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가톨릭 성골롬반외방선교회가 11월 7일 '선교, 타 종교와의 만남과 상호 이해'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개신교인 정경일 박사(새길기독사회문화원), 이슬람권 선교사 김면정 수녀, 한국 이주 노동자 사역을 하는 조해인 신부가 발제를 맡았다.

가톨릭 행사이기는 했지만, 이웃 종교에 특히 적대적인 개신교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자리였다. 가톨릭 성직자 및 선교에 관심 있는 40여 명이 이른 아침부터 세미나를 찾았다. 드문드문 외국인 성직자도 앉아 있었다.

우리는 타 종교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가톨릭에서 선교 방향성을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초창기 선교사, 이웃 종교와 대결 구도 만들어

정경일 박사는 타 종교와 벗하지 못하는 개신교의 태도를 지적했다. 그는 자기가 직접 겪은 경험을 예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비기독교인을 남편으로 둔 한 기독교인이 있었다. 남편이 교회에 다니지 않으니 매년 제사를 드렸다. 대부분 개신교 신앙은 조상께 드리는 제사를 부정적으로 본다. 이 여성도 교회서 배운 게 있으니 제사를 드리는 게 불편했다. 어느 날 갑자기 딸이 사고로 사망했다. 사건이 있고 나서, 교인들이 제사 때문에 하나님이 노하셨다고 평가했다. 이 여성은 그 말을 듣고 혼란스러웠다. 나에게 딸이 죽은 이유가 정말 그것 때문이냐고 물었다."

개신교인 다수는 제사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1계명에 위배된다고 생각한다. 우상숭배로 받아들인다. 왜 한국교회는 전통문화였던 '제사'를 우상숭배 행위로 생각할까.

정경일 박사는 원인으로 서양인 선교사를 언급했다. 그는 당시 한국에 들어온 초창기 개신교 선교사가 대부분 근본주의 신앙을 지녔다고 말했다. 기독교인에게 잘 알려진 아펜젤러나 언더우드 선교사는 △성서무오설 △예수의 동정녀 탄생 △대속적 죽음 △육체 부활과 재림을 핵심 교리로 삼고 있었다고 했다.

복음 전파 열정이 넘치던 이들은 한국 전통문화에 관심이 없었다. 서양에서 보지 못하는 행태를 미개하고 악마적인 것으로 여겼다. 예수 외 나머지를 포용하면 안 되는 것으로 취급했다. 이들에게서 신앙을 전수받은 한국 개신교 역시 다른 종교를 이해하고 포용하기보다 배척하는 자세를 취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배타적·공격적 선교, 군사주의와도 연관

정 박사는 한국 기독교의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태도가 군사주의와도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한국 기독교는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거치며 정치꾼과 한배를 탔다. 종교가 권력을 쟁취하기 시작한 것.

당시 한국 기독교를 힘 있게 끌고 간 사람들은 해방 후 월남한 기독교인들이었다. 이들은 공산주의의 억압과 핍박을 벗어나고자 북한을 탈출했다. 남한으로 내려온 뒤 꾸준히 반공 운동을 펼쳤다. 이 점이 이승만·박정희 정권의 뜻과 부합했다. 두 정권 역시 체제를 정당화하고 유지하려면 국민을 단결할 캐치프레이즈가 필요했다. 그게 '반공'이었다.

정치와 손잡은 한국교회는 정부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이승만 정권 시기 군목 제도 시행을 시작으로, 박정희 정권 때 빌리 그레이엄 전도 집회, 엑스플로 74 대회, 민족 복음화 대성회 같은 대규모 부흥 집회를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왔다.

결국 한국전쟁과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한국교회는 군사주의에 물들기 시작했다. 흑백논리, 상명하복식 권위주의, 반생명적 폭력, 마초적 남성 우월주의, 적군과 아군을 나누고 대결적 태도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타 종교 이웃 삼은 두 신학자

타 종교를 배척하는 개신교인만 있었던 건 아니다. 정경일 박사는 이웃 종교와 대화해 온 인물도 소개했다. 신학자 최병헌·변선환 목사다.

