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귀한 사역이다. 하지만 강단에서 목사가 설교한다고 해서 그 말이 모두 하나님 말씀이 되는 건 아니다. 설교자 자신이 하고 싶은 말 제멋대로 다 하고 그게 '하나님 말씀'이라고 주장하면 곤란하다. 설교에는 반드시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설교 비평이 필요하다

나도 한때는 목사님이 설교하면 그걸 다 하나님 말씀으로 여긴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조건 없는 "설교가 하나님 말씀이다" 하는 주장은 반드시 검증이 필요하다. 지극히 위험한 논리다.

설교는 목사 개인 생각이나 사상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사역이다. 그러니 불필요한 말을 함부로 추가하면 그때부터는 사설과 잡설이 된다. 그래서 바른 설교는 약이 되나 잘못된 설교는 독이다.

사실 순전히 하나님 말씀을 듣기 원한다면 누구나 그냥 성경을 펴서 읽으면 된다. 성경보다 더 위대한 설교는 없다. 성경은 개인이 직접 읽어도 성령께서 함께 동행하시며 역사하신다. 그럼에도 교회는 전통적으로 매주 모일 때마다 설교를 듣는 제도를 간직해 왔다. 과거엔 개인마다 성경을 소장하기 어려웠고 또한 바른 설교는 회중에게 매우 유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하면 오히려 부족한 것만도 못 하다"는 말이 있다. 차라리 소식해서 죽는 법은 별로 없는데 반대로 과식하면 성인병으로 죽는다. 요즘은 설교 홍수 시대다. 설교가 워낙 넘치다보니 이게 '하나님 말씀'인지 '목사님 말씀'인지 영 구분이 안 될 경우가 많다. 더 이상 설교가 신성불가침의 성역이 될 수 없고 객관적인 설교 비평이 꼭 필요한 이유다. 달리 말하자면 어설픈 설교자나 사이비 설교자가 매우 많아졌다는 이야기다.

자신이 마치 무슨 예언자라도 되는 양, 한때는 대통령을 군주처럼 찬양하다가 근자에 상황이 크게 바뀌니 갑자기 돌변하여 "진작에 물러나야 했다!"는 어느 유명 목사의 설교 역시 잘못된 설교의 대표적인 예다. 만일 그걸 아직도 하나님 말씀으로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히 맹신도 아니면 병신도다.

오염된 설교, 왜곡된 신앙

어찌 보면 오늘날 교회에서 헛소리와 잡소리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목사다. 종교개혁을 시작한 지 벌써 500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개신교는 오로지 목사만 말하는 변태적 교회가 되었다. 즉 '회당 정신'이 사라졌다는 거다. 그 결과 주야장천 수직적 예배는 열심인데 그만 수평적 소통이 부실해졌다. 본래 유대 회당에서는 누구나 성경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고 토론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개신교에 맹신이 급증하는 가장 큰 이유도 설교의 변질과 남용에 있다. 목회자도 먹고 살아야 하니 어떤 교회는 성장을 우선적으로 챙기게 된다. 그러다 보니 결국 교회의 외적 성장 장애에 특효 영약인 '기복신앙'과 '은사 신앙'을 부추기게 된다. 설교가 탈선하게 되는 과정이다.

아울러 예배 참석을 신도 최고의 의무와 사역으로 강조하다 보니 어느덧 주일이 안식일을 대체하고 있다. 대부분 교회는 평일에 교인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지는 그다지 묻지 않는다. 누구나 예배 잘 참석하고 헌금 잘 바치면 기꺼이 직분을 준다. 국회 청문회에 나와서 거짓말과 모르쇠를 남발하는 기독교 정치인들을 보면 그 수준을 잘 알 수 있다.

게다가 사도들은 오로지 자원적 연보만을 가르쳤건만 한국 개신교는 사도들이 폐지했던 의무적 십일조까지 부활시켰다. 그리고 많이 바치면 복을 받는다고 열을 낸다.

하지만 설교자가 진정 하나님 말씀을 대언하려면 성경에 있는 가르침만 전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오히려 교인들 삶에 치명적인 마약이 될 수 있다. 만약 99% 영양식에 1% 독약을 넣어 함께 먹으면 어떻게 될까? 그 결국은 사망이다. 음식을 선별해 먹어야 하듯 설교도 골라서 들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알파고'에게 성경을 가르쳐 설교시키는 게 훨씬 더 정확하고 좋다. 적어도 무속적 헛소리는 안 할 거다.

특히 극장식 웅변 설교에 감동을 받았다고 해서 그게 꼭 성령이 역사하신 증거가 되는 건 아니다. 히틀러의 웅변도 때론 감동을 주었다.

목사는 삶으로 설교해야

설교에 속지 말아야 한다. 강단에서는 눈물로 호소하고 내려와서는 뒤로 교회 돈을 듬뿍 챙기는 설교자를 우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자신의 신앙과 신학을 역행하는 설교자는 종교 사기꾼이다.

설교자는 삶으로 설교해야 옳다. 한국교회 목회자들 대부분은 설교를 잘한다. 그런데 어떤 목회자의 삶은 영 딴판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중대형 교회로 갈수록 더 심각하다. 목사가 고액 연봉에 사치스런 고급차를 타면서 가난한 이웃을 구제하자고 설교한다면 그게 설득력이 있는가.

설교자는 성경을 믿으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성경을 행해야 한다. 말로 하는 설교는 단지 귀로 듣지만 삶으로 하는 설교는 가슴으로 듣게 되기 때문이다.

교회는 성경의 진리만 전하는 설교를 수용해야 옳다. 성경을 벗어난 설교는 인간의 잡술일 뿐이다. 근자에 많은 예배가 무당굿이나 토크쇼로 변질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개교회의 당회나 제직회는 '설교 평가'를 제도화하여 객관적이며 주기적인 점검을 수행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만일 그걸 회피한다면 그건 직무 유기다.

최근 한 대형 교회 목사가 "헌금 내지 않는 사람은 교회에서 말도 하지 말라"고 했다 한다. 교인을 아주 우습게 안다. 설교가 목회 농단과 맹신도 관리를 위한 반기독교적 흉기가 되었다. 이런 건 설교도 아니고 하나님 말씀도 아니다. 그건 그냥 종교로 포장된 선무당의 엉큼한 수작일 뿐이다.

거짓된 설교에 속지 말자.

"설교자들이 얻으려고 노력한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자기들의 죄를 알고 당황하며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 가슴을 찔린 사람들이, 자기들이 노엽게 한 분 앞에 꿇어 엎드려 겸손한 태도를 가지며, 진정한 회개로 바른 길에 다시 들어서는 것이었다." - 장 칼뱅(Jean Calvin), <기독교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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