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올해 상반기 '깔창 생리대'를 다룬 뉴스가 터졌다. 저소득층 학생들이 생리대 살 형편이 안 돼 휴지나 깔창을 사용하거나 아예 학교를 결석한다는 내용이었다. 여성들은 분노했다. 한국 기업이 여성 생필품인 생리대를 비싸게 판매하기 때문이다. 당시 여성들은 빨간 펜으로 불만을 적은 생리대를 인사동 거리 한복판에 붙였다.

시중에 유통되는 중형 사이즈의 생리대는 16개에 6,000원이다. 하루에 4개를 사용한다고 할 때, 4일이면 한 팩을 다 쓰는 셈이다. 여기에 취침할 때 쓰는 '오버나이트'나 끝날 무렵 쓰는 '팬티라이너'까지 포함하면 한 달에 지출되는 생리대 비용도 만만찮다.

중형 생리대 16개를 2,500원에 판매하는 회사가 나타났다. 홍도겸·심재윤 대표가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 '29일'이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여성들의 생리대 문제에 발 벗고 나선 '남성'들이 있다. 생리대 16개를 2,500원에 판매하는 '반값 생리대'를 제작한 사회적 기업 '29일' 홍도겸·심재윤 공동대표다. 이들을 만나기 전, 남자들이 무슨 이유로 생리대 시장에 뛰어들었을까 궁금했다. 12월 1일 분당에 있는 '29일' 사무실을 찾았다. 문을 열자 두 대표가 활짝 웃으며 기자를 맞이했다.

"생리대 종류를 설명해 달라"는 물음에 홍도겸 대표는 "생리대 종류가 참 많아요. 양에 따라 소형·중형·대형·오버나이트가 있고, 굵기를 결정하는 울트라슬림·슬림도 있어요. 날개가 있냐 없냐에 따라 종류가 또 달라지고요. 한국에서는 잘 안 쓰지만 탐폰도 있고요"라며 거침없이 생리대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렴한 생리대 만드는 두 남자

여성의 생리·위생 문제에 관심이 많은 두 대표는 1년 전 '29일'을 창업했다. 다들 '망하면 어떡할까' 망설이는 사회적 기업 판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여성 다수가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생리가 그들에게 두렵거나 부담스러운 일이 되지 않았으면 해서다. 그 부담을 덜어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생리 주기인 '29일'을 회사 이름으로 정했다.

아직 시중에서 판매되지는 않지만, 이들은 가격 부담이 적은 생리대를 제작하고 있다. 이름하야 '반값 생리대'. 아이디어는 홍도겸 대표에게서 나왔다. 홍 대표는 10대 후반부터 미국과 캐나다에서 생활했다. 대학 졸업 후 한국에 돌아왔는데 생리대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국 생리대가 1개에 180원 꼴이라면, 한국은 300원이 훌쩍 넘었다.

홍도겸 / "저렴한 생리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마트에서 1+1로 묶어서 판매하기도 하고 이벤트할 때는 할인가로 주기도 해요. 근데 그걸로는 부족한 거 같았어요. 면 생리대를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아직은 보편화되지 않았으니까요. 일회용 생리대 중 정가 자체가 싼 생리대가 필요해 보였죠. 주변에 물어보니 생리대 가격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꽤 있었고요. 회사를 그만두고 사회적 기업 육성 과정 프로젝트에 참가했는데, 거기서 심재윤 대표를 만났어요."

남성이다 보니 생리대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1년간 두 대표는 발품 팔며 시장조사를 했다. 해프닝도 많았다. 대형 마트를 돌며 제품 종류, 제조 회사, 공장, 성분 등이 적힌 포장지를 하나씩 찍고 기록했다. 주변 사람들은 몇 분간 생리대 코너에 서 있는 두 대표에게 이상한 눈길을 보냈다. 판매원들은 "여자친구 사 줄려고 그러는 거냐"고 물었다.

지인들에게 의견을 구할 때도 처음 30분은 민망한 마음에 다른 말들만 에둘러 했다. 여성들도 어색해했다. 시간이 지나자 '생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주변 사람들도 말을 시작하자 쉴 새 없이 생리와 생리대에 대한 불편함을 쏟아 놨다.

