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과 묵시 - 포로기 이후 묵시 사상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 / 스티븐 L. 쿡 지음 / 이윤경 옮김 / 새물결플러스 펴냄 / 388쪽 / 1만 9,000원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인도 카스트제도는 지금도 인도 개혁과 발전에 발목을 잡고 있는 족쇄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어도 교육과 종교와 학문을 통해 비전을 품고 밝은 미래를 세워 갈 수 있어야 할 텐데, 이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신분이 정해져 자기 지역을 벗어날 수 없다. 자신의 환경을 개선해 나갈 수도 없다.

그런데 카스트제도가 세워진 배경을 봐야겠다. 북유럽 아리안이 이 땅으로 쳐들어와 현지인을 사유화해 자신의 노동력과 종으로 만들었다. 이 사회에서 지도층이 된 아리안은 자신들의 영원한 천년왕국과 행복을 위해 카스트 계급을 만들어 통치를 강화했다. 더불어 힌두라는 종교도 만들어 그들 왕국과 권력을 유지하고 사람들을 종속시켰다.

이와 관련해 한국 중심에 있는 지도자와 권세를 가진 자들을 보니 정의를 사랑하여 평화를 만드는 자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카스트와 거짓 종교로 자신들의 천년왕국을 이루는 자들이다. 나라 중심에 있는 권세자들이라면 거룩한 비전과 공적 행복과 선을 이루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꿈꾸는 것은 사악하고 부패한 결과물만 만들어 낸다.

이 책은 필자에게 공동체 중심에서 권세를 가진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우쳐 준다. 그 공동체가 나라든 민족이든 교회든 학교든, 중심부에 있는 자들이 갖고 있는 예언과 묵시와 비전이 그 사회와 내부에 있는 사람들 삶을 지배하고 움직인다. 그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공동체를 이끌어 간다.

물론 본서가 지도자의 중요성과 역할을 강조하기 위한 책은 아니다. 본서는 그동안 성경에서 나오는 묵시 사상이 소외되고 박탈당한 계층과 집단으로부터 생성되어 왔다는 것과 바벨론과 페르시아 같은 주변부의 강대한 지배국으로부터 받은 문화와 종교의 영향으로 생겨났다는 것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공동체 중심에서부터, 이스라엘이 비전을 품고 하늘을 소망하며 종말론과 천년왕국을 기도하게 하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그동안 대부분 연구와 주장에서는 묵시가 중심과 권력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박탈 집단으로부터 만들어졌다고 봤다. 저자는 권세를 가진 집단에서 심판과 구원과 희망의 묵시가 발생했다고 하면서 구약의 상호 본문성과 더불어 역사와 정치와 사회학적 방법을 통해 논증해 간다.

저자는 묵시문학적 본문으로 에스겔 38-39장, 스가랴 1-8장, 요엘서를 끌어와 묵시문학의 기원을 밝힌다. 각 본문마다 본문 분석을 담고 있다. 성경적 역사적 사회적 방법을 통해 이 묵시의 말씀이 예언과 연관된 것이며, 이것이 이스라엘 심판과 회복과 종말론과 백성을 영적으로 인도하기 위한 희망의 말씀임을 증명한다.

무엇보다 그 소망의 말씀이 중심부(선지자 제사장을 포함한)에서부터 나왔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역사에 참여하는 묵시가 어둠의 장막을 뒤집어쓰고 현실적으로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소원만 품은 박탈 집단에서 나온 주변부 문학이 아니라는 말이다. 현실화되는 능력의 말씀으로 비전을 품은 권력 집단에서 나온 중심부 문학이라는 지적이다.

필자는 그동안 이스라엘 예언과 묵시는 막연히 중심부에서 나올 수 없고 권력과 중심에서 소외되고 한숨과 눈물로 살아가는 박탈 집단에서 발생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미 부와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하나님의 역사 개입, 하나님의 간섭과 심판을 간구하는 일은 없을 거라 여겼다. 오히려 이들이 이스라엘을 더 부패하게 만드는 자들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그러나 책을 통해 필자의 고정된 생각은 깨지게 되었다. 권세를 가진 중심부 집단(정치가, 제사장, 선지자, 지도자 등)을 통해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를 갈구하는 묵시가 기원했다는 것에 신선한 도전이 되었다. 또한 사회적 역사적 문맥에서 드러나는 당시 지도자와 이들의 묵시가 우리 시대 지도자와 묵시와는 무엇이 다른지 비교가 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이 책이 주장하는 바를 짧게 두 가지로 설명하고 싶다. 첫째, 예언과 묵시는 그 사회의 역사적이고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맥에서 발생한다. 하나님 말씀과 묵시가 진공상태에서 나오는 헛된 소망이라거나 과장되고 현실도피적인 게 아니라 급진적이고 때로는 과격하게 우리 사회 속으로 파고들어 온다는 것이다.

그렇게 묵시는 하나님의 백성을 영화롭게 하고 이스라엘을 육적 영적으로 풍요롭게 만든다. 사냥꾼 올무에 새처럼 걸려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역사와 삶에서 현실화되는 능력이다. 묵시는 하나님의 백성을 영적으로 인도하고 진리로 풍성하게 한다. 사회 역사적 맥락에서도 윤리적이고 인륜적이고 이상적인 공동체를 지향한다.

둘째, 지도자에 대한 가르침이다. 필자가 재차 강조하지만 이 묵시는 제사장을 포함한 중심부에서 흘러나온 말씀이다. 성전에서부터 나온 생수가 죽어 가는 모든 것을 살리고 치료제가 되었듯이 그 중심부에서 나온 묵시가 사회를 움직이고 사람들을 이끈다. 그 중심부가 깨끗하면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고, 그 중심부가 더러우면 죽음의 역사가 나타난다.

이 중심부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순종하고 악을 향해 징벌하고 선을 권장하는 공동체를 바라본다.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죄와 모순과 거짓을 몰아내고 거룩과 정의와 평화의 사회로 인도한다. 하나님의 계시에 사로잡혀 지금 여기서 이루어지는 불의에 저항하고 각 사람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말 방울에까지 거룩을 달아 준다.

묵시를 보여 주는 이스라엘의 중심부와 현재 한국의 중심부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중심부는 하나님이 주신 권세와 권력을 가지고 자기 얼굴과 몸단장과 쾌락을 위해 사용한다. 여기서 나오는 것은 사치, 향락, 타락, 불결함이다. 그러니 사회가 움직일 수 없고 사람들이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

예언서를 보듯이 중심부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 가치관, 신앙관이 역사와 사회를 거룩하게 이끌어 간다. 진리와 사상이 없는 자들이 중심에 있으면 모래 위에 집이 세워진 꼴이 되고 만다. 건물이 무너지고 모두가 죽게 된다.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계시가 가려져 무속적 신앙을 가진 자가 중심에 있다면, 그 교회는 지위와 역할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구약과 묵시를 다루는 이 책은 성도와 교회에 어울린다. 그런데 왜 필자는 자꾸 이 사회에서 권력의 주체가 되는 일반 시민에게도 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잘 이해하긴 힘들겠지만 우리 세계관과 가치관을 새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여겨진다. 그리하여 구약 연구의 획기적인 이 책이 포로기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묵시가 되기를 바란다.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방영민 /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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