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최주훈 목사(중앙루터교회)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허락을 받고 전문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루터 연재 1-1: 신실한 신앙?

시간 날 때마다 읽을 거리를 연재물 형식으로 하나 올려 보려고 한다. 언제까지 얼마나 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루터와 관련된 오해'들을 중심으로 연재해 보려고 한다.

종교개혁을 논할 때 가끔 잊고 있는 사실이 있다. 16세기는 중세와 단절된 새로운 세계가 아니라 철저히 중세의 연장선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난 루터를 가르치면서 '시대의 아들'이란 표현을 잘 사용한다. 루터를 '영웅'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꼭 그렇진 않다. 그는 사람냄새 풀풀 나는 그런 시대의 인물이었다. 그것이 매력이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루터의 한계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시대의 아들 루터', 그가 살았던 중세는 어떤 세상이었을까? 루터와 동시대인들이 이해하고 있던 세상은 어떤 색깔이었을까?

국제칼뱅학회 회장 헤르만 셀더하위스는 루터에 대한 글을 쓰면서 "유령의 숲에서 하나님을 추구한 사람"이라는 표현을 했다[<루터, 루터를 말하다>(세움북스)]. 탁월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유령의 숲이란 루터 시대를 비유한 말인데 '미신적 세계'란 뜻이다.

중세인들은 말 그대로 무언가 신비하고 기묘한 요술적 힘들이 수수께끼처럼 얽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여겼다. 천사, 악마, 마녀, 요정 트롤, 사람처럼 말하는 동물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고, 거주민 가운덴 이미 죽은 사람도 숨어 살고 있으며, 신탁의 비밀과 운명의 점괘, 문화적 타부 같은 것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 때문에 집 같은 건축물이나 옷에는 악귀를 막고 복을 들이기 위해 치렁치청 장식을 했다. 지금 이 시대도 미신적인 세계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중세는 그야말로 '유령의 숲'이었다.

루터와 관련해서 예를 들어 보자.

루터의 모친인 마가렛 루터는 아주 '신실한 신앙'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어느날 어린 딸이 갑자기 죽게 된 적이 있었다. 당시 위생 상태와 의료 수준을 생각하면 이런 일은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아침에 벌레 물려 열이 나다가 저녁 때 죽을 수도 있었고, 페스트 때문에 일주일 만에 한 마을이 뚝딱 사라진다거나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런데 어린 딸이 죽자 마가렛 루터는 곧장 그 원인을 마녀가 한 짓이라고 의심했다. 자기 딸이 너무 예쁘기 때문에 마녀가 시샘 나서 그 생명을 앗아 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거기까지면 좋을 텐데, 그 의심의 화살은 옆집 살던 아줌마에게로 향했다. 옆집 아줌마가 딸을 죽인 마녀라고 속으로 확신했던 것이다.

그런데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격으로, 얼마 후에 의심하고 있던 그 여자가 마녀재판으로 공개 처형 당하게 되자, 루터의 엄마는 속으로 의혹을 품고 확신하던 일을 가족과 이웃들에게 알렸다(Mario Süßenguth, Aus einem traurigen Arsch fährt nie ein fröhlicher Furz, Berin 2007, 16). 그리고 옆집 아줌마의 마녀재판은 정당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믿었다.

당시엔 이런 게 '신실한 신앙'이었다.

종교개혁자로 불리는 루터 역시 이런 신앙 세계 속에서 살았다.

(계속)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