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인천 효성중앙교회 정연수 목사 꿈은 사람들에게 조금 '다른' 교회로 인정받는 것이다. 정 목사는 "교회 중에 '안 그런' 교회도 있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교회는 어떤 교회고, 안 그런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특별한 부연이 없어도 우리는 어느 정도 답을 안다.

'안 그런' 교회보다 '그런' 교회가 더 많다. 효성중앙교회는 겉모습만 놓고 봤을 때 그런 교회에 가깝다. 지역에서 가장 오래됐고, 교인은 1,000여 명으로 몸집도 크다. 2010년 지은 새 예배당은 8층으로, 외벽이 유리로 돼 있다. 잘 모르겠다. 이 교회가 어떤 점에서 조금 다른 교회인 걸까.

효성중앙교회가 중심이 돼 시작한 천사 축제에는 매년 동네 주민 수천 명이 몰린다. 사진 제공 효성중앙교회
주지스님이 화환 들고 부활절 예배 오는 교회

효성중앙교회는 18년째 마을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IMF 당시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 보자는 취지로 처음 시작했다. 마을 축제는 정연수 목사 부임 이후 전환점을 맞았다. 상대적으로 문화 혜택이 적은 마을을 밝게 만들어 보려 애썼다. 2008년 동네 주민이 달라붙어 1,004m 김밥을 만들어 기네스북에 오른 뒤로 '천사 마을 축제'라는 이름이 붙었다. 교회 바로 앞 군수업체 공장 외벽에 산뜻한 그림도 그리고, 마을 분위기를 조금씩 바꿔 나갔다.

마을 축제 특징 중 하나는 교회색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협동조합 방식으로 구성된 마을 협의체 이름으로 행사를 준비한다. 종교 장벽도 없다. 인근에 이사 온 대형 교회는 물론이고, 인근 사찰과 협력해 축제를 벌인다. 올해는 10월 3일 18번째 축제를 열었다. 4,000여 명이 참석했다. 인근 도로를 통제해 책 거리를 만들고, 함께 비빔밥을 비비고, 탁구대회, 노래자랑 등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마을 축제가 가져다주는 효과는 크다. 효성중앙교회 교인들은 다니는 교회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가르지 않게 됐다. 평소 경계심 없이 축제의 장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니 심리적·종교적 장벽이 허물어졌다.

어느 부활절이었다. 인근 사찰 주지스님이 예고 없이 화환을 보내왔다. '축 부활' 큼지막하게 쓴 3단 화환이 교회 본당 앞에 놓였다. 교회에서 부활절 창작 뮤지컬을 한다는 안내 플래카드를 확인하고, 보낸 것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예배 시간에 주지스님과 신도회장, 불자 10명이 부활절 뮤지컬 보겠다고 교회를 방문했다.

"걱정이 됐죠. 스님이 오셨는데 광고를 안 할 수도 없고. '광고 빨리하고 지나가야지' 하고 간단히 소개했는데, 교인들이 너무 좋아하고 휘파람까지 불며 대환영하는 거예요."

부활절이 지나면 석가탄신일이 찾아온다. 장로 한 명이 "우리도 화분 하나 들고 답례 가자"고 건의했다. 정 목사와 교인들은 절을 찾았다. 반갑게 맞아 주던 주지스님은 "초파일마다 잔치하는데 너무 재미없다. 교회를 보니까 공연도 하던데, 좀 해 주면 안 되겠냐"고 요청했다. 마침 동행한 교인 중에 브라스밴드 동호회장이 있었다.

"실로암도 부르고, 이것저것 공연도 하고…잘 놀고 왔죠." 정연수 목사가 웃으며 말했다. 교회와 사찰의 교류는 계속되고 있다. 사찰은 성탄절을 맞아 이웃에게 기부해 달라며 교회에 쌀 100포를 보내왔다.
이웃 종교와 연대하는 교회는 그리 많지 않다. 전도 대상으로 바라볼 뿐 먼저 손을 내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효성중앙교회는 조금 달랐다. 그런 교회가 아닌 '안 그런' 교회로 다가왔다.

예배당은 예배 시간엔 예배 장소지만, 지역민들을 위한 시간에는 공연 장소가 된다. 정연수 목사는 이런 유연한 사고를 강조한다. 사진 제공 효성중앙교회
예배당은 성전 아니고 목사는 제사장 아니다

예배당 신축은 정연수 목사 부임 이후 진행했다. 엄숙하고도 종교적 감성이 묻어나는 예배당을 짓고 싶었지만, 지역민에게 위화감이 없는 빌딩처럼 짓기로 했다. 교회색을 드러내지 않기로 했다. 1층은 누구나 드나들 수 있게 설계했다.

"대나무에 하얀 깃발, 빨간 깃발 달아 놓은 집 보면 꺼림칙해 하잖아요. 만(卍)자 있는 곳 봐도 그렇고요. 교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빨간 글씨로 '오직 예수' 엄청 크게 써 놓으면 안 믿는 사람들이 들어오고 싶겠어요? 교회는 괴물들이 사는 곳 아니다, 똑같은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걸 보여 주려 노력했어요."

효성중앙교회는 '성전' 표현도 쓰지 않는다. 성전이 주는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될 것 같은 위압감을 배제해야 한다고 정 목사는 생각했다.

