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모든 권한이 정지됐다. 탄핵 정국 이후 언론은 발 빠르게 대권 주자들의 행보를 보도하고 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도 그중 한 명이다. 반 사무총장은 탄핵 정국 이전부터 유력 대권 주자로 지목돼 왔다.

최근 TV조선은 반기문 사무총장이 동성애를 옹호하거나 지지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반 사무총장은 지인의 입을 빌어 "그동안 성소수자를 옹호한 것은 UN 입장에서 만민이 평등하다 그런 개념이지 동성애를 지지하고 찬양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대선 출마 여부도 밝히지 않은 반기문 사무총장이 왜 이런 발언을 했는지 의아해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반 사무총장은 성소수자에 대한 우호적인 발언을 지속적으로 해 왔다. 2007년부터 2016년까지 UN 사무총장 재임 동안 성소수자 편에 서서 발언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재임 기간 성소수자 옹호 발언을 아끼지 않았다. UN 사무총장 홈페이지 갈무리
"LGBT에게도 똑같은 인권이 있다"

2010년 12월 10일 세계 인권의 날. 반기문 사무총장은 '성적 지향, 성 정체성 이유로 한 폭력 및 차별 철폐' 행사에 참석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성소수자를 인권 유린하는 아프리카 몇몇 나라의 현실이 개선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저는 UN 사무총장으로 근무를 시작하던 초기부터 낙인과 차별에 대한 반대를 공개적으로 말해 왔습니다. (중략) 개인적으로 특히 기뻤던 일은 말라위(Malawi)에 방문했을 때, 14년형을 받은 젊은 게이 커플을 석방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2년 뒤, 반기문 사무총장은 커밍아웃한 팝스타 리키 마틴(Ricky Martin)을 만난 자리에서도 성소수자 옹호 발언을 아끼지 않았다. 2012년 12월 11일 뉴욕 UN 본부에서 열린 동성애 대책회의에 참석한 리키 마틴은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주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설명하고 젊은 성소수자들을 격려했다. 리키 마틴의 발언을 들은 반기문 사무총장은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LGBT) 등으로 불리는 사람들도 다른 모든 인류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인권을 가지고 있다."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발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2013년 성소수자 문제와 관련해 발전적 논의가 없는 한국을 콕 집어 언급했다. 그는 유네스코가 펴낸 <동성애 혐오성 괴롭힘 없는 학교>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 때문에 폭력과 차별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어느 곳에나 있습니다. (중략) 저는 동성애 혐오성 괴롭힘의 심각성에 대해 오랫동안 문제 제기를 해 왔습니다. (중략) 저의 모국 대한민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동성애는 대개 금기시되고 있습니다. (중략) 대한민국에서,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우리 인류 가족의 구성원인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모든 청소년을 위해, 학교를 더욱 안전한 공간으로 만듭시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2012년 커밍아웃한 팝스타 리키 마틴과 만나 동성애 혐오를 멈춰야 한다고 발언했다. UN 사무총장 홈페이지 갈무리

반기문 사무총장의 성소수자 옹호 발언을 소개하자면 끝이 없다. 그동안 적극적으로 성소수자를 지지해 온 그는 왜 이제야 "동성애 옹호자가 아니다"고 항변하고 있을까. 일각에서는 대선에 출마할 반 사무총장이 기독교 표심을 얻기 위한 포석을 놓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교회 표심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앞서 반기문 사무총장은 "만민이 평등하다"는 개념 때문에 성소수자 '권리'를 지지해 온 것이라 밝혔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 말이 통할지 의문으로 남는다. 반동성애 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앞장서 온 집단이 교회이고, 이성애를 넘어선 '성'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는 성소수자가 '평등한 권리'조차 누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동성애자를 '섹스 중독자', '항문에만 집착하는 변태성욕자', '국민 세금 갉아먹는 몹쓸 인간', '인류 번영에는 관심 없는 이기주의자'라고 표현하는 말들을 무차별적으로 쏟아 낸다. 말이 과한 것 같지만,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기독교인이 작성한 기사 혹은 게시물, 설교 등을 금방 찾을 수 있다.

교회가 입법 과정에 공공연하게 개입할 때가 있다. 대부분 성소수자 관련 법안에 관한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발의된 지 수년이 지났지만 보수 기독교계의 적극적인 반대 운동으로 국회에 발이 묶여 있다.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성적 지향' 항목이 차별 금지 사유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교계 보수 단체는 진선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생활동반자법'도 강력하게 반대한다.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혼인신고하지 않고 사는 동거인, 사실혼 관계에 있는 커플도 동거 가족으로 인정해 달라는 취지로 논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동성애자 권리를 법제화·명문화시키려는 법안"이라는 이유로 기독교인들의 반발에 아직 발의도 못 했다.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 반대 운동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집단은 교회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기독교인들은 반기문 사무총장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진 이혜훈 의원은 지난 5월 한 포럼에서 반기문 사무총장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하나님의 나라를 무너뜨리는 법을 어떤 사람이 밀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기도할 수 있다. (중략) 정부의 차별금지법 입법 배경에는 UN 사무총장이 있다. (중략) 국제회의에서 (유엔 사무총장이) 한 공식 연설입니다. 'UN 사무총장으로서 세계 정상들에게 성소수자 차별 금지 노력을 지속적으로 강력히 요구하겠다.'"

언제가 됐든 탄핵 정국은 마무리된다. 반기문 사무총장이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이 되고 싶으면 한국 기독교라는 거대한 산을 넘어야 할 것이다. 반 사무총장은 이 같은 상황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세계의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자신이 한 말을 부침개 뒤집듯 뒤집었다. 한국 기독교인의 '표심'이 두려워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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