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독교인이 촛불을 들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12월 3일, 지인의 결혼식을 다녀와선, 후다닥 시위복(?)으로 갈아입고, 전도사님 한 분과 함께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지하철에 붐비는 사람들이 모두 광화문으로 행하는 것 같은 느낌은 왜일까. 제법 붐비는 서울역 인파를 뚫고 시청 쪽으로 향하는데, 이미 역 앞에서는 박사모들의 반대 시위가 한창이다. 끓어오르는 마음을 짓누르고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집사님 한 분을 만나 걷기 시작한다.

"목사님, 세종문화회관 뒤쪽으로 돌아서 올라가시지요."

이제 제법 익숙해져서인지, 인파가 조금 적은 지름길을 안내하신다. 젊은이들이 데이트 코스로 즐긴다는 덕수궁 돌담길은 이제 피켓과 촛불로 무장한 시민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인파를 뚫고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 올라선다. 이미 가득 들어찬 사람들 틈바구니에 까치발을 들고 서니, 광장에는 이미 분노의 춤사위처럼 이글거리는 횃불이 타오르고 있다.

나는 특별한 일이 있었던 한 주를 제외하고 계속해서 광화문 촛불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혹자는 목회자가 그런 데 가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 여기에 모인 이들이 누구인가? 일주일 내내 한 가정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애쓰는 아버지이며, 유모차를 끌고서라도 정의가 바로 서기를 열망하는 세 아이의 엄마이고, 더는 참을 수 없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온 지긋한 노모가 아닌가? 이제 막 학업 속에서 역사와 정의를 배워 가야 할 학생들이 거리를 헤매고 있다. 나는 이들과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민주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시민이다.

이념의 논쟁을 떠나 신자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현장과 살아가는 삶의 자리,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에게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는 것으로 자신의 신앙을 표현한다. 그러므로 신자는 지금 이 나라가 경험하고 있는 혹독한 절망과 고통의 현실에 답하여야 한다. 정치적인 입장은 다를 수 있겠다. 허나, 지금 이 사태의 핵심이 이념의 논쟁이 아니라 '정의'와 '상식'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기가 그리도 어려운 일일까.

간단한 행사가 끝나고, 청와대를 향한 행진이 시작되었다. 일행과 함께 한 손에는 촛불을 들고 한 손에는 울분과 분노를 담은 주먹을 쥐어 외치기 시작한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박근혜를 구속하라!"

이내 엄청난 함성이 포화가 되어 창릉동 하늘에 쏟아진다. 아마도 저 앞에 불 꺼진 어둠의 권세를 향한 분노와 정의의 집중포화이련만 양심에 화인을 맞은 자의 가슴에 그 소리가 닿을 리 만무하다.

매주 토요일마다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나온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도대체 이 나라는 몇 번의 독립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야 하는 것일까? 친일의 앞잡이들과 유신 독재의 잔재들이 아직도 어둠의 권세처럼 세를 뻗치고 있는데, 그것도 권세라며 로마서 13장을 들어 저들을 옹호하는 한국교회를 보고 있노라면 도무지가 우리는 예수를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으리만큼 부끄럽기만 하다.

반공과 종북 논리를 앞세워 기득권과 어깨를 나란히 부역해 온 한국교회의 부흥이 진정 기독교 신앙의 그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문득 <거룩한 제국-아메리카·종교·국가주의>(페이퍼로드) 한 꼭지가 내 의식을 스쳐 간다.

"기독교 전통은 도덕과 생활 방식의 지향이 같은 정치권력에 편승하여 그들의 정치적 성향을 지지하면서 자신들의 가치를 전개하고 사회적 위상과 영향을 확보하고, 패권주의적 정치에 동조하며…"

기독교 신앙의 체계와 내용을 "이 세상에서 잘나가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당위와 아무런 갈등이 없는 내용들로 채워 놓고, 오랫동안 신자들을 가르쳐 온 결과가 이런 명백한 불의 앞에서도 침묵하거나 정부를 동조하는 자리로 사람들을 내몰고 있는 것이 아닐까?

교회는 지금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일제 치하에서 인권과 자유, 나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피 흘렸던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기억하는가? 나치 정권에 항거하여 독재자 히틀러를 제거하기 위해 싸웠던 목사들과 교회들을 기억하는가?

나는 오늘 이 광화문 한복판에서 이렇게 외치고 싶다.

교회여 광장으로 나오라.

누구보다 먼저 이 불의한 정권 앞에 당당히 서서 외치라. 우리가 사랑하는 이 나라 가운데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의 불이 임하여서 악한 권세자와 그 부역자들, 기득권의 카르텔을 깨뜨려 버릴 수 있도록 신자의 양심이여, 광장으로 나오라!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아모스 5:24)

여섯 시간이 넘는 동안 목 놓아 외치고, 걷고 또 걷는 이 일이 주일을 앞두고 있는 목회자에게는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 일에 동참한 자가 누리는 보람과 기쁨이 내 영혼을 가득 채운다. 자정을 향하여 치닫는 이 시간, 나라와 민족을 위해 두 손을 모은다.

"주의 한없는 자비와 긍휼을 이 나라 위에 부어 주옵소서!"

김관성 / 행신침례교회 담임목사, <본질이 이긴다>(더드림), <살아 봐야 알게 되는 것>(넥서스CROSS), <직설>(두란노서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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