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2016년 4월 30일, 중국 길림성 장백현 한 야산에서 한충렬 목사(장백교회)가 피살된 채 발견됐다. 한 목사는 자신의 차량 안에서 피를 흘린 채 숨져 있었고, 그가 쓰던 휴대전화는 사라진 상태였다. TV조선은 정부 관계자 말을 빌려, 배후가 북한 보위부로 추정된다고 12월 25일 보도했다.

북한 선교, 혹은 북한 주민 지원과 관련해 한충렬 목사가 차지하는 위상은 절대적이었다. 북한 양강도 혜산시와 맞닿아 있는 이곳은 지리적 여건상 북한 주민과의 교류가 잦았다. 한 목사는 평소 수많은 북한 주민에게 먹을 것을 건네줬다.

탈북자 출신인 주성하 북한 전문 기자(<동아일보>)는 한 목사 피살 당시 "북한 보위부가 지구상에서 가장 없애 버리고 싶은 교회를 꼽는다면 장백교회는 세 손가락 안에 반드시 들어간다"고 했다. 주 기자는 북한이 거목 하나를 잘라 낸 사건이라고 칭했다.

당시 중국 주재 북한 식당 종업원 13명이 집단 귀순해 시기적으로 미묘할 때였다. 언론에서도 한 목사 죽음을 앞다투어 보도하면서 한 달간 200건 가까운 기사가 쏟아졌다. 8개월이 지난 지금, 장백교회와 북한 선교는 어떤 상황일까.

생전의 한충렬 목사.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피살 당시 자극적 보도로 몸살…두 달 지나자 관심 뚝

<뉴스앤조이>는 북한 선교 관계자 A 씨로부터 조금 더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A 씨는 "올 스톱"이라는 말부터 꺼냈다. 북한과 연관된 모든 것이 한 목사 죽음 이후로 멈췄다고 했다. 그는 "한충렬 목사는 현지 기독교 양회 부주석이었다. 다시 말하면, 공직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을 북한이 제거했다는 것은 양국 간 외교 문제의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꼭 제거해야 할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A 씨는 한 목사 피살 당시 언론들이 취재 경쟁에 열을 올렸다고 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는 '단독' 꼬리표를 달고 피로 뒤범벅된 목사 차량 내부 사진을 공개했다. 언론에서는 한 목사가 북한 지하 교회 설립에 관여했다가 죽었다거나, 중국 여성 공안의 전화를 받고 나갔다가 참변을 당했다는 식으로 당시 정황을 보도했다.

A 씨는 이러한 보도를 당시 중국 정부가 민감하게 받아들였다면, 장백교회 교인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피로 물든 자극적인 사진 보도는 매우 위험했다고 회상했다. 장백교회도 한 목사 피살 당시 성명서를 발표해 "한국의 일부 매체들이 장백교회의 어려움을 이용하여 없는 말을 만들고 없는 사건을 만들어 모욕함을 참을 수 없다"며 추측성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관심은 빠르게 얼어붙었다.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2016년 8월부터 현재까지 한충렬 목사 관련 보도를 검색하면, 10건밖에 나오지 않는다.

한충렬 목사는 한국과 인연이 있는 목회자였다.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목회학 과정을 공부했고 평소 한국 목회자들과도 친분이 있었다. 한 목사 생전 평소 적지 않은 한국교회 목사가 장백교회에서 말씀을 전했다. 그러나 A 씨는 한 목사 피살 이후 장례식 과정에서나 그 후 연락해 오는 교회는 많지 않았다고 했다.

"한충렬 목사님은 조선족이지만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한국 목사님들과 관계를 맺으며 사역해 왔다. 평소 한국인 목회자들이 방문하면 위험을 감수하고 인근에서 말씀 집회를 열기도 했다. 그분의 공을 생각하면 교계 단체들이 나서서 순교자로 추서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심지어 이런 일도 있다. 한충렬 목사 사망 이후 국내에서 부의금을 모아 장백교회에 전달하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부의금은 장백교회에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배달 사고'가 났거나, 혹은 처음부터 부의금을 전달할 의도가 없었다는 뜻이다.

