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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배' 가격에 폐지 사들이는 청년들
[인터뷰] '러블리페이퍼' 기우진·권병훈 대표…재능 기부받아 작품으로 '재탄생'
  • 최유리 기자 (cker333@newsnjoy.or.kr)
  • 승인 2016.12.17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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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길을 가다 보면 폐지 줍는 노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유모차나 리어카를 끌며 폐지를 줍는다. 수집한 폐지는 고물상에 팔린다. 고물상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략 1kg에 100원 정도 받는다. 100kg을 모으면 손에 1만 원이 떨어지는 셈인데, 이는 단순 계산에 불과하다. 하루 6시간 넘게 일해도 5,000원 벌기 힘든 게 현실이다.

노인들에게 '10배' 비싸게 폐지를 사들이는 작은 기업이 있다. 2016년 사회적 기업을 꿈꾸며 출발한 러블리페이퍼(기우진·권병훈 대표). 러블리페이퍼는 폐지를 주워 생계를 잇는 노인들과 '직거래'한다. 사들인 폐지는 공정을 거쳐 '캔버스'로 바뀐다. 캔버스는 예술가들의 재능 기부를 통해 그림, 캘리그래피 같은 작품으로 재탄생한다. 러블리페이퍼는 인터넷, 오프라인 장터에서 작품을 판매한다. 수익금은 다시 폐지 구입하는 데 쓰인다.

12월 14일, 인천 한 카페에서 러블리페이퍼 대표들과 만났다. 30대 두 청년은 폐지 줍는 노인에게 주목한 배경을 자세히 설명했다. 두 명은 기독교인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따라 회사를 운영한다고 말했다.

노인들에게 시중 가격 10배를 주고 폐지를 사들이는 러블리페이퍼. 권병훈(좌)·기우진(우) 대표. 뉴스앤조이 최유리
대기업 담합에 노인들은…

러블리페이퍼는 2013년 굿페이퍼로 시작했다. 굿페이퍼는 폐지 줍는 노인에게 방한 용품을 전달하는 봉사 단체였다. 언제부터 기우진 대표 눈에 폐지 줍는 노인들이 밟혔다.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고민했다. 처음에는 학교·교회·어린이집·가정 등에 책, 문제집, A4용지 기부를 요청했다. 기부받은 폐지를 직접 고물상에 팔아, 수익금으로 어려운 노인들에게 방한 용품을 전달했다.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다. 기우진·권병훈 대표는 머리를 맞댔다. 노인들에게 폐지를 비싸게 사들인 다음, 수익을 내기로 했다. 예술가들의 재능 기부를 받기로 했다.

공감을 살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페이스북에 취지를 설명하는 글과 함께 재능 기부를 받는다고 알렸다. 반응은 뜨거웠다. 4시간 만에 150명이 재능 기부를 하겠다고 신청했다. 폐지로 만든 캔버스를 보냈다.

그렇게 하나둘 작품이 모였다. 러블리페이퍼는 인천 송도 한 지역에서 작품을 판매했다. 미리 홍보하지 않았는데도 당일 50만 원을 벌었다. 두 대표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후 1년에 4차례 작품 전시회 및 판매를 진행하고 있다. 인터뷰를 진행했던 12월 셋째 주 토요일에도 '고맙습니다'를 주제로 2016년 마지막 전시회를 진행했다.

"첫 6개월은 할머니들과 친해지려고 사진만 찍고 다녔어요. 돕는 과정에서 할머니들이 길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가 눈에 보였어요. 개인이 나태하거나 무능해서 이런 노후를 겪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어요. 노년에 수입은 한정돼 있는데, 의료비·주거비·생활비 등 나갈 게 많잖아요. 일자리는 없고, 자녀 도움받기도 쉽지 않아요. 어쩔 수 없이 폐지를 줍기 시작한 어르신들이 많아요." - 기우진 대표

기우진 대표는 폐지 줍는 노인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노인 생계를 책임져 주던 폐지 가격은 2010년부터 하락하고 있다. 1kg에 최대 170원이었던 폐지 가격은 70~80원대로 떨어졌다. 기우진 대표는 가격 하락 원인을 대기업 제지 회사의 담합에서 찾았다. 대기업들은 폐지를 살 때 싸게 사들이고, 팔 때는 20~40% 인상해 마진을 챙겼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 57개 제지 업체에 과징금 2,000억 원을 부과했다.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대기업이 담합하니, 고물상도 유통 단가를 내릴 수밖에. 그 피해는 고스란히 피라미드 가장 아래에 위치한 폐지 줍는 노인들에게 돌아갔다.

"어르신들이 공정하지 않은 금액을 받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폐지 1kg이 80원일 때가 있었어요. 그때 계산해 보니까 7.5kg를 수집하면 600원이더라고요. 75kg를 주어야 6천 원이고요. 우리가 시중가보다 10배 비싸게 폐지를 사면, 어르신들이 최저임금은 받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 권병훈 대표

러블리페이퍼와 함께하는 할머니들. 작가들이 직접 그린 작품을 들고 있다. 사진 제공 러블리페이퍼
"당신의 이웃은 누구입니까?"

두 사람은 교회에서 처음 만나 연을 이어 가고 있다. 기독교 색채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지만, 기업에는 특유의 기독교 정신이 묻어 있다. 러블리페이퍼는 '소외받는 사람들이 곧 우리의 이웃'이라는 의식을 공유하고자 한다.

"굿페이퍼 로고를 보면 무한대 표시가 있어요. 하나님의 무한적인 사랑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 로고에 그런 표시를 넣어 놨죠. 직접적으로 기독교라는 걸 밝히진 않지만, 사업에 기독교 스피릿을 담고 싶었어요. 제 명함을 보면 '당신의 이웃은 누구입니까?'라는 문구가 있어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생활에서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저에게 이웃은 폐지 줍는 어르신들이 됐네요." - 기우진 대표

권병훈 대표는 러블리페이퍼에서 실무를 맡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권병훈 대표도 마찬가지다. 그는 군인 시절 한 전도사를 만났다. 전도사는 종종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게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이야기했다. 전도사의 가르침이 그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기우진 대표를 만나고 난 뒤 비전을 확고히 했다. 주변 문제에 관심을 두면서, 빈곤한 사람을 돕는 삶을 소명으로 삼았다.

두 대표는 사회적 기업, 이웃과 함께하는 기업에 관심 갖는 사람들에게 당부했다. 권 대표는 사회 혁신을 위해 창업을 준비한다면 '언더독스 창업 사관학교'에 참가할 것을 권했다. 프로그램은 6주간 진행된다. 참가자들끼리 아이디어 회의를 열고 강의도 들으면, 자신이 사업에 적합한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기우진 대표는 함께할 사람을 구하라고 조언했다.

"사업을 시작할 때 같이 협력할 사람이 있는 게 중요해요. 어떻게 하면 폐지로 업사이클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 2년 전부터 고민했어요. 직업이 있다 보니 혼자 시작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혼자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교만'이에요. (웃음) 권 대표가 함께해 줘서 가능했죠. 또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자기 일처럼 여기는 사람과 상의하는 것도 필요해요. 가족도 좋고 친구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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