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 역사 교사들이 국정교과서 거부 성명을 발표했다. 사진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실천 선언을 하던 2015년 10월 좋은교사운동 모임 당시 모습. 사진 제공 좋은교사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교육 현장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기독 교사들이 국정교과서 거부 방침을 밝혔다. 기독 교사 단체인 좋은교사운동(공동대표 김진우·임종화) 소속 기독역사교사모임은 국정교과서 공개 다음 날인 11월 29일 '우리는 국정 역사교과서 거부합니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역사 교사들은 국정교과서가 균형 있는 서술이라고 했지만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표기한 것은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독립운동가의 헌신을 욕되게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승만과 박정희 정부 관련 서술을 과다 편성하고 현대사 집필진에 현대사 학자가 한 명도 없는 점 등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교과서뿐만 아니라 과정도 문제 삼았다. 검인정교과서 체제로 바꾼 지 10년 만에 다시 국정교과서로 되돌리고, 이마저 집필 기준과 집필진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기독역사교사모임은 이렇게 문제 많은 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다며 "어떠한 압력에도 끝까지 저항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

우리는 국정 역사 교과서 거부합니다

교육부가 역사 국정교과서 검토본을 발표했습니다. 예상대로 교육부는 현 집권 세력의 역사관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었습니다.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표기한 것에 대해 교육부는 친일을 미화하고 독립운동을 부정할 의도가 없다고 하였으나, 그 날을 정부 수립이 아니라 국가 수립이라고 말하는 순간,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헌신을 이미 욕되게 한 것입니다. 또한 균형 있는 역사 서술이라는 미명 아래 곳곳에 이승만과 박정희 정부의 관련 서술을 과다하게 편성하고, 실정의 불가피성을 변호하는 등 균형 잃은 역사 서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대사 집필진에 현대사를 전공한 학자가 한 명도 없고 경제학, 군사학 전공자로 채워진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 정부의 과오를 감추고,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퇴색시키는 국정교과서의 서술 방향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1년 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발표했을 때, 이미 다수의 국민들이 역사교육의 퇴행을 우려하였습니다. 하나의 관점으로 강요된 역사를 배워서는 결코 종합적인 역사적 사고 능력과 비판 능력을 기를 수 없습니다. 역사적 사고력과 역사적 비판 능력의 신장을 통한 민주 시민 양성은 여러 교육과정의 개정을 거쳐 오면서도 지켜 왔던 역사과 교육과정의 목표였습니다. 이러한 역사교육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여 한국사를 검정교과서를 만들었는데, 시행된 지 채 10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다시 과거로 돌아가려는 교육부의 시도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교육부가 고시한 역사과 교육과정의 목표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국정교과서 제작의 과정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교육부 당국자들 말대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옳은 결정이었다면 집필진과 편찬 기준을 비공개로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다수의 국민이 반대하고 있고, 그 반대가 두려워서 집필진과 편찬 기준을 공개하지 않은 채 밀실에서 제작해 온 것입니다. 이 사실 자체가 교육부 스스로 국정교과서를 추진할 명분이 없음을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정책을 추진하는 당사자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을 권력자의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추진하였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런 교과서를 학교 현장에 공급하여 자라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라는 말입니까? 교육부 스스로 교육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한국사 교과서를 집권 세력의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려는 시도를 멈추십시오. 국정교과서 검토본을 즉각 폐기하십시오. 이러한 시도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가 바뀌는 혼란만 가져올 뿐입니다. 여러 관점을 가진 교과서가 나올 수 있도록 만들어 놓고, 학교 현장에서 토론하며 역사를 배우도록 하십시오. 한국사 국정교과서 발행을 멈추는 것이 올바른 역사교육의 출발임을 기억하십시오.

기독 역사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생명 없는 역사를 가르치지 않을 것입니다. 외세의 지배에 맞서 싸웠던 자랑스러운 독립운동의 역사, 여러 독재자의 출현에 굴하지 않고 맞서 싸우며 이 땅의 민주화를 꽃피운 자랑스러운 역사를 학생들과 치열하게 토론하며 배울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결코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압력에도 끝까지 저항할 것임을 선언합니다.

2016년 11월 29일
좋은교사운동 기독역사교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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