장백현에서 북한은 강 건너편이다. 지리적 여건상 넘나들기 편해 북한 주민과의 교류가 잦다. 한 목사를 찾아오는 북한 주민도 많았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한충렬 목사를 기리기 위해 나선 건 조선족 목회자들이었다. 현지 목회자들은 한 목사가 피살된 그의 차량을 계속 선교 사업에 쓰자고 결의했다. 내부를 깨끗이 청소해 티베트 지역 선교사에게 차량을 전달했다. 중국 동북쪽 끝에 있는 길림성에서 서남쪽 끝에 있는 티베트까지는 장장 5,000km다. 차량으로 64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조선족 목회자들은 산소호흡기를 착용해야 넘어갈 수 있는 산맥도 통과해 가며 먼 길을 떠났다. 이들은 중국 공안 당국으로부터 오해를 받을 수 있음에도 기꺼이 나섰다.

한 목사의 피가 배어 있는 이 차량은 현재 티베트 지역에서 선교를 위해 의미 있게 쓰이고 있다. 이런 사실은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밑 빠진 독 물 붓기처럼 보여도 믿어 주고 도와 달라"

시기적으로 위험하고 민감한 상황에서 한국교회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먼저 북한 선교·지원의 특성상 사업의 결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한충렬 목사 생전에는 한국 지역 목회자가 방문하면 북한 주민들을 만나게 하기 위해 외딴 장소에서 접선해 왔다고 말했다. 자칫하면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가시적인 것을 원하는 한국 목회자들을 위한 방편이었다고 했다.

A 씨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현지 사람들과 신뢰 관계를 쌓는 일이라고 했다. 단순히 먹을 것 주고 입을 것 지원한다고 신뢰 관계가 생기지 않는다는 의미다. 오랜 기간 만나고 대화하면서 서로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어야 하기 때문에 사정을 다 밝힐 수 없는 때도 있다.

교회 입장에서 이런 방법은 가시적이지 않고 효과적이지 않아 보일 수 있다. A 씨는 인간관계를 쌓는 것은 그만한 시간이 필요한 일이며,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이 기간이 더 길어진다고 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느껴져도, 꾸준히 그리고 묵묵히 인내하며 지원하면 좋겠다는 게 A 씨 바람이다.

오랫동안 북한 지원 사업을 해 오고 있는 방인성 목사(하나누리 대표) 또한 한국교회가 가시적 성과 위주의 선교나 지원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 보도 한 줄 안 실리더라도, 북한 사람들에게 피부로 와 닿을 수 있는 가장 작은 것들부터 신경 써야 한다는 말이다.

"북한에 농사에 쓸 비닐이나 쌀을 대규모로 지원하는 사업은 언론에도 많이 보도된다. 그런 사업들은 대개 북한 당국과 연결된다. 한국교회는 민간 사업의 역할을 맡기 때문에 정부가 아닌 민간 대 민간으로 접촉해야 한다. 시나 중앙 단체에 지원하는 것보다, 한 마을 한 농장 단위로까지 관심을 확대해야 한다. 이런 곳은 언론에 잘 보도되지 않는다."

북한 사역 관계자들은 더 나아가 가장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각 지원 단체, 통일 단체의 경험 공유와 연대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직까지는 개교회 혹은 단체별 '각개전투' 양상이 강하지만 경험을 한곳으로 모아야 한다는 필요성은 여러 곳에서 인식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11월 말 '한국통일선교연합'이라는 연합 단체가 출범시켰다. 이성희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장이 이사장을 맡고 교계 지도자들로 구성된 공동대표 100명을 세우기로 했다. 분산된 인력과 재정을 한 곳으로 모아보겠다는 취지지만 아직까지 북한 선교 관계자들이 체감하는 변화는 미미한 실정이다.

A 씨는 "북한 선교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같다. 북한 내부 사정이 지역과 상황별로 천지 차이인 만큼, 각 단체나 개인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은 북한의 일부이지 전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많은 단체들이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단체 간 의사소통이 안 되면 효율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차원에서 한충렬 목사가 해 왔던 사역을 계승할 방안을 고민하고, 북한 선교를 위해 여러 단체들이 손잡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방인성 목사도 "장님 코끼리 만진다는 지적이 정확하다. 통일 단체 간 연대하고 지혜를 모으는 장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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