"우리 교회는 홀이라고 해요. 본당은 비전홀, 소예배실은 아트홀. 이름이 존재의 집이라고 하잖아요. 예를 들어 본당을 예루살렘성전이라고 해 봐요. 그럼 거기 있는 벽돌과 의자가 거룩해지나요? 건물 자체가 거룩한 게 아니에요. 어떻게 거룩함을 유지하느냐가 중요하죠. 예배 시간엔 예배 처소지만 끝나면 그냥 방이 되어야 합니다."

마을 축제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노래 자랑'은 본당에서 열린다. 대학생 때부터 음악에 관심 많았던 정 목사는 본당 방송, 음향, 조명에 큰 투자를 했다. CCM 앨범 녹음을 하러 올 정도로 좋은 장비들이지만, 지역민을 위해 기꺼이 내어 줬다. 술 취한 아저씨가 '울고 넘는 박달재'를 부르고, 미니스커트 입은 학생들이 아이돌 노래를 불렀다. 이웃 교인들이 우려를 제기했지만, 정작 효성중앙교회 교인들은 아무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정 목사는 여느 교회와 다른 '목사상'을 꿈꾼다. 목사를 제사장이나 영적 아버지로 생각하지 않는다. 교인들이 담임목사라고 떠받들거나, 위에 있는 존재로 인식하지 않길 바란다. 교인들과 함께 이런 풍토를 만들기 위해 힘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정 목사는 39살 때 평범한 시골에 있는 교회에 부임한 적 있다. 마을 주민 90% 이상이 이 교회에 출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 목사가 부임할 때 면장·우체국장·파출소장 등 지역 유지들이 찾아 축하했다. 연배가 한참 아래였던 새내기 목사는 일일이 답례 인사를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원로장로는 정 목사에게 주의를 줬다.

"목사님 심정은 알겠으나 너무 겸손하게 하시지 마세요. 목사님은 우리들의 영적 아버지십니다. 아버지가 기죽고 다니면 자식들이 어떻게 다니겠습니까."

30대 후반 목사에게 70대 노인이 아버지라는 표현을 썼다. 이전까지 교인들이 목사를 어떻게 대해 왔는지 눈에 선했다. 정 목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목사 권위를 내려놓았다. 그래서였을까. 목사가 교회에서 눈을 쓸고, 화장실 청소를 할 때마다 화제가 됐다.

"100년 된 시골 교회에서 목사 권위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걸 배웠죠. 함께 먹고 자고, 화장실도 가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고 싶었죠. 교인들이 목사라고 대단하게 보지 않고, 평소에는 같은 사람이라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사람이 기댈 수 있는 교회

정 목사 설명을 들으니, 교인들이 유연하게 사고하도록 노력을 기울이는 듯했다. 정 목사는 자신의 목회 철학 기저에는 첫 목회지 성남 판자촌 경험이 깔려 있다고 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에는 월드비전에서 근무하면서 동네 주민 자활을 돕는 FDP(Family Development Project, 가정 개발 사업) 매니저로 일했다. 지원금으로 재봉틀도 사 주고 포장마차도 차려 주는 식이었다. 돈을 주지 말고 일거리를 주자는 괜찮은 취지였으나 별로 도움은 안 됐다. 얼마 안 가 포장마차를 팔고, 이 돈으로 술 먹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근본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다른 처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공부방을 차리고 거기에서 민중 교회 운동을 시작했다. 학교 다닐 때 얼핏 넘겨본 활빈교회 사례 등을 시도해 보기 시작했다. 이때 이해학 원로목사(주민교회)와 교제하며 성남민중교회운동연합 활동을 했다. 여기서 교인이 교구가 아니라 지역사회가 교구라는 점을 배웠다.

"교인이 아니더라도 동네 주민 누군가가 아프다고 하면 병원에 데려가고, 무료 진료도 받게 해 주고…오지랖도 넓었어요.(웃음)"

정 목사는 교회가 갈수록 보수화되고, 기존 신자들에게만 관심 가지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지역을 교구 삼아, '블루 오션' 이웃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교회, 그들이 기댈 수 있는 교회를 꿈꾼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효성중앙교회는 2015년 고난주간 세월호 가족을 초청했다. 예은 엄마, 시찬 엄마가 교회를 찾았다. 그나마 지금은 좀 나아졌다지만, 당시만 해도 교회가 세월호 가족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다 못해 싸늘할 때였다. 큰 규모 교회들이 이들 목소리를 듣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정 목사는 대단한 심정으로 한 건 아니라고 했다.

"저는 사실 확고한 신념이라든지 대단한 철학을 갖고 한쪽으로 막 가는 건 아니에요. 열혈 투사도 아니고요. 작은 돌 하나 더 얹는 심정으로 하고 있어요. 민중 교회 하면서 어울렸던 분들, 사심 없이 서로 위해 주고 사랑했던 기억에 빚진 마음이 있어요. 그분들은 절대 빨갱이가 아니에요.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처럼 성실하게 살아온 분들에 대한 빚 갚는 마음이 있죠."

예전에는 700명이 들어와 있는 교회 밴드에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가끔 올라오곤 했다. 세월호 노란 리본이 주술적 의미가 있다느니 하는 것들이다. 정연수 목사가 직접 무엇이 잘못됐는지 설명하고, 댓글도 달아 줬다.

정연수 목사는 효성중앙교회가 기존 교회들이 추구하는 '보수'와는 조금 달라야 한다고 믿는다. 기존 신자들에게 잘 보이려는 교회들은 더 보수화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 목사의 블루 오션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교회가 이들의 눈높이를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교회는) 조금 진보적인 생각, 사회에 관심 많은 분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이야 한다는 마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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