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2016년 한국 사회 중요한 키워드 하나는 '여성 혐오'였다. 지난 5월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으로 촉발된 여성 혐오 논란은 사회 전체로 뻗어 나갔다. 무엇을 여성 혐오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 제기부터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를 알리는 일까지 다양한 논의가 있었다. 하반기에는 각 분야 성폭력 고발 운동도 일어났다. 여성이 한목소리를 냈던 2016년이었다.

한국여성신학회(이숙진 회장)는 사회현상에 주목해 올해 송년 학술제 주제를 '여성 혐오 너머의 세상'으로 잡았다. 원로 여성 신학자 두 명이 발제를 맡았다. 이경숙 교수(이화여대 명예)는 '광야에서 희망의 땅으로: 아시아 성서 해석의 현재와 미래', 최영실 교수(성공회대 명예)는 '성서가 여성을 죽여?'라는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최영실 교수(성공회대 명예)는 성서가 여성 혐오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름부터 잘못됐다

최영실 교수는 여성 혐오가 정말 성서적으로 근거 있는 것인지 살폈다. 일부 여성 신학자가 여성 혐오의 깊은 뿌리가 성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해석 논란이 있는 몇몇 구절을 소개했다. 그는 디모데전서 3장에서 남자 장로와 동일하게 '좋은 것을 가르치는' 직분을 여성에게도 허락했다고 말했다. 여성 장로·목사가 없는 현재 교회 구조가 성경적이지 않다고 설명했다.

여성을 비하하는 데 자주 이용된 '남자는 여자의 머리'라는 부분도 반박했다. 최영실 교수는 바울이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단어를 사용한 것은 분명하지만 오히려 가부장적인 유대교 가르침을 뒤엎는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는 표상을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고전 11:3)'이라는 구조 속에 넣음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남자와 여자 모두 하나님이 지으신 자임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여성 목사 안수를 거부할 때 주로 사용하는 "여성은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고전 14:34) 또한 잘못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영실 교수는 바울이 이 말을 한 것은 방언하는 남자와 예언하는 남자들에게 먼저 '잠잠하라'고 명한 후 '그와 같이'라는 부사를 써서 여자에게도 '잠잠하라'는 말을 쓴 것이라 설명했다.

최영실 교수는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에도 여성 혐오·비난·차별 섞인 표현이 들어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이름에서도 '여성 혐오'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두 여성만 없어지면 모든 사태가 끝날 것 같지만 사태의 더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면 박근혜와 최순실을 둘러싸고 줄기로 뻗어 나간 남성 권력가 있다고 했다. 여기까지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성평등과 정의가 실현되고 '여성 혐오'가 근절될 때까지 여성 신학자들이 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역사 현장에서 성서를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경숙 교수(이화여대 명예)는 성서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성서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이경숙 교수는 성서신학을 공부할 때 주의를 기울였으면 하는 점을 먼저 소개했다. 이 교수는 성경은 히브리 난민의 역사, 민중의 기록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는 성경은 피해자 입장에서 기록된 유일한 책, 피지배계급의 역사가 담긴 책이라는 점에서 성서 주인공이 사회 주변부 사람임을 기억하고 성서를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신학의 눈으로 성서를 해석하는 것이 어떤 말인지 예를 들어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사야서에 나오는 '종의 노래'를 예로 들었다. 종이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에 찔리고 상했다고 고백한다. 이 교수는 여기서 '우리'가 누구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라고 고백하는 시인 혹은 그가 대변하는 공동체가 없었다면 종이 당한 온갖 고난은 무의미한 것, 종 개인의 문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고백함으로 종이 헛수고를 한 자가 아니며 일반적으로 오해하듯 죄인도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고 종은 명예를 회복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우리'를 적용한 사례는 뭐가 있을까. 이경숙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가, '우리'의 짐을 대신 짊어졌다(대고·代苦)고 고백한 여성들에 의해 시작됐다고 말했다. 일본군에 잡혀 가지 않았던 학자 윤정옥 교수(이화여대 영문학과 은퇴)가 '위안부'의 실상을 알리고, 교회 내 여성·신학자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고 했다.

"죄없는 자들의 고난이 '우리를 대신해서 당하는' 대고(代苦)라는 사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참으로 특이한 전대미문의 해석이다. 대신 당하는 고통이라는 개념은 많은 사람들이 당하고 있는 가난과 질병과 고통을 사실상 우리의 탐욕과 우리의 무관심 때문에 생긴 고통이라는 해석을 가능하게 해 준다."

이경숙 교수는 이런 여러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 신학자 특히 성서학자들은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사람들 편에 서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약한 자와의 연대가 신학이 서 있어야 할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심해져 가고 있는 여성 혐오의 세상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점점 더 교묘하게 포장된 각종 차별주의를 잘 선별해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정확히 짚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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