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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반 일하고 10년 싸웠다
[인터뷰] KTX 해고 승무원 김승하 씨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
  • 이은혜 기자 (eunlee@newsnjoy.or.kr)
  • 승인 2016.12.02 22:48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특출난 삶을 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평범한 삶을 꿈꾼다. '평범한'이라는 말을 정의하기 쉽지 않다. 일할 곳이 있고, 먹을 것이 있으며, 편히 쉴 곳이 있고, 삶을 나눌 사람이 주변에 있는 삶. 최근 들어 평범한 삶조차 허락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그래도 위와 같은 상황 정도면 '평범한 삶'이 아닐까 싶다.

김승하 씨가 처음 일을 시작하던 12년 전, 이렇게 거리에서 마이크를 잡게 될 줄 알았을까. 뉴스앤조이 이은혜

KTX 해고 승무원 김승하 씨(37)도 그랬다.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그의 꿈은 항공사 승무원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항공사 입사를 준비했다. '스튜어디스'가 되려면 전문 입시 학원에서 따로 교육을 받아야 했다. 김 씨도 마찬가지였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하루하루 열심히 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노력했다. 열심히 항공사 입사를 준비할 무렵 한 채용 공고가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선로 위의 스튜어디스'. 2003년 12월경이었다. 주위 사람들은 철도청(현 한국철도공사)이 하는 것이면 공무원과 같은 수준 아니냐며 KTX 승무원에 지원해 보라고 했다. 김승하 씨도 처음 모집하는 KTX 승무원이 신선해 보였다. 다른 항공사 시험과 겹쳤지만 KTX 승무원에 지원했고 1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됐다.

한국철도공사 직접 고용이 아니라는 것은 합격 뒤에 알았다. 12월에 합격 통지를 받고 2004년 3월까지 연수를 받았다. 연수 내용도 체계적이지 못했다. 연수 끝날 때에야 계약서를 썼다. 고속철도 승무원 운영 체계가 아직 잘 잡혀 있지 않기 때문에 우선 홍익회(현 철도유통)라는 한국철도공사 자회사와 계약직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KTX 승무원이 되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다.

20대 중반, 대학을 막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 "계약서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불법 파견직인 것 같으니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당시만 해도 하도급, 불법 파견 등 개념조차 모호할 때였다. 승무원 300명은 철도유통이 보장한 '항공사 승무원급 대우와 정규직 전환'이라는 말만 철썩 같이 믿었다. 그렇게 믿은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겠다. 김승하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계약서에 사인하는 일은 형식적이었다. 비정규직인 것을 알면서도 왜 서명했느냐고 물으면 당신 같으면 어떻게 했겠느냐고 반문하고 싶다. 우리도 비정규직, 파견직 하고 싶어서 간 게 아니다. 승무원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KTX 승무원이 되는 유일한 길이었다."

2004년 4월 '선로 위의 스튜디어스'들은 일을 시작했다. 기장만 안전하게 운전한다고 열차가 잘 달릴 수는 없다. 철도는 많은 구성원의 협업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한국철도공사는 KTX 승무원 업무만 철도유통에 위탁했다. 안전 교육에는 관심도 없었다. 승무원 운영이 처음이었던 철도유통는 모든 것을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했다. 당장 내일 스케줄을 몰라 본부에 연락하면 연락한 순서대로 타야 할 기차를 배정해 줬다.

10년째 투쟁을 이어 오고 있는 김승하 씨를 12월 1일 만났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철도유통의 관심은 다른 데 있었다. 한국철도공사는 승무원 1인 월급으로 230여 만 원을 철도유통에 보냈다. 철도유통을 거치며 승무원 손에 떨어지는 월급은 세전 170만 원으로 줄었다. 유니폼, 명찰 등 각종 소모품을 월급에서 제하고 줬다. 승무원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커져 갔지만 이미 있는 어용 노조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름만 노조였지 사측을 대변하는 곳이었다.

2006년, 기나긴 싸움이 시작되던 해

어용 노조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철도노조에서 함께하자고 연락이 왔다. KTX 승무원들은 마침 다른 자회사로 옮기라는 압박을 받고 있을 때였다. 비정규직 채용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법망을 피해 가기 위해서였는지 모른다. 이때 철도노조는 어떻게 행동하고 대응해야 하는지 알려 주었다.

'케이티엑스관광레저'라는 회사로 옮기는 대신 승무원들은 파업을 선택했다. 2006년 3월 1일 싸움을 시작할 때 10년이나 지속되리라는 것을 손톱만큼이라도 예상했을까. 그 뒤로 승무원들은 단식, 삭발, 점거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투쟁했다. 투쟁의 대가는 해고였다.

투쟁이 길어질수록 함께 싸우던 승무원 수는 줄었다. 일부는 한국철도공사 자회사로 옮겨 승무원 일을 계속했다. 일부는 긴 싸움에 지쳐 떠났다. 마지막까지 남은 승무원 34명. 이들은 불법 파견을 주장하며 법정 다툼을 시작했다. 1심과 2심에서는 승무원이 이겼다. 법원은 승무원과 한국철도공사 사이에 암묵적인 계약 관계가 성립한다며 직접 고용을 명령했다. 2008년 1심 판결이 끝난 뒤 밀린 임금을 받을 수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좋았지만 아쉽게도 승무원들의 싸움은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2015년 2월 대법원은 "코레일과 승무원 사이에 직접 근로관계가 성립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2015년 11월 열린 파기환송심에서도 서울고등법원은 한국철도공사의 손을 들었다. 이 판결로 승무원들은 그동안 받은 임금 8,640만 원을 한국철도공사에 돌려줘야 하는 처지가 됐다.

