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바른손약국 김유곤 약사를 만나기로 한 날, 거짓말처럼 독감에 걸려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약도 못 먹고 잠을 자다가 눈을 뜨니 해는 이미 저물었다. 병원은 물론 동네 약국도 문을 닫았다. 오들오들 떨며 몇 분 더 걸어가니 불이 켜진 약국이 보였다.

약사는 "이제 마감한다"고 말했다. 밤늦게까지 하는 약국이나 24시간 약국이 없냐고 물으니 "아이고, 그럼 응급실을 가야지… 3km 떨어진 곳에 11시까지 하는 곳이 있고, (24시간은) 없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신을 차리고 하루 뒤인 15일 밤. 바른손약국 김유곤 약사를 만났다. 김 약사는 2010년부터 부천 역곡역 인근에서 24시간 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전날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밤늦게까지 문을 여는 약국을 찾기가 힘들었다고 말하니 "여기로 오지 그랬어요" 하며 웃는다. 그는 매일 <뉴스앤조이> 기사를 읽는 열성 후원자다.

<뉴스앤조이>가 김유곤 약사를 2년 만에 다시 만났다. '후원자 인터뷰'로 처음 만난 그는 오래된 <뉴스앤조이> 독자다. 몇 년이 지나도 한결같이 약국을 24시간 지키고 있다. '약속' 때문에. 뉴스앤조이 최승현
"약속 지키는 크리스천 있다고 보여 주려고"

24시간 아픈 사람들을 만나는 김유곤 약사. 언론에도 제법 소개됐고, 알아보는 사람도 늘었지만 김 약사 일상은 한결같다. 새벽 1시까지 약국 문을 열어 놓는다. 1시에서 오전 9시 사이에도 벨을 누르면 문을 열어 준다.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약국은 바빴다. 단둘이 앉아 5분 이상 대화하기가 힘들었다. 독감이 유행이라 그런지, 손님들은 주로 감기약을 찾았다. 화이투벤, 테라플루, 판콜, 스트랩실…. 원하는 약이 있으면 꺼내 줬고, 증상을 말하면 가장 효능 좋은 약을 내줬다. 요즘 같은 때는 새벽 1시가 넘어도 30분에 한 명은 꼭 약국을 찾는다.

김 약사는 "뭐든 꾸준히 하는 게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올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처음 심야 약국 제도를 시범 시작하니까, 아무도 안 하려고 해요. 울며 겨자 먹기로 부천시약사회 임원들이 맡았어요. 처음에는 '6개월만 하자, 6개월이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죠. 그랬는데, 계속 있어 보니까 새벽에 약 찾아 헤매는 사람이 다 서민들이에요. 그거 먹고 다음 날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 혜택받게 해 줘야겠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왔어요. 그분들 심야에 약 찾아서 오시는데 문 닫혀 있으면 얼마나 실망하겠어요. 날도 추운데.

세월호 문제도 그렇고, 최순실 사태도 그렇고, 전부 자기 자리 안 지켜서 생기는 문제들이잖아요. 돌아보면 이 사회가 제자리 안 지키는 사회에요. 그래서 '기성세대가 약속 안 지키는 건 아니다. 지금 세대에게 기성세대도 약속 지킨다' 얘기해 주고 마음이 있었어요.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라면 그 길을 가야 할 것 아닌가 하는 생각."

어떻게 보면, 본인 스스로가 기성세대이자 사회에서 눈총받는 크리스천이다. 왜 그 책임을 스스로 져야겠다고 결심했는지 물었다. 주저 없이 답이 돌아왔다.

"의무감에 하는 건 아니고… 우리가 무슨 억울한 일 있을 때 길거리 나서서 데모하고 1인 시위하잖아요. 저 1인 시위하는 거예요. 정부와 제도, 동료 약사들 상대로요. 우리 잘나서 약사 된 것 아니다. 아픈 사람에게 약 지어 주기 위해 하는 거다, (이렇게 시위하는 거죠.)"

평일 밤 헬스장 갈 때, 주일 교회 갈 때, 잠깐 밥 먹을 때 빼고는 항상 약국에 있다. 잠도 약국에서 잔다. 급한 손님들이 있을까 싶어 나갈 땐 항상 안내 문구를 걸어 놓고 나간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동료와 정부를 향한 한결같은 외침이 이어진 지 벌써 6년째다. 이 외침은 어떻게 돌아왔을까. 애석하게도 김 약사와 같이 길을 걷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그래서 시흥에서, 인천에서, 일산에서까지 김 약사를 찾아온다.