반값 생리대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한 홍도겸 대표. 남성인 그에게 왜 생리대 문제가 시급하게 다가왔을까. 뉴스앤조이 최유리

시장조사를 끝내고, 어떻게 하면 판매가를 낮출 수 있을까 고민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인건비를 낮추는 거였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 있는 공장을 물색했다. 그러나 해외는 수시로 찾아가기 어려우니 위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여성의 몸에 직접 닿는 제품인데, 가격 때문에 리스크를 껴안을 수는 없었다. 결국 유통 마진과 마케팅 비용을 최소화하면 가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알아냈다.

그러다 '깔창 생리대 사건'이 터졌다. 홍도겸 대표 말을 듣고 '29일'을 시작한 심재윤 대표는 당시 이 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재윤 / "깔창 생리대 기사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어요. '반값 생리대'가 꼭 있어야 하겠다는 확신도 그때 섰죠. 사실 이 사건 전에는 '이게 맞는 걸까'라고 고민하기도 했어요. 생리대 가격에 부담을 느끼는 여성이 있지만, 모든 여성이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니까요. 기사를 보면서 이 일이 누군가에게는 아픔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생리에 대한 터부 깨는 회사

29일은 생리대를 제작하면서 '생리를 둘러싼 터부 문제'도 함께 해결하고 싶었다. 단순히 저렴한 제품을 만드는 게 그들의 목적은 아니다. 지인들에게 "마트에서 생리대를 사면 늘 검은 봉지에 담아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홍 대표가 공부했던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생리대는 굳이 감출 일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었다.

고민이 시작됐다. 시중에 판매하는 생리대는 누가 봐도 생리대라는 걸 알 수 있다. 겉면에 크게 생리대 그림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굳이 검은 봉지에 담지 않아도 되는 생리대를 만들고 싶었다. 시안 몇 개를 준비해 여성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600명가량 설문 조사를 했다. 그 결과 녹색 나뭇잎이 그려진 박스 형태로 생리대를 만들었다.

홍도겸 / "여러 디자인이 있었어요. 캐릭터가 들어간 것도 있고, 도시적인 여성을 나타내는 원색적인 문양이 들어간 것도 있었어요. 여성들에게 문의했죠. 나뭇잎이 그려진 디자인이 환경친화적이고 좋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그대로 따랐죠. 여성 제품이니까 대표 판단보다는 직접 쓰는 사람들 의견이 충분히 담겨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어요."

두 대표는 청결 티슈 결합형 생리대도 준비 중이다. 생리 기간에도 여성들이 화장실에서 형광물질이 포함된 휴지를 쓴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생리대 하나에 청결 티슈 하나를 함께 포장해 화장실에서 좀 더 손쉽고 위생적으로 뒤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홍도겸 / "형광물질이 포함된 휴지는 여성 위생에 좋지 않아요. 그렇다고 청결 티슈를 챙기려면 파우치를 늘 들고 다녀야 해요. 생리대랑 청결 티슈를 같이 들고 다니려면 불편하죠. 청결 티슈 결합형 생리대가 있으면 조금 더 편하게 생리 기간을 보낼 수 있을 거 같아요."

심재윤 대표(오른쪽)은 '29일'이 단지 생리대만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고 말했다. 여성 위생 문제, 편견, 차별 등을 알리고 인식 개선 캠페인도 진행하려 한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이들은 여성을 둘러싼 인식 개선 캠페인도 진행한다. 생리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인식, 생리대는 감춰야 한다는 생각들을 바꾸려고 한다. 아직 콘텐츠나 방법은 정하지 않았지만 여성이 말하기 힘들어하는 걸 두 사람이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려고 한다.

심재윤 / "사건을 겪고 있는 여성이 직접 이야기하면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이야기를 남성인 저희가 하면 어떨까 싶어요. 당사자가 이야기할 때보다 메시지가 더 크게 다가가고 진실되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그러다 보면 사회가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현재 '29Days'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와디즈'에서 구매할 수 있다. 11월 15일에 론칭해 12월 15일 펀딩을 마친다. 1월 16일부터 본격적인 배송을 시작한다. 유통비가 비싼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 매장과 '29일' 자체 사이트에서 판매를 이어 갈 예정이다. 현재는 2,500원이지만 소비자가 더 늘어나면 더 저렴한 가격에 생리대를 판매한다. '와디즈' 펀딩에서 나오는 금액 중 200만 원은 '사랑의열매'에 기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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