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경춘선 전철을 타고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호평역에 도착할 무렵이면 차창 너머 즐비한 빌딩을 볼 수 있다. 아파트숲을 헤치고 가다 보면 '우리동네청년연구소'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이름만 보면 동네에 사는 청년을 연구하는 곳이라는 건지, 청년이 동네를 연구한다는 건지 쉽게 짐작이 가지 않는다.

연구소 내부는 분위기 좋은 카페 느낌이다. 한쪽에는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는 머신이 있고 커다란 테이블이 흩어져 있다. 몇몇 청년이 편안한 소파에 앉아 잔잔한 재즈를 듣고 있었다. 음악 작업이 가능한 작은 녹음실도 있었다. 카페는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뭐하는 곳일까?

우리동네청년연구소는 매주 한 차례 동네 청년이 모여 식사하는 장소가 된다. 사진 제공 우리동네청년연구소
새로운 일 꿈꾸는 동네 청년 모여라

우리동네청년연구소는 요즘 서울 시내에서 간간이 찾을 수 있는 '코워킹스페이스(co-working space)'다. 코워킹스페이스는 서로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개인이 모여 한 공간을 나눠 쓰는 곳을 말한다.

공간이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다양한 용도로 변신이 가능하다. 열심히 디자인한 물건을 팔고 싶은데 사진 찍을 곳이 마땅찮으면 이곳을 빌려 찍으면 된다. 새로운 일을 도모할 때 편하게 오래 앉아 토론하며 쉴 곳이 되기도 한다. 자신만의 독특한 아이템은 있는데 아직 사무실을 낼 정도로 돈이 모이지 않은 청년에게는 탁 트인 사무실이 되기도 한다.

우리동네청년연구소는 그런 곳이다. 김소망 씨(36)는 지인 3명과 함께, 남양주시 평내동과 호평동에 사는 청년들의 작은 아지트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7월 연구소를 시작했다. 약 45평 공간을 복층으로 꾸몄다. 물론 공짜로 빌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양질의 공간을 제공한다.

이제 막 4개월 버텼다. 처음 두 달은 월세 내기도 버거웠지만 이제 조금씩 운영에 숨통이 트이고 있다. 디지이너, 음악가가 장소를 사용하고, 한 플라워리스트는 장기 입주를 신청했다. 공간 대여 말고도, 매주 한 번 동네 청년들과 간단한 식사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점점 사람 숨결 가득 찬 공간이 되어 가고 있다.

교회로 변신!

우리동네청년연구소는 일요일이면 교회로 변신한다. 오전에는 '나무교회'가 예배 공간으로 사용하고, 오후에는 대한성공회 소속 '나무공동체'가 사용한다. 우연찮게 이름이 똑같은데 서로 전혀 관계없던 교회였다. 교회 두 곳이 같은 공간을 나눠 쓴다.

우리동네청년연구소를 지키는 김소망 목사. 뉴스앤조이 이은혜

나무교회는 우리동네청년연구소 주인장 김소망 씨가 담당한다. 김소망 씨는 목사다. 그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서울동노회 소속이다. 10년 동안 현장에서 청소년·청년과 뒹굴었다. 나이는 30대 중반. 한창 부교역자로 정신없이 사역할 때. 신대원 동기들은 대부분 기성 교회 부목사다.

평내동과 호평동에만 이미 교회가 70~80개다. 주변에는 중대형 교회가 두 개나 있다. 김소망 목사는 이 상황에 왜 또 다른 교회를 시작했을까.

"현장에서 사역하면서 교회 어른들이 청년들을 우매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신앙 서적은 많이 권하는데 신학 서적은 권하지 않고, 교회 행사에 들러리로 세우거나 봉사하지 않으면 믿음 없는 사람 취급하죠. '믿음'이라는 게 뭘까 생각하던 중, 사역하던 교회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어요. 그러면서 '교회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죠."

김소망 목사는 일제강점기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 활동에 주목했다. 그들은 예수님만 전한 것이 아니라 한국인 삶에 필요한 교육·의료 사업에 힘썼다. 예수의 이름을 전하기 전에 그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행동한 것이다. 김 목사도 여기서부터 교회 역할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 한국 사회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일자리와 집이었다.

교회 간판을 걸지 않았다. 전도지를 나눠 주는 일도 없다. 대신 어떻게 하면 비신자 청년들을 만나고 그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지금 남양주 평내동과 호평동에 사는 청년들에게 교회가 해 줄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생각한 게 코워킹스페이스 우리동네청년연구소다.

연구소는 복층 구조다. 탁 트인 공간에 테이블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일해 보니 교인들 삶 알겠다"

김소망 목사는 기성 교회와 새로운 모습의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다르다고 봤다. 전통 교회 사역 자체를 부인하자는 게 아니다. 하지만 매번 똑같은 모습으로 비슷하게 사역하는 한국교회 모습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스스로 전통 목회를 할 수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 그는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다른 모습의 교회, 새로운 프레임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이제 넉 달. 김소망 목사는 교인들 삶이 이제 조금 이해가 간다고 말한다.

"교회에만 있을 때는 오히려 교인들의 삶을 잘 몰랐어요. 이렇게 나와서 일하면서 월세도 내 보니까, 월세 내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마음 졸이는 일인지 알겠더라고요. 공간 마련할 때 인테리어 공사를 직접 했거든요. 아침부터 밤 11시, 12시까지 육체노동하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렇게 일한 사람한테 어떻게 새벽 기도 나와라, 안 되면 성경이라도 읽으라고 해요. 앞으로는 설교할 때 함부로 말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목표는 우선 4년. 잘 버티고 싶다. 당장 월세가 안 밀려야 한다. 동네 청년들과도 많이 교류하고 싶다. 김 목사는 왜 교회를 다녀야 하는지 묻는 청년에게 뭐라 답할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이 대답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