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6일 광화문광장에 파란 고래가 등장했다. 사진 제공 김영만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광화문광장에 파란색 고래가 등장했다. 길이 7m, 높이 2m의 거대한 파란 고래는 이날 청와대 앞 200m까지 다다랐다. 고래는 노란 종이배와 세월호 희생자 304명의 캐릭터, LED 전구를 등에 업고 청와대 앞으로 행진했다. 고래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사진을 찍었다. 현장 경찰들도 마찬가지였다. 경찰 버스 안에 탄 한 의경은 신기한 듯 창문 사이로 카메라를 들고 고래를 찍었다.

이 파란 고래는 건축가 김영만 씨 작품이다.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 행렬을 뒤로 한 채, 고래 등에 올라탄 희생자 304명이 하늘로 올라가는 석정현 작가의 그림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림대로 직접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한 게 이번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12월 20일, 경기도 파주에 있는 김영만 씨 작업장을 찾았다. 김 씨가 환히 웃으며 기자에게 믹스 커피 한 잔을 건넸다. 커피를 내민 손이 거칠고 손톱 밑이 까만 것을 보니 건축가가 맞았다. 커피를 마시며 자연스럽게 인터뷰가 시작됐다.

시민들, 광장에 나온 파란 고래에 환호

김영만 씨는 파란 고래와 거리로 나간 11월 26일,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파란 고래를 메고 나갈 준비를 하는데 진눈깨비가 내렸다. 아들과 한 활동가의 도움으로 광화문으로 갈 준비를 마쳤다. 성미산학교 1~2학년 학생들이 그린 그림과 촛불 민심을 나타내는 LED를 고래 등 위에 올렸다. 이때만 하더라도 고래가 큰 파장을 일으킬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날 시민들이 보인 반응을 잊을 수가 없어요. 사실 사람들이 고래를 보고 '길도 좁은데, 뭘 이런 걸 가지고 왔어'라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걱정도 했어요. 근데 고래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이 길을 터 주기 시작했어요. 박수를 치고 고래와 함께 사진을 찍더라고요. 고래가 포토존인 것처럼요. 거리에 있는 시민 하나하나가 아직 세월호를 잊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 사람들이 인터넷에 고래 사진을 올렸는데, 이것도 감동이었어요. 포스팅에 쓴 글을 봤는데, 다 제 마음과 같은 거예요."

그는 고래와 광화문 거리로 나온 직후 한 세월호 가족의 전화도 받았다. "옆에 가고 싶었는데, 차마 가지 못했다. 미안하고 고맙다"는 음성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나오길 잘했다 싶었다. 쏟아져 나오는 뉴스에 묻혀 점차 잊히는 세월호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가 김영만 씨는 파란 고래를 향한 시민들의 마음에 감동을 받았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동거차도에 돔형 텐트 만들다

사실 김영만 씨와 세월호의 인연은 이게 끝이 아니다. 올해만 두 차례 동거차도를 다녀왔다. 지난 3월 초, 한 목사가 소셜 미디어에 올린 세월호 가족들의 동거차도 베이스캠프 사진을 보았다. 천막으로 지은 텐트는 늘 바닷바람에 훼손됐다. 가족들에게 텐트를 복구하는 일은 일상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때 친분이 있던 정진훈 목사(에덴정원교회)가 천막 텐트를 돔형 텐트로 바꿔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돔형 텐트는 바람에 튼튼해 쓰러지거나 훼손될 가능성이 적다. 그리고 돔형 텐트를 짓는 일은 김영만 씨 전문 분야였다.

그는 작업실에 있던 텐트 재료를 차에 실었다. 큰 돔 하나와 작은 돔 하나를 만들 수 있는 양이었다. 돈벌이가 되는 공사에 재료로 사용해도 되지만 세월호 가족을 위해 사용하고 싶었다. 1박 2일간 동거차도에 머물며 시민들과 함께 돔을 설치했다.

"아마 혼자였다면 어려웠을 거예요. 두 목사님이 아니었으면 마음만 있지, 행동은 하지 못했을 거 같아요. 세월호에 관심은 있었지만 직접 무언가를 한다는 게 부담되는 일이긴 하니까요. 그때 성미산학교 학생들, 부산에서 온 연극단원들, 서울에서 내려온 시민 네 분,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돔을 만들었어요. 저 혼자가 아니라 함께한 일이죠."

김영만 씨는 지난 3월 동거차도에 돔형 텐트를 제작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1,000원 없으면 마음 나누면 되는 거죠"

김영만 씨는 작은 교회가 기획한 '지오아카데미' 강사로도 활동한다. 암기가 아니라 일상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입체 모형으로 수학과 기하학을 배우는 수업이다. 일주일에 두 번 초등학생·주부를 가르친다. 고양시 덕양구 동네 아이들과 정이십면체 나무 축구공도 만들고, 자신의 전문 분야를 살려 플라스틱으로 작은 돔도 만들었다.

'지오아카데미'는 6년 넘게 인연을 이어 온 정진훈 목사와 함께 시작한 일이다. 한 번 작업 현장에 들어가면 몇 달씩 지방에 머무는 그가 규칙적으로 시간을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일로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가진 것들을 나누며 사는 삶이 서로를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정 목사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김영만 씨는 인터뷰를 마치며, 나눔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당부했다.

"마음을 나누는 것에 '많고 적음', '크고 작음'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거 같아요. 나에게 1,000원의 가치가 이웃에게는 1만 원의 가치가 될 수도 있고요. 1,000원이 없으면 마음으로 함께하면 되죠. 나를 위해 또는 가족만을 위해 살지 않고 이웃과 마을을 둘러보면 좋을 거 같아요."

김영만 씨는 아이들에게 입체 도형을 만들면서 배우는 기하학을 가르친다. 그가 수업 자료인 입체 도형을 설명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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