"이들은 신학적 입장이 다름에도 각자의 방식으로 이웃 종교를 환대하고 대화했다. 종교적 배타주의가 지배적인 한국 개신교 풍토에서도 이웃 종교와 만나고 대화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탁사 최병헌 목사는 종교 간 대화를 실천한 최초의 개신교 사상가다. 이웃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하진 않는다. 기독교 외 다른 종교에는 완전한 진리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이는 오늘날 근본주의자들이 보이는 적대와 다르다. 최 목사는 대화하려는 자세를 취한다. 종교 간 비교로 이웃 종교를 알아가고 기독교를 한층 더 깊게 이해한다.

변선환 목사는 최병헌 목사 관점에서 더 나아간다. 이웃 종교에도 보편적 구원이 있을 수 있다는 '종교다원주의'를 수용했다. 그는 대부분 기독교인이 불편하게 여기는 다원주의신학, 비교신학의 토대를 만들었다. 특히 변 목사는 불교 교리에서 종교적 지혜를 탐구하고 사회적 자비를 배웠다. 현 개신교와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최병헌·변선환 목사와 같은 마음으로 선교를 하는 두 사람이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종교 말고 사람 중시한 사역

정 박사 발제가 끝나고, 가톨릭 수녀와 신부가 마이크를 잡았다. 방글라데시에서 5년간 사역했던 김면정 수녀, 한국에서 이주 노동자 사역을 하는 조해인 신부다. 이들은 앞서 정 박사가 소개한 개신교 두 목사와 비슷한 마인드로 선교 활동을 했다.

김면정 수녀는 2008년 무슬림 국가 방글라데시로 떠났다. 방글라데시는 여성 인권이 낮은 나라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여성을 보기 드물다. 교육을 잘 받지 못하고, 집이 가난하면 입을 덜기 위해 10대 중반에 시집을 보낸다.

사람대접 못 받는 여성 중 더 취약한 계층도 있다. 장애 여성이다. 보통 집에 갇혀 남편에게 육체적·정신적 학대를 겪는다. 김 수녀 눈에 이들이 포착됐다. 그는 집 곳곳을 다니며 직업 센터에 부인을 보내 달라고 남편들을 설득했다.

많지 않지만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이 센터를 찾았다. 이슬람·힌두교·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와 종족의 사람들이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문화가 다르다 보니 갈등도 발생했다. 점심때마다 소고기를 먹지 않는 힌두인이 소고기를 먹는 무슬림을 불편하게 여기고 김 수녀에게 항의했다. 김면정 수녀는 서로를 위해 점심때는 소고기를 먹지 말자고 제안했다. 그를 신뢰하는 여성들이 제의를 받아들였다.

김 수녀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믿는 신만 우월하다 주장하지 않았다. 인간 대 인간으로 삶 속으로 들어가려 노력했다. 함께 춤을 추고 밥상을 나누고 파티를 열었다. 기술을 가르쳐 주고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김면정 수녀는 사역지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을 언급했다. 그는 자신과 일하던 무슬림이 자신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달했을 때라고 회상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내 일을 도와주던 무슬림 청년의 고백을 듣고 가장 기뻤다. 나와 함께 일하면서 자신의 신앙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알라가 먼 곳에 있지 않고 이곳에서 함께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때 이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 기뻤다."

조해인 신부는 국내에서 이주 노동자를 만나고 있다. 흔히 선교라 하면 해외로 나가는 것만 생각하지만, 국내에도 선교지가 있다. 조 신부는 주로 필리핀·베트남·나이지리아 사람과 만난다. 월급을 받지 못하거나 부당 해고를 당하는 등 노동문제를 겪으면 나서서 도와준다.

이주 노동자와 만나며 조 신부는 여러 유익을 경험했다. 그중 가장 큰 유익은 자기 성찰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있던 선입견과 이기심을 마주했다. "이 사람들은 이 정도까지만 할 수 있을 거야"라고 그들을 틀에 가둔, 편견에 둘러싼 자신을 보게 됐다. 외부에서는 조해인 신부가 타인을 돕는 것처럼 보였지만, 스스로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국내에서 이주 노동자, 가난한 이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영적 도전이 된다. 나 자신이 어떤 사랑을 베푸는지 점검해 보라는 하느님의 초대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인종주의와 편견에서 해방되라고 요구하는 복음의 명령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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