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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VS 루터
"내일 지구 종말이 와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누구의 말인가
  • 최주훈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17.01.04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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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최주훈 목사(중앙루터교회)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허락을 받고 전문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루터 연재 4: 스피노자 VS 루터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이 멋진 경구를 말한 주인공은 누구일까? 스피노자? 땡~! 보통 스피노자의 경구로 알려져 있지만, 아무리 뒤져도 근거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종말의 때까지 못 찾을 게 분명하다. 팩트 체크를 해 보면 재미난 사실이 하나 더 있는데, 이 명언을 스피노자의 것으로 알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이런 건 1등 안 해도 된다.

구글링으로 Spinoza와 apple로 검색을 해 보면 비슷한 문장조차 찾을 수 없다. 즉, 스피노자의 경구라는 것은 근거 없는 낭설이다. 그럼 이런 낭설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아래 링크를 따라가 보면, 인용의 오류는 1971년 <중앙일보> 사설로부터 시작했고, 이것이 일반 상식으로 굳어 버린 것을 볼 수 있다(아래 링크를 참조하면 재미있는 인용의 오류들이 포착된다). http://economicview.net/270/ http://politeia.egloos.com/m/2441994 신문, 잡지, 서적(심지어 철학 서적)은 물론이고, 이명박이나 이회찬 같은 유명 정치인들의 비장하고 진지한 인터뷰와 연설에서도 인용의 오류는 거듭 확인된다. 결국 비장하게 엉뚱한 말을 한 것이 되어 버렸다.

검색을 국외로 확장해 보면 바로 발견하겠지만 이 경구는 스피노자가 아니라 거의 모든 경우 루터의 말로 검색된다(가끔 마르틴 루터와 마르틴 루터 킹 Jr.를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 루터의 말인 것은 확실할까? 글쎄다….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내년이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라 한국에서도 많은 분이 독일로 종교개혁지 탐방을 가게 될 텐데, 몇 군데에서 '루터 하우스(Lutherhaus)'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원래대로 하자면 루터가 태어난 아이스레벤 정도에만 있을 법한데, 비텐베르크와 아이제나흐에서도 루터 하우스를 만날 수 있다. 그중 아이제나흐에 가 보면 루터가 하숙했다고 알려진 (실제로는 이것도 불분명하다) Cotta 가족의 집 앞에 돌비석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거기 바로 우리가 스피노자의 말로 알고 있는 문구 밑에 "Martin Luther"라고 이름이 박혀 있다.

이 명언의 정확한 출처를 독일인들에게 물어보면 '루터의 일기장'이라는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루터의 일기장은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함정이다.

게다가 루터가 사과나무를 길렀는지조차 의문스럽다. 물론 그의 아내인 카타리나 폰 보라가 맥주 제조뿐만 아니라 포도주 생산을 위해 포도원을 직접 경작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사과나무 재배는 확실치 않다. 중세 시대 사회인데도 불구하고 공처가로 유명했던 루터였지만, 아내가 억척스레 살림을 꾸려 나가던 포도원에서 작물을 심고 경작을 도왔다는 기록도 전무하다.

이런 것으로 추정해 볼 때 루터가 사과나무를 직접 심었다는 것은 상당히 의심스럽다. 물론 가능성 역시 열려 있다. 어느 날 사과나무 한 그루 심은 감격으로 저녁에 일기장에 남겼을 수도 있다. 다만 앞서 언급한 대로 일기장이 남아있지 않다는 게 문제다.

그럼 도대체 이 말의 명확한 출처는 어디일까?

최초 출처는 1944년 10월 5일 헤센주 교회 멤버들에게 보내는 목회 신문(Rundbrief)에 등장한다. 헤센의 목사였던 칼 로츠(Karl Lotz)가 쓴 기고문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첫 번째 출처다. '바르멘 선언(Barmer Theologische Erklärung, 1934.5.31.)을 들어 본 분들이 있을 것이다. 1934년 히틀러가 정권을 휘어잡고 독일은 나치 체제로 전환하게 된다. 이때 히틀러에 저항하기 위해 본회퍼와 칼 바르트 같은 신학자 그룹을 중심으로 개혁파와 루터파 교회들이 연합하여 만든 교회 연합체가 '고백교회(Bekennende Kirche)'인데, 이때 저항하며 만든 신학 선언문이 바로 바르멘 선언이다. 히틀러 정권 패망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하던 1944년 말까지 여기 속한 그룹들은 나치친위대(SS)와 비밀경찰이었던 게슈타포로부터 심각한 감시와 탄압을 받았다.

이런 긴박한 상황 속에서 칼 로츠 목사는 고백교회 멤버들에게 비밀리에 신문 형태의 목회 서신을 만들어 돌렸다. 목숨 건 신앙적 용기가 없다면 불가능했을 것이 분명하다.

루터의 경구가 인용된 앞 구절이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 민족은 지금 매우 급박한 상황 가운데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보내는 이 글은 절대로 훼손되지 않습니다. 루터의 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중략)"

7개월이 지나 세상은 뒤바뀌었다. 1945년 5월 8일 히틀러의 독일은 연합군에게 항복하게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더 질문을 해 보자. 로츠 목사의 용기는 가상하지만 왜 이런 글을 '루터의 말'이라고 했을까?

7,000구절이 넘는 루터의 <탁상담화>에도 나오지 않고, 1883년부터 100여 년 동안 편집된 루터의 바이마르 전집에도 한 구절도 나오지 않는 말을 왜 루터의 말이라고 했을까?

혹시 이 용감한 목사님이 요한 알브레히트 벵겔(Johann Albrecht Bengel, 1687~1752)의 말을 루터의 말로 착각한 것은 아닐까?

벵겔 같은 경우에야 충분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보인다. 슈바벤 경건주의의 창시자로 알려진 그는 요한계시록 20장을 근거로 후천년설을 지지하면서 종말론을 펼친 인물이었다. 그는 실제로 1836년 7월 18일을 종말의 때라고 계산하고 설교했던 인물이니 충분히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그냥 '가능성'일 뿐이다.

그건 그렇다치고, 우리나라에서 이 경구를 스피노자의 것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독일이나 서양에선 이 말을 루터의 것으로 철석같이 믿고 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 이 명언의 출처는 명확한 근거 자료가 없기 때문에 아직까진 일종의 '전설(Legende)'이라고 할 수 있다. 단, 전설이란 완전히 근거 없는 곳에서 나오지 않는 법이니, '개연성은 있으나 확증되지 않았다' 정도로 이해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종합해 보자.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경구는 스피노자의 것은 분명 아니고, 루터와 관련된 전설이다. 혹시 루터의 일기가 발견된다면 '전설'에서 '진실'로 바뀔 날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내일 루터의 일기가 발견된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설교 준비를 해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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