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12월 25일. 거리는 성탄절 분위기로 들떴다. 가로수와 상가들은 화려한 장식물로 한껏 멋을 내고, 가게에 들어서면 신나는 캐롤이 흘러나온다. 행인들의 눈빛은 따뜻하고 사랑스럽다. 모든 사람이 포근하고 행복할 것 같은 크리스마스. 이런 풍경과 달리, 전쟁의 포화 속에서 죽음과 사투를 벌이며 성탄절을 보내는 곳이 있다. 시리아다.

시리아는 6년째 내전 중이다. 국민들은 전쟁으로 가족들과 이별하고 수십 년 동안 살았던 집과 고향을 잃었다. 법을 공부하기 위해 한국에 온 압둘 와합 사무국장(헬프시리아)도 최근 사촌 동생을 잃었다. 시리아 북부에 살던 그의 사촌 동생을 IS가 참수한 것이다. IS는 압둘 와합 가족들의 재산을 강탈해 갔다. 시리아에 살던 압둘 와합 가족들은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성탄절을 앞두고 찾아온 비보였다.

시리아 반군 병사의 모습. 시리아 반군은 40년 동안 장기 집권한 알 아사드 정권에 대항하기 위해 들고일어났다. 사진 출처 포커스뉴스
2011년 3월, 전쟁에 불을 지핀 낙서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서 벌어진 시리아 내전은 러시아, 미국, 이란, 터키 등 다른 국가가 개입하면서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아름다운 도시 알레포는 폐허가 됐고, 기반 시설이 대부분 파괴됐다. 평화롭게 살던 국민들은 고향을 등지고 유럽, 아시아 등을 전전하는 난민으로 전락했다.

비극적인 내전은 한 낙서에서 시작된다. 2011년 3월, '아랍의 봄' 영향을 받은 십대 학생들이 학교 담벼락에 "우리는 정권 전복을 원한다"라고 낙서를 했다. 시리아는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아버지 하페즈 알 아사드 전 대통령이 1971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알 아사드 가문이 40년 넘게 독재하고 있다.

경찰은 낙서를 한 학생들을 찾아내 구속, 고문했다. 주민들은 항의했고, 알 아사드 정부는 무력으로 이를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사망자, 부상자가 속출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시리아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반정부 시위는 초기 평화적인 모습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반정부 진영이 무장을 갖추고 군대를 조직하면서, 시위는 내전으로 확대됐다.

러시아 병사의 모습. 시리아 내전이 해를 거듭하면서 주변국들이 전쟁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사진 출처 포커스뉴스
정부 vs 반정부, 시아파 vs 수니파
러시아 vs 미국, 극단주의 vs 세속주의…

현재 시리아 내전은 주변국들 개입으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민주화를 위해 봉기한 반군과 이를 제압하려는 정부군 간 내전은 이제 국가 간, 종파 간 대립으로 변했다. 내전이 끝나지 않는 이유다.

시리아를 40년 동안 지배한 알 아사드 정권 지배층은 대부분 알라위파다. 알라위파는 이슬람 시아파의 분파로, 시리아 전체 인구 13%에 불과한 소수 종파다. 시리아 전체 인구 4분의 3에 가까운 수니파가 반군에 합류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내전 초기는 시아파-수니파 국가들의 종파 전쟁 양상을 띠었다. 수니파 맹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카타르, 터키, 요르단 등이 반군을 지원, 시아파를 이끄는 이란도 정부군을 도와 반군 진압에 나섰다.

내전은 점차 미국·EU와 러시아 간 대결 구도로 변했다. 미국·유럽연합(EU)은 평소 자신들과 대립각을 세워 온 이란이 시리아 내전 개입으로 중동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반(反) 알 아사드 진영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알 아사드 정권에 무기를 공급하며 가까운 관계로 지낸 러시아는 정부군을 지원했다.

내전은 반군 일부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세력 이슬람국가(IS)에 합류하면서 더 복잡해졌다. IS는 겉으로 보기에는 알 아사드 정권에 대항하는 모습을 취했지만, 실제로는 시리아 북부, 동부에 있는 이슬람 세속주의 반군 세력을 흡수해 나갔다.

온건한 세속주의 반군 세력의 영향력이 약해진 반면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IS가 점차 힘을 얻자, IS를 국제 테러 단체로 규정해 온 미국·EU 입장이 애매해졌다. 무작정 알 아사드 정권을 공격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미국·EU가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자, 지난해 9월 러시아는 군사 개입까지 감행한다.

한 시리아 남성이 무덤 위에서 울고 있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가장 피해를 받고 있는 이들은 시리아 주민이다. 사진 출처 포커스뉴스
죽음의 위협에 노출된 시리아인

러시아군과 시리아 정부군은 반군이 점령하고 있던 알레포, 홈스 등을 무차별 공습했다. 특히, 시리아 제2의 도시 알레포는 가장 극심한 격전지였다. 일레포를 향한 포탄과 미사일은 군인, 민간인을 가리지 않았다.

지난 8월 17일,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구출된 한 아이의 모습은 전 세계가 알레포를 주목하게 만들었다. 이 아이는 먼지와 피를 온몸에 뒤짚어쓴 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지난달 알레포를 빠져나오는 피난 행렬 위로 포탄이 떨어져 민간인 수십 명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기도 했다.

미국·영국 등 서방국가는 러시아의 무차별 공습을 전쟁범죄라고 비판했다. 지난달 영국·아일랜드 주재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러시아 공습을 규탄하는 시위가 열렸다. 한국에 거주하는 무슬림 100여 명도 12월 19일 러시아대사관 인근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폭격을 멈출 것을 촉구했다. 같은 날 터키에서는 러시아대사가 터키 경찰에게 살해됐다. 당시 범인은 "알레포와 시리아를 잊지 말라"고 외쳤다.

전쟁에서 가장 피해를 받고 있는 이들은 시리아 국민이다. 영국 시리아인권관측소에 따르면,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이후 누적 사망자는 45만여 명, 부상자는 100만 명에 이른다. 피난길에 오른 시리아인은 1,200만 명으로 국민의 절반 이상이다.

지난 12월 20일 국내 평화 단체 20여 곳이 기자회견을 열어 시리아 내전에 대한 평화적 해결을 국제사회에 촉구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지난 20일, 국내 평화 단체 20여 곳은 광화문광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시리아 내전 종식을 촉구했다. 이날 발언자로 나선 압둘 와합 사무국장은 "강대국들이 여러 이해관계 때문에 시리아 문제에 개입하면서 내전, 학살이 확대되고 있다. 종전을 위한 협상도 강대국들끼리 하고 있다. 시리아 사람들은 더 이상 이들이 전쟁에 개입하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러시아를 위시한 시리아 정부군은 12월 22일(현지 시각) 알레포 지역을 100% 탈환했다고 선언했다. 반군이 알레포를 점령한 지 4년 반 만이다. 반군 4,000여 명과 알레포 주민 대다수는 반군이 점령하고 있는 이들리브 지역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정부군은 알레포 점령에 이은 다음 타켓은 이들리브라고 밝혔다.

러시아·시리아의 공습은 지금도 계속된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