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다른 사람을 "바보"라 말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다(마 5:22). 헬라어 "모레"는 "바보같은, 어리석은, 미련한"이란 의미를 가지는 형용사다. 마 5:22에서는 호격 명사처럼 사용된다. "바보야!"라고 부르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갈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마 23:17을 보면, 예수님께서 직접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바보같은 맹인들아!"라고 부르고 계신 것을 볼 수 있다. 마 5:22 사용 단어와 마 23:17 사용 단어는 정확하게 같은 단어다. 다른 사람을 바보같은 사람이라고 경멸하면 지옥불에 던져질 것이라 경고하신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향해 "바보 같고 눈이 먼 너희들아"라고 부르는 것은 자가당착처럼 보인다. 놀랍게도 성경은 여기저기서 죄를 짓거나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을 바보라 부르고 있다(시 14:1; 갈 3:1; 고전 15:36).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성경 해석의 제1원리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항상 문맥 안에서 본문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상수훈에서 형제에게 바보라 말하는 사람은 지옥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하신 것은 살인을 직접 저질러야만 죄가 아니라, 이미 마음에 다른 사람을 향한 미움이 있는 것부터 잘못임을 지적하는 문맥에서 사용됐다. 바보라 말하기만 해도 지옥불에 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에게는 겉으로 나타난 행동보다도 그 마음의 태도가 중요함을 말씀하시는 맥락에서 이 말씀을 하셨다.

자신만 바라보고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 주는 사랑스런 애인에게 "이 바보야!"라고 사랑스럽게 말했다면, 지옥불에 떨어질 죄를 지은 것이라 할 수 없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자녀의 행복만을 위해 갖은 고생을 하는 어머니를 향해, "엄만 바보야!"라고 말한다고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그들을 저주해서는 안 된다(약 3:9-12)는 게 산상수훈에서 다른 사람을 바보라 부르지 말라고 한 이유다.

이에 반해 예수님이, 그리고 성경에서 일단의 사람들을 향해 바보라 부르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돌아올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데 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인이나 갈라디아 교인을 향해 어리석은 사람이라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상대를 죽여 버리고 원수를 갚아야겠다는 마음의 태도에서 나오는 표현이 아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말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른 길로 돌아오기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할 때 사용된 표현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모순이나 자가당착적 표현을 보게 된다.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던 예수님께서 비판하시는 모습이라든가, 온유해야 한다고 하신 주님께서 화를 내시는 모습 등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천편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밀며 자가당착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 한 구절에만 근거해 무조건 정죄하는 일을 해서도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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