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한 파이프오르간 제작 장인 홍성훈. 양평 작업실에 있는 그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파이프오르간(오르겔)은 '악기의 교황'이라 불린다. 18세기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Mozart)도 '내 귀와 눈에는 악기 중의 왕'이라며 파이프오르간을 높이 평했다.

다른 악기와 달리 파이프오르간이 특별한 위상을 차지하는 것은 여러 장점 때문이다. 파이프오르간은 음역이 광대하고 음색은 오케스트라에 견줄 정도로 다양하다. 여러 선율을 다른 음색으로 동시에 연주할 수 있다. 장엄하고 웅장한 소리를 내는가 하면 고요하고 섬세한 분위기를 이끌 수 있다.

홍성훈 씨는 국내 유일한 파이프오르간 제작 장인이다. 정식 명칭으로는 오르겔바우마이스터. 1997년 독일에서 마이스터 자격을 취득하고 한국에 귀국해 지금까지 16대를 제작했다. 12월 8일 양평군 국수리에 있는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내성적인 청년, 기타 하나 들고 독일행

사실 홍성훈 씨가 그린 자기 미래 모습은 악기 제작자가 아니었다. 그는 1981년 흥사단에 들어가 탈춤 전수자의 길을 걸으려 했다. 당시는 한국이 격동을 맞는 시기였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군부독재에 대한 분노가 거리에 가득했다. 그에 대한 분풀이였을까. 선조들이 탈춤을 추며 왕을 놀리고 양반을 욕했던 것처럼, 홍 씨도 탈을 쓰고 춤을 췄다.

"저는 성격이 내성적이에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어릴 땐 말도 잘 못하고 표현도 서툴렀어요. 이런 성격이 마음에 안 들었어요. 그래서일까요. 탈춤, 풍물놀이와 같은 활동적인 걸 더 찾았던 거 같아요. 무대 체질이 있어서 그런지 잘 적응했고요. 성격은 지금도 그대로지만 좋은 경험을 많이 쌓을 수 있었어요."

홍 씨는 1984년 말 무용 전공으로 서울시립가무단에 입단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일을 관뒀다. 당시 가무단에는 탁월한 연기자가 많았다. 조연밖에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더 들기 전 무언가 제대로 공부를 하고 싶었다.

기타 하나 들고 동생이 공부하고 있던 독일로 떠났다. 지인들에게는 기타를 배우겠다고 말했다. 속내는 달랐다. 기타를 배우겠다는 말은 진심이 아니었다.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조급함에 대책 없이 유학길에 올랐던 것이다. 독일 뮌스터(muenster)에 도착한 날 밤, 숙소에서 밤새 울었다.

양평에 있는 작업실 모습. 이곳에서 오르겔을 제작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파이프오르간 설계도. 설계하는 데 보통 짧게는 1달, 길게는 1년까지 걸린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오르겔이 뭐예요?"

후회와 불안으로 허송세월하는 날이 쌓여 갔다. 같은 숙소에서 머물던 한 선배가 홍 씨에게 오르겔바우마이스터가 되라고 권했다. 그 선배는 현재 서울장신대학교 장우형 교수(음악학)다.

"'파이프오르간? 그게 뭐예요?' 당시 제 반응이었어요. 선배 권유에 콧방귀만 뀌었죠. 그런데 1년 내내 듣다 보니 세뇌가 되더군요. 점차 파이프오르간과 악기 제작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마침 같은 지역에 오르겔 장인이 살고 있어서 그분 밑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어요."

4년 후 홍 씨는 오르겔바우마이스터 과정에 입문하기 위해 요하네스 클라이스 밑으로 들어간다. 클라이스는 오르겔 제작 '명가'로 유명하다.

클라이스는 홍 씨에게 재료비와 실습 기회를 제공했다. 오르겔이 악기뿐 아니라 하나의 실내 건축,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가치를 심어 줬다. 결국 홍 씨는 1997년 마이스터 자격을 취득한다. 오르겔 제작을 배우기 시작한 지 12년 만이다.

홍성훈 씨가 목관파이프를 들고 파이프오르간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한국 문화와 접목한 오르겔

마이스터를 취득한 홍 씨는 아무 미련 없이 독일을 떠났다. 1997년 한국에 온 그는 몇몇 교회 부탁으로 오르겔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양평에 작업실도 마련하고 직원들도 고용했다.

홍성훈 씨는 한국 문화와 접목한 파이프오르간을 만들려 한다. 독일, 프랑스 등 나라마다 만든 악기 소리가 다르다. 독일은 샤프하고 날렵하고, 프랑스는 부드러우면서 강력하다. 홍 씨는 한국인들이 편안하게 들을 수 있고, 좋아할 만한 소리를 내는 악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파이프오르간을 디자인할 때도 한국 문화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고려한다. 작업장 인근에 있는 국수교회에 설치한 파이프오르간은 한국의 산수를 닮아 '산수화 오르간'이라고 명명했다. 가로, 세로 1미터 남짓한 작은 파이프오르간인 '트루엔오르겔'을 제작할 때는 뒤주 모양을 착안했다.

"파이프오르간을 만들 때 소리뿐 아니라 외형도 많이 신경 써요. 한국 문화를 잘 반영하는지, 주변 실내 건축과도 잘 호응하는지요. 여러 장식, 문양을 넣거나 색을 활용하는 편이에요. 보통 디자인하는 데 짧게는 한 달, 길게는 1년 정도 걸려요."

한국에서 유일하게 파이프오르간을 제작한다고 해서 소득이 안정된 건 아니다. 아무래도 파이프오르간을 제작하려는 교회들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해외 업체를 먼저 찾는 편이다. 홍 씨를 찾는 건 대부분 중·소형 교회들이다.

홍 씨가 제작한 양평 국수교회 오르간. 한국의 산수를 표현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사람 살리는 소리

"수익이요? 남는 게 없어요. 적자일 때도 있어요. 계악금을 이미 받았는데, 갑자기 환율이 오르는 바람에 원자재값도 같이 오른 거죠. 그렇다고 넉넉하게 받을 수도 없고요."

1년 동안 일이 없을 때도 있었다. 집 뒤에 있는 산에 올라가 얼굴을 가슴팍에 묻고 하루 종일 멍 때리기도 한다. 그러다 홍 씨를 찾는 교회가 나타나면 부리나케 차를 끌고 작업실로 간다.

홍 씨는 독일에 온 뒤로 18년 동안 16개를 제작했다. 그는 한국교회를 위해 파이프오르간 제작을 배우라는 장우형 교수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우크라이나에 있는 교회에 오르겔을 기증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 중이다.

"오르겔을 제작하면서 하나님의 소명을 깨달았어요. 지금까지 거쳐 온 길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과정이라는 것을요. 소리는 사람을 변화시키기도 하고 살리기도 해요. 제 악기로 사람들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게 제 역할이 아닐까 싶어요."

"제 악기를 들은 사람들이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역할이 아닐까 싶어요." 뉴스앤조이 박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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