"최연혜 전 한국철도공사 사장이 2016년 20대 총선에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돈을 갚으라는 말은 없었는데, 총선 끝나자마자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한국철도공사에 진 개인 부채가 있으니 언제까지 갚아라. 못 갚으면 연간 이자 5%가 붙는다는 내용이었다. 얼마 전에 2차 내용증명도 받았다."

한국철도공사 손을 들어 준 대법원 판결은 사람 목숨도 앗아 갔다. 판결 보름 뒤 마지막까지 함께 싸우던 동료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사고사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동료는 캄캄한 현실에 좌절해 스스로 세상을 등졌지만 그의 빚 8,640만 원은 고스란히 남편에게 상속됐다. 가끔 동료 남편과 연락을 주고받을 때 이제 엄마가 올 때가 되지 않았냐고 묻는다는 그의 딸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그의 딸에게 무슨 대답을 해 줄 수 있을까. 아직 싸움을 끝낼 수 없는 이유다.

2015년 대림절에도 후원 기도회에 참석했다. 발언하고 있는 김승하 씨 뒷모습. 뉴스앤조이 이은혜

장기 투쟁,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혹자는 대법원 판결까지 끝난 마당에 더 싸울 게 남았느냐고 묻는다. 김승하 씨도 법적으로 더 취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래도 여전히 희망을 품고 있다. 노사 협상으로 복직한 사례도 있고 정치권의 도움도 기대하고 있다.

현재 한국철도공사는 해고 승무원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문제가 산재해 있다. 멀쩡했던 직업이 비정규직으로 바뀌고 그 결과로 철도 안전에 문제가 생긴다. 얼마 전 경주에서 지진이 났을 때 선로 작업을 하던 하청 업체 인부가 KTX 차량에 치어 숨졌다.

10년이나 이어진 투쟁. 첫 직업이 KTX 승무원이었던 김승하 씨는 2년 반을 일하고 10년을 싸웠다. 싸우는 동안 다른 직업을 가질 수도 없었다. 누군가는 현장에 남아서 싸워야 했다. 300명이 함께 싸울 때는 무서울 게 없었지만 동료들이 하나둘 떠나가는 것을 볼 때면 불안감이 밀려왔다. 남들은 열심히 커리어를 쌓는데 뭘 하고 있는지 걱정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럼에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올해 2월, KTX 해고 승무원 후원 행사를 했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와 주셨다. 우리를 기억하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우리가 열심히 싸워 온 세월이 그냥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 분들에게 얻는 힘으로 다시 열심히 할 수 있는 힘을 얻고 있다. 종교 단체에서도 잊지 않고 꾸준히 도와주시고 있고. 요즘 연대의 힘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KTX 해고 승무원과 함께하는 성탄절 연합 예배를 기획했다. 이렇게 잊지 않고 기억해 주는 이들이 있어 고마울 뿐이다. 김승하 씨는 "심적으로 제일 힘든 것이 이 문제 자체가 사람들 기억에서 잊히는 일이다. 장기 투쟁 사업장이 다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사회적으로 알리는 게 제일 큰 과제다. 우리를 기억해 주고, 모여서 활동하고 하는 일을 대중이 접하게 되면 그것만큼 감사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

잊혀지지 않는 것. 김승하 씨가 가장 바라는 일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10년 가까이 싸우면서 새로운 형태의 싸움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투쟁의 모습은 다양하게 변한다. 변하지 않는 중요한 사실 하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싸움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승하 씨는 잘못된 부분을 끝까지 알릴 생각이다. 당사자가 나서지 않으면 누가 대신해서 싸워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에, 이 현장을 떠날 수 없다.

12년 전 '선로 위의 스튜어디스'를 꿈꾸던 김승하 씨는 이제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평범한 삶을 꿈꾸던 그가 또 다른 평범한 삶을 꿈꾸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없는지 물었다.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남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 봐서 정규직 됐는데, 우리는 공 안 들이고 정규직 되려는 거 아니냐는 오해를 많이 받는다. 당시 KTX 승무원이 되려면 비정규직이라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멀쩡하던 직업이 비정규직으로 변하고 있다. 그 사람들이 못나서 비정규직이 되는 게 아니다. 누구든지 그런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

지금 철도 파업이 진행 중인데 불편하다고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직장을, 여러분 자녀의 직장을 온전하게 지켜 내는 일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어떨까. 언제든 나도 똑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오랜 시간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 보여 주시면 좋겠다."

대림절 기간, 매주 목요일 'KTX 해고 승무원과 함께하는 기도회'가 열린다. 12월 8일, 15일, 22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시작한다. 성탄절 당일에는 서울역 광장에서 'KTX 해고 승무원과 함께하는 성탄절 연합 예배'가 열린다. 승무원 후원을 위한 기도초도 함께 판매하고 있다. (온라인 신청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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