월 30일, 알 아사드 정부군과 시리아 반군은 휴전을 체결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그 다음 날 시리아 휴전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하지만 누르는 휴전에 비관적이다.

"정부군과 반군이 휴전협정을 맺으면서 시리아 주민들 상황이 이전보다 좋아진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지난 6년 동안 휴전·개전이 수차례 반복했어요. 상황이 또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몰라요."

시리아 내전을 얘기하는 내내 누르의 얼굴은 어두웠다. 누르는 이번 전쟁에 개입하고 있는 강대국들이 문제라고 말했다. 강대국들은 여러 정치적·경제적 이권 때문에 내전에 개입하고 있다. 누르는 내전으로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치고 있고 시리아는 피폐해지는데, 열강들은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며 분노했다. 그들은 목숨보다 자신들 이익이 더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IS도 무슬림이잖아 
무슬림은 모두 위험한 존재야"

 

시리아 내전이 길어진 이유 중 하나는 IS(이슬람국가) 출현에 있다. IS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로, 시리아 옆에 있는 이라크에서 만들어졌다. 이들은 유적지를 파괴하고 민간인을 납치해 목숨을 빼앗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IS는 내전을 틈타 시리아 북부·동부 지역에 있는 반군 세력을 흡수하며 세를 키웠다.

미국·EU 등 서방 국가는 IS를 국제 테러 단체로 규정했다. IS는 이역만리 한국에도 테러에 대한 공포를 심었다. 이 때문에 내전을 피해 고국을 떠난 시리아인 28명이 2015년 12월 한국에 왔다가 반년 넘게 인천국제공항을 벗어나지 못한 일도 벌어졌다. 당시 한국 사회는 난민을 배격하는 정서를 보였다. 테러의 위험이 있고, 난민을 받아들이다 보면 자국민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이유다.

누르는 가끔 한국인들이 자신을 IS와 동일시한다고 말했다. 너도 무슬림이니 나중에 IS처럼 자살 폭탄 테러 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누르에게 말한다는 것이다. 진심인지 장난인지 모르겠지만 누르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억울하고 분하다고 했다. 누르도 IS의 피해자다.

"제 사촌·친구 중에는 IS의 테러로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어요. 저는 피해자인데 왜 한국인들은 무슬림이라고 하면 위험한 존재로 여기고 가해자로 여기는지 모르겠어요. IS는 진정한 무슬림이 아니에요."

일을 하면서 알게 된 한 한국인은 누르에게 개종을 강요했다. 교회 장로인 그는 누르에게 "너희 무슬림은 위험한 존재다. IS도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다. 이슬람 믿지 마라. 우리 교회에 와서 기독교로 개종하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 기독교인 사이에서는 할랄 식품 단지 괴담이 돌았다. 일부 기독교인은 거리로 나와 반대 시위를 벌였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지난해에는 시리아 난민들이 인천국제공항에 구금되었다는 사실을 들었다. 누르는 동료들과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누르는 동포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힘들었다.

"한국 기독교인들 사이에 할랄 식품 단지 괴담이나, 난민들이 IS와 연관되어 있다는 루머가 돌았다는 얘길 들었어요. 이번 예훈교회 기사에도 비슷한 댓글을 본 거 같아요. 이슬람을 잘 모르는 기독교인들이 막연한 공포, 경계심을 갖고 아랍 사람들을 배격하는 거 같아요. 난민들은 지금도 상황이 무척 안 좋아요. 왜 더 힘들게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한국 대학에서 천문학 공부를

다행히 한국에는 누르를 IS와 연관 짓거나 개종을 강요하는 사람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좋은 친구도 많이 있었다. 이들 덕분에 한국에서 새로운 삶도 꿈꾸고 있다.

인터뷰를 도운 예훈교회 진경호 씨는 누르가 한국에서 만난 첫 한국인 친구다. 경호 씨는 학생 때 튀니지에 단기 선교를 다녀온 후, 중동에서 통역병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어 아랍어에 능통하다. 시민단체 일을 돕던 경호 씨가 누르의 사촌을 알게 됐고, 누르의 사촌이 경호 씨를 누르에게 소개해 줬다.

둘은 빠르게 친해졌다. 경호 씨가 2013년 중동으로 파견되기 전 국방부에서 잠깐 복무할 때, 누르가 종종 면회를 오기도 했다. 처음 사귄 한국인 친구라 친해지고 싶었다고 누르는 말했다. 경호 씨는 누르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고 한국 문화를 알려 줬다. 경호 씨가 다니는 예훈교회 친구들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누르는 한 달에 한 번 예훈교회 주일예배에 놀러간다.

누르와 진경호 씨. 2012년부터 알게 된 둘은 깊은 우정을 나누고 있다. 진 씨는 누르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소개해 주었다. 사진 제공 진경호

예훈교회 교인들을 만나면서 한국 사람들이 친절하다는 것을 경험했다. 한국어 교원 자격증이 있는 교역자는 누르에게 한국어를 전문적으로 가르쳐 주었다. 교회는 누르에게 개종을 강요하지 않았다. 손님으로 오는 누르를 있는 그대로 맞아 줬다. 예배가 끝나면 운동장으로 나가 함께 공을 찼다.

누르는 올해 목표가 하나 생겼다. 한국인 귀화 시험을 치는 것이다. 한국인이 되면 레바논을 통해 시리아에 있는 가족을 만날 수 있다. 이직·이사할 때 더 이상 지역 출입국사무소에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

언젠가는 한국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는 누르. 그는 우주와 행성에 관심이 있어 천문학을 배우고 싶어 한다. 여러 오해와 차별적인 시선을 받았지만 누르에게 한국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다. 그래도 한국이 좋으냐는 질문에 누르는 답했다.

"그럼요. 한국이 좋아요. 좋은 친구를 사귀었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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