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이 지금처럼 분노한 적이 또 있을까. 남의 나라의 침입을 받고 자유를 잃었을 때를 제외하고 말이다. 물론 군사정권의 군홧발에 채이던 시대도 있긴 했다. 하지만 이처럼 발달한(?) 민주주의 시대를 자랑스럽게 여기던 국민에게 불어닥친 배신의 덫에 치를 떤 적은 없다.

군사정권 시대에는 독재 정권이 권력을 휘두를 때니 다들 그러려니 했다. 남의 나라의 지배를 받을 때도 남의 나라니까 무지막지한 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해방을 위해 뛰었다. 지금처럼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찢길 때보다 더 분한 때는 없으려니.

대통령이 통치하는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니 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이다. '절망'이라는 표현으로 작금의 사태를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절망에 절망', '배신에 배신', '기가 참의 곱빼기'. 하여튼 표현할 길이 없다.

그러나, 그런데, 그럼에도 우리는 이 험난한 시대를 딛고 일어나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어냐고 질문하면 '진실 규명'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검찰이 성역 없이 수사하고 죄인을 색출하여 벌을 줘야 한다고도 한다. 죄의 몸통인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도 한다.

다 맞는 말이다. 잊지 말아야 하는 건 지금의 사태를 교훈 삼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앞에서 열거하는 국민의 소원을 넘어 더 전진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전화위복'이라 하던가. 교과서적으로 말하면 앞의 국민 바람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이미 알고 있듯 그게 그리 쉽게 이뤄질 것 같지 않아 더 슬프다. 우리의 역사는 권력자들의 비리나 잘못에 대하여 음유시인이 되는 전철을 밟아 왔다. 전두환 시대의 발포 명령, 세월호 사건 당시 7시간, 무엇 하나 시원한 게 없다.

그러니 절망의 암울한 그림자를 이미 밟은 듯하다. 이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말하면 미친 사람일 게다. 하지만 지금 난 미친 사람이고 싶다. 다 손가락질할 때, 다 땅을 칠 때, 다 절망할 때 희망을 노래하고 싶다.

어느 마을 다리 밑에는 걸인 두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 다리 입구 쪽에는 다리를 세울 때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비가 서 있었다. 한 걸인은 그 기념비에 침을 뱉으며 언제나 욕을 해댔다.

"에이! 양심도 없는 놈들! 돈 많은 것들이 생색내기는"

그러나 한 걸인은 늘 이렇게 말했다.

"참 고마운 사람들 아닌가. 우리에게 비를 피할 수 있도록 해주고 많은 사람을 건너가게 해 주니 말일세. 나도 언젠가 이 사람들처럼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30년이 지난 후 그 다리 옆에 새로 큰 다리가 세워졌다. 기념비에 새겨진 이름 중엔 늘 고마운 마음을 가졌던 걸인의 이름도 들어 있었다. 그는 열심히 일하여 마침내는 부자가 되어 기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침을 뱉으며 항상 욕을 했던 다른 걸인은 여전히 그 다리 밑에서 살고 있다.

지금 우리는 다리 밑에 여전히 있을 건지, 다리를 벗어나 있을 건지 그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전화위복이 되어 후자가 되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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