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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속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
[서평]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좋은씨앗)
  • 이원석 (dkdndn2@naver.com)
  • 승인 2016.12.07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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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 여기에서 다룬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좋은씨앗)를 가지고 12월 12일(월) 오후 7시 30분부터 2시간에 걸쳐 빅퍼즐문화연구소에서 독서 모임(톨레레게)을 진행합니다. 톨레레게는 독서를 통한 성장과 세상의 체계로부터의 자유를 바라는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오시는 길은 아래 링크에 안내되어 있습니다. 참가비는 5,000원입니다.

링크 바로 가기: http://bigpuzzle.co.kr/xe/map_contact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 - 상실의 아픔을 겪은 어느 크리스천의 정직한 고백> /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지음 / 박혜경 옮김 / 좋은씨앗 펴냄 / 232쪽 / 9,000원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는 아름다운 소품(小品)이다. 원제(Lament for a son)가 보여 주는 바와 같이 칼빈대학교에 재직하던 니콜라스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torff)가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은 아픔으로 고투하며 남긴 묵상을 출판한 것이다. C.S. 루이스의 <헤아려 본 슬픔>(홍성사)과 더불어 고통과 죽음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자 하는 진지한 독자들이 반드시 집어 들어야 할 책이다.

아버지의 파토스와 철학자의 로고스

니콜라스 월터스토프는 이 애가(哀歌, lament)를 집필하고 나서 예일대학교로 옮겨 갔다. 지금은 교수직에서 은퇴했으나(그는 1932년생이다),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한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2014년 개정판이 아니라 2003년 초판으로 인용하였다) 자체는 재판 번역이며, 초판(1987)은 <아버지의 통곡>이라는 제목의 국역본으로 소개되었다. 1997년에 쓴 서문을 제하면, 특별히 초판과 재판의 차이는 없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는 슬프고, 아름답지만, 동시에 지적이고, 성찰적이다. 정념과 논리가 밀도 높게 어우러지고 있다. 월터스토프는 아들을 가슴에 묻게 된 아버지로서 아파하지만, 신앙과 이성 사이에 가교를 놓아야 하는 철학자로서 치열하게 고민한다. 그렇기에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에서 전개되는 언어에는 파토스와 로고스가 긴밀하게 섞여 들어 있다.

월터스토프는 알빈 플란팅가, 윌리엄 알스턴과 더불어 (증거가 없어도 기독교에 대한 합리적 믿음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개혁주의 인식론(Reformed Epistemology)을 주창하는 철학자답게 시종 차분한 논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이러한 접근은 그의 통증을 좀 더 경감시켜 줄 거라는 기대보다는 그의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줄 거라는 기대에 따른 것일 게다.

대답 없는 질문과 숨어 계시는 하나님

"나는 분노하지는 않았지만, 좌절에 빠졌고 상처를 받았다."(113쪽) 월터스토프는 "대답 없는 질문"이 바로 자신의 상처라고 말한다. 그는 계속 답 없는 물음을 던진다. "왜 그래야 했을까?" 어느 섹션(35~37쪽)은 바로 이 문장으로 시작해서 이 문장으로 끝난다. 아무리 아들의 추락사에 대한 철학적, 신학적 답변을 도출해도, 결국 근본적인 질문에는 답을 얻지 못하며, 바로 이것이 그의 아픔이다.

월터스토프는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계시'하신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그러나 말씀하심과 동시에 숨어 계신다. 그분은 당신의 얼굴을 우리에게 보이지 않으신다."(128)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침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신의 침묵이 곧 믿음의 시험이다. 죽은 아들 앞에서 대답 없는 하나님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월터스토프가 제아무리 철학적 신학의 대가라도 실존적 아픔에서 면제되거나 그로 인한 신앙적 질문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렇게 산산조각이 나 버린 사랑은 우리에게 의미를 넘어서 존재하는가? 의미를 깨뜨리는 것인가? 이 모든 것이 수수께끼, 엄청난 수수께끼인가?"(73쪽) 이렇게 부서진 사랑은 대답 없는 질문이자 수수께끼가 된다. "'왜' 고통이 따르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다."(126~127쪽)

"우리의 고통은 사랑함에서 오기 때문이다."(151쪽) 기독교 변증으로 명성을 얻은 C.S. 루이스도 사랑하는 아내 조이와의 사별로 입게 된 아픔이 컸고, 이로 인해 하나님 사랑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다. "루이스는 아내의 죽음에 대해 쓰며 고통 중에서 하나님께 분노하고 있었다."(113쪽) <헤아려 본 슬픔>은 그가 분노하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을 찾아가는 과정을 기록해 둔 노트를 책으로 펴낸 것이다.

숨어 계시지만 여전히 말씀하시는 하나님

월터스토프는 극심한 자기 고통을 토로한다. "세상의 고통은 나의 내면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전에 나는 슬픔이 이토록 클 수 있는지 몰랐었다."(123쪽) 이러한 슬픔과 고통을 통해서 그는 더 낫게 변화되었다. "그러나 그 변화를 에릭과 바꿀 수만 있다면 나는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125쪽) 내가 그일지라도 망설이지 않을 것 같다. 이러한 고통으로 인해 그는 하나님이 숨어 계신다고 말한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계시'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그러나 말씀하심과 동시에 숨어 계신다. 그분은 당신의 얼굴을 우리에게 보이지 않으신다." (128쪽)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애굽기 33:20) 월터스토프는 이 말씀에 대한 친구의 해석을 들려준다. "어쩌면 그 말의 의미는 누구도 하나님의 슬픔을 본 후에는 살 수 없다는 뜻일지도 몰라."(138쪽) 이 해석이 옳다면,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나누어지시기에 우리가 감히 그분이 짊어진 고통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는 뜻일 게다.

"하나님의 고통의 잔이 찼을 때에 우리 세상의 구원이 완성된다. 공의와 평안이 이를 때까지는 하나님의 기쁨에 겨운 춤사위를 볼 수 없을 것이다." (154쪽)

고통받으시는 하나님

월터스토프는 하나님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한다. "하나님은 고통받는 자들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고통받는 하나님이시다."(137쪽) 물론 이러한 통찰의 배경은 그가 처한 고통이다. "내 눈물의 프리즘 사이로 나는 고통받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다."(137쪽) 하나님이 이렇게 고통받으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이미 말했듯이 사랑하기에 고통받(을 수 있)는 것이다(151쪽).

헬레니즘에 영향받은 전통 신학에 따르면, 창조자는 피조물로부터 영향받을 수 없다. 이를 가리켜 하나님의 무감동성(Impassibility)이라고 한다. 이를 배척하던 월터스토프 역시 전에는 (피조물로 인한) 하나님의 고통에 대해 알지 못했으나, 실존적 맥락(눈물의 프리즘, 137쪽)에서 수난 불가능성을 거부하게 된다. 그의 주장을 신학적으로 번안하면 하나님의 개방성을 강조하는 열린 유신론(Open Theism)이 된다.

월터스토프가 짊어지는 고통이 묵직한 만큼 그의 묵상을 떠받치는 이론적 층위 또한 두텁다. 작고 얇은 책이지만,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는 온 마음(가슴)과 생각(머리)을 다하여 읽어야 한다. 위에서 이 책을 "고통과 죽음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자 하는 진지한 독자들"에게 권했지만, 실은 고통과 죽음에 대해 별생각이 없는 독자라도 읽어야 한다. 이 얇은 책을 읽고 나면, 삶을 대하는 안목이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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