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남북 평화통일 상징처럼 여겨지던 개성공단. 2016년 2월 문을 닫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일방적인 조치였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 100여 곳은 물품도 못 챙기고 쫓기듯 개성을 떠났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은 현재 정부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 정책에 기대 북한과의 경제협력에 '올인'했다가 전 재산을 날린 이들은 개성공단 폐쇄 이전에도 있었다. 남과 북 경제협력(남북경협)의 역사는 1990년대부터 시작됐다. 1995년 남한 기업이 북한 기업에 투자할 수 있게 됐고 1998년에는 정주영 회장이 소 떼를 끌고 북한을 방문했다. 그해 11월 금강산 관광을 시작했고 2004년 개성공단을 착공했다.

철석같이 믿었다

서울 광화문광장 북측 정부서울청사 앞을 64일째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개성공단 이전부터 북한과 경협 사업에 뛰어든 기업인이다. 이들은 남북 관계 개선, 정부의 책임 있는 보상을 요구하며 추운 날씨에도 거리를 지키고 있다. 처음 이들이 자리를 잡은 10월만 해도 천막을 칠 수 없었다. 그때는 정말 말 그대로 '노숙'을 하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유동호 회장(남북경협기업인비상대책위원회)은 64일째 하얀 천막 안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사진 제공 정숙경

남북경협기업인비상대책위원회 유동호 회장은 64일째 이곳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그는 내륙 투자에 뛰어들었다 피해를 입었다. 남북경협기업인비상대책위원회에는 총 1,146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유동호 회장처럼 북에 투자한 기업, 금강산 관광사업 관련 기업, 평양 내 있던 임가공 공장 기업, 일반 교역 기업 등 종류도 다양하다. '남북경협'이라 하면 개성공단이 전부인 줄 아는 사람도 있지만 그 이전부터 교류는 계속 있어 왔다.

북한과의 경제협력 사업은 대부분 정부 주도 사업이었다. 돌파구를 찾고 싶었던 기업인들은 정부 주도하에 '내륙 투자'라는 이름으로 북한에 투자했다. 현대아산이 금강산 관광사업을 주도했지만, 제반 사업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소기업도 많았다. 정부가 주도하고 모든 것을 이끈 만큼, 정부가 하는 말을 믿고 투자한 기업인이 전부였다. 사업이 일시적일 줄 알았다면, 그렇게 전 재산을 투자할 사람이 있었을까.

기다리고 기다려도

천막에 있던 금강산 관광 관련 사업자들은 정부 말만 믿었다. 2008년 7월 박왕자 씨 피격 사건으로 모든 관광이 중단됐을 때 그래도 곧 재개될 줄 알았다. 정부도 처음엔 "기다려 보자"는 말을 반복했다. 북한 사업 특성상 정부와의 관계가 중요했다. 사업자들은 그때까지 정부 말을 듣고 기다리면 해결될 줄 알았다. 많은 이의 생계가 걸려 있었다. 정부가 이렇게 오랫동안 모른 척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정부의 대책을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흘렀다. 관광이 중단됐을 때는 정부 말대로 곧 재개될 줄 알고 떠나려는 직원을 붙잡았다. 급여도 못 주는 일이 생겼지만 정부가 문제를 해결할 줄 알았다. 정부가 재개 결정을 내리면 바로 사업을 시작해야 하기에 직원을 잡아 둘 수밖에 없었다. 하염없이 기다릴 수만 없는 직원들을 노동청에서 만나는 일도 잦았다. 버틸 수 없어 결국 혼자가 된 기업인도 많았다.

한국기독교장로회 평화통일위원회가 12월 5일 천막을 찾았다. 사진 제공 정숙경

그 과정에서 병마에 쓰러진 사람도 늘었다. 경협 사업에 올인한 사람들은 더 그랬다. 금강산에서 이동식 매점을 운영한 이 아무개 씨는 현재 반신마비가 와 거동이 불편하다. 금강산 관광사업 중단 이후, 그의 아내는 충격을 받아 뇌졸중으로 세상을 떴다. 가정을 일으키겠다는 일념으로 이 일 저 일 매달리던 아들마저 과로사로 세상을 떴다. 이제 딸이 남아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이런 일을 겪은 건 이 아무개 씨만이 아니다. 남북경협에 뛰어든 기업인들은 여러 아픔을 겪었다. 가정은 해체되고, 기업은 무너지고, 신용 불량자가 되는 것은 기본이었다. 집을 소유하고 있던 사람은 전세로, 전세 살던 사람은 월세 내는 집으로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

다 끝내고 싶지만…

유동호 회장은 남북경협 기업인들을 '통일의 전령사'라 불렀다. 돈 벌기 위해 북한에 갔지만 속으로는 평화통일에 일조하리라 희망을 품고 경협에 뛰어든 사람들이라 평가했다. 대북 정책이 아무리 정권 따라 바뀐다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남북관계는 개선의 여지 없이 악화됐다고 했다.

유동호 회장(가운데)과 천막을 지키는 이들은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남북경협에 뛰어들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오늘도 유동호 회장은 바람 부는 광화문 앞에서 밤을 보낸다. 생각 같아선 오늘이라도 정부가 정산해 주면 경협 사업에서 손을 떼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유 회장도, 같이 천막을 지키는 사람들도….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애초에 이 사업에 뛰어들지도 않았을 터. 오늘도 이들은 투쟁에 임하고 있다. 정부가 북한으로 갈 길만 터 주면 언제든 가겠다는 마음으로.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