심야에도 약국을 운영하려면 1명으로는 힘들다. 한 명이 더 있어야 되는데, 그러려면 한 달에 못 해도 400만 원은 들어간다. 정부가 주겠다는 보조금은 200~300만 원선. 김유곤 약사는 돈을 많이 줘도 잘 쉬겠다는 게 요즘 사람들 심리인데 누가 심야 근무하겠느냐고 반문한다.

"혼자서 심야에도 일하면, 잠을 제대로 못 자요. 30분에 한 명씩 오면 그렇죠. 심야에 판 약값 순수익이 잘해야 1만 원인데, 전기세나 기타 비용 생각하면 결국 몸으로 때우는 거예요. 결국 사명감 있어야 한다는 거죠.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요. 사실 새벽 1시까지만 해도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도움될 텐데… 여기저기서 와서 보고는 '김 약사님 대단합니다' 하면서도 '우리는 그렇게 못 해요. 김 약사님이니까 하는 거죠'라고 해요.

크리스천 약사들이 들고일어서면 좋겠어요. 제가 아까 피켓 시위라고 했잖아요. 그분들 함께하자고 시위하는 거죠. 예수님 사랑 전하기 위해 누릴 수 있는 것과 쉬고 싶은 마음 포기하자고요."

어려운 길 뒤에는 가족이 있다. 아내 얼굴 못 보고 사니 이혼한 것 아니냐는 소문도 돌았지만 부부 관계는 좋다. 아내는 분당에 산다. 24시간 약국을 하다 보니 집에 갈 수 있는 건 일요일 하루뿐. 아내와 분당우리교회(이찬수 목사)에 출석 중인 김 집사는 그제서야 밀린 '가정 민원'을 처리한다. 아내와 쇼핑도 하고, 걷기도 한다. 흔히들 관계가 소원할 거라 생각하지만, 김 약사는 더 좋단다. 주중에 세 번씩 아내가 약국에 찾아와 얼굴을 보고 가노라면 '연애'할 때 기분이 든다고 했다.

손님들이 쉴 새 없이 들어온다. 겨울철 손님들에게는 꼭 유자차를 한 잔씩 타 준다. 8년째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손님. 유자차를 사 가신 게 아니고 농촌 교회에 1만 2,000원 기부하시고 청소년들에게 3,000원 기부하셔서 제가 유자차를 드리는 거예요."

김유곤 약사는 약국을 찾는 사람들에게 유자차를 한 잔씩 준다. 테이블에는 고흥에서 올라온 유자차가 여러 병 놓여 있다. 유자차를 맛보고 김유곤 약사 넉살에 넘어간 사람들은 흔쾌히 한 병씩 사 가곤 한다. 한 병에 1만 5,000원이다. 이 중 1만 2,000원은 유자차를 만든 고흥 거금도 교회에 보내고, 3,000원은 부천시 청소년을 위해 기탁한다. 8년째 하고 있어 단골 고객도 생겼다.

좋은 일 한다는 생각이 약사와 손님 사이 대화를 좀 더 연다. 김유곤 약사가 손님을 구면인 듯 맞는 덕도 있다. 그는 손님과 웃으며 대화하는 게 곧 '선교'라고 믿는다.

"저에겐 약국이 선교지입니다. 사람들 보통 외국에 나가는 걸 선교라고 생각하죠. 해외에 나가서도 선교할 수 있지만 국내에서도 가정이든 교회든 직장이든 하나님 통치 이루어지게 하는 곳이 선교지라고 생각해요. 약국도, 그런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도구가 '약'인거죠. 그러니 손님들 보면서 보면서 웃어야죠. 자꾸 웃으면 웃어져요."

김 약사는 기자에게도, <뉴스앤조이> 독자에게도 행함으로 보여 주는 삶을 살자고 말했다. 입으로 시인해 구원에 이른다고는 하지만, 김 약사는 삶에서 예수를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고 굳게 믿는다. 자기 전 늘 하루를 돌아본다.

"종교적 열심으로 살았나 성령 안에서 살았나를 돌아봐요. 어떤 열매가 맺어졌나를 보는 거죠. 화내고 분 내면 '실패했네, 종교적으로 살았구나' 생각해요. 성령 안에서 하루를 보냈다면 약을 팔고 안 팔고를 떠나서 손님과 즐겁게 대화하고, '약사님 보면 마음이 편안해요' 같은 말도 듣고요."

김유곤 약사는 말씀대로 사는, 믿음을 삶으로 실천하는 게 진짜 신앙이라고 믿는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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