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자본주의의 발흥> / R. H. 토니 지음 / 고세훈 옮김 / 한길사 펴냄 / 456쪽 / 2만 6,000원

리처드 토니(1880~1962)는 영국의 저명한 경제사학자요, 사회비평가요, 기독교 사회주의자(Christian Socialist)이다. 그는 행동하는 지성으로서 영국 정치, 경제,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무엇보다 영국 노동당(Labour Party) 창당 발기인이요 삼선의 노동당 국회의원이었다. 그는 '크리스천'이었고 '사회주의자'였다.

그가 현대 영국의 정치·경제적 모순에 가하는 비평의 토대에는 항상 기독교 정신(Religion)이 있었다. 특별히 그의 '기독교 사회주의'는 칼뱅의 노선에 서 있다고 말한다. 토니의 이 책은 기독교 사회주의 이론적 토대로 가장 잘 알려졌다. 그는 이 책에서, 중세 이후 유럽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기독교 신앙의 형태에 따라 기원하고 발전하고 우상화하는지 추적한다.

중세 후기 대두된 농업의 몰락과 상공업의 발달은 사회질서의 현상 유지(satus quo)와 평화로운 경제활동의 유지를 추구하던 전통적 교회 역할에 변화를 요구하였다. 상업의 발달과 이에 맞는 교회 역할을 거부하던 가톨릭과 달리, 개신교 신앙은 적극적으로 변화된 환경에 대응했다.

16세기 종교개혁은 새로운 경제체제를 능동적으로 수용하는 사상적 기반이었고, 이 때문에 "종교개혁은 전통적인 기독교 사회윤리를 뒤엎는 상업주의 정신의 승리"(48쪽)로 비춰지기도 한다. 특별히, 토니는 책의 곳곳에서 '대금업'(Usury)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 변화를 추적함으로써, 구교와 종교개혁의 차이를 부각하고, 무엇보다 칼뱅과 칼뱅주의가 자본주의에 끼친 지대한 영향을 검토한다.

중세로부터 종교개혁 태동기까지, '대금업'은 가장 큰 죄악 중 하나로 취급되었다. 일곱 가지 중죄 중 하나인 '탐욕(Avarice)'의 구체적인 행태가 바로 이 대금업이었다. 교회 지도자들은 대금업을 '스스로 일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이득을 챙기는 악랄한 죄'로 규정했다. 때문에 가난한 자들에게 돈을 빌려줄 수는 있어도 원금 이외의 이윤을 챙기는 것을 엄격히 금했다.

심지어 어느 누가 '대금업'으로 이윤을 챙기다가 발각이 되면 간음의 죄와 방불한 것으로 다스렸다. 수찬 정지는 물론 공동체에서 출교하고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대금업으로 챙긴 이윤과 벌금을 다 갚기 전까지는 회개의 기회도 없었고, 유언을 집행할 수 없었으며, 죽어서 교회 묘지에 묻힐 수도 없었다.

그런데 칼뱅은 루터나 다른 1세대 종교개혁가들과는 다르게, 상공업과 이윤 체계에 대한 획기적인 생각을 가졌다.

"칼뱅은, 비록 엄격하기는 하였지만, 상업 중심의 문명의 도래를 받아들였고 또한 미래를 주도할 상인계급에게 적당한 신조를 공급해 주었다." (54쪽)

칼뱅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이윤은 정당한 것이다. 다만, 그 이윤이 공적으로 적절한 최대치를 넘지 않는다면 말이다."(59쪽) 토니가 볼 때, 칼뱅의 상업 전반에 대한 전향적 자세는 바로 이 '대금업'의 이윤에 대한 그의 획기적인 발상에서 잘 드러난다. "칼뱅이 한 일은 대금업의 경제 윤리를 다룸에 있어서, 근본적인 토론의 방향(plane)을 바꾼 것이었다."(60쪽) 칼뱅의 관점은 이후 따르는 칼뱅주의자들―청교도들―의 경제 관념에 변곡점이 되었다.

이 부분에서, 토니는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막스 베버(M. Weber)가 통찰력 있게 지적했던 칼뱅주의 정신―칼뱅과 칼뱅주의자들이 자본에 대해 가졌던 긍정적 자세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소명'으로 알고 열심히 일하여 이윤을 남기려는 청교도들의 자세가 자본주의에 미친 정신적 영향―에 대해 어느 정도 수긍하면서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a. 베버가 지적한 대로, 칼뱅과 칼뱅주의자들의 자본에 대한 전향적인 자세는 주지의 사실이다.

b. 칼뱅과 칼뱅주의자들을 자본주의 정신의 효시로 보는 견해는 일방적인 견해이며 역사적으로 옳지 않다. 칼뱅주의가 들어가지 못했던 15세기 베니스, 플로렌스, 혹은 남부 독일이나 플랜더스 등지에서 일어났던 자본주의의 발흥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게다가 그곳들은 다 가톨릭 지역이었다.

c. 자본주의가 발달한 16세기 영국이나 네덜란드도 칼뱅주의의 영향이었다기보다는 상업이 중흥하는 시기였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d. 어느 한 종교적 사조(칼뱅주의)가 자본주의를 부상시켰다기보다는, 상업 중흥의 시대에 종교적 사조가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

e. 베버는 자본주의 발달에 좀 더 중요하게 작용한 시대 사조―르네상스나 마키아벨리적 정치―나 개인들의 경제적 관심사―돈과 이윤, 그리고 부에 대한 관심―등에 좀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다. 이런 측면은 무시해 버리고 말았다.

f. 베버는 칼뱅주의를 너무 단순하게 이해했다. 17세기 청교도들과 칼뱅을 동일시한 것도 문제다. 또한 청교도들 모두가 동일한 경제적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환원한 것도 문제다. 어떤 청교도들은 중세적일 만큼 엄격하고 청빈했고, 어떤 청교도들은 부의 문제에 있어서 허용적이었다. 특히, 칼뱅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장로교도들, 회중주의자들, 그리고 자유주의자들 사이에 차이가 상당했음에 유의해야 한다.

토니가 지적하는 칼뱅주의의 문제는, 칼뱅과 칼뱅주의의 신학의 문제라기보다는 후기 청교도에게서 나타나기 시작한 부의 축적과 이윤 체계의 인정이라 할 것이다.

"'사업은 사업일 뿐이다'라는 생각과 상업 활동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는 그 자체의 법칙을 가지고 움직인다는 생각이 모든 이들의 생각을 사로잡았다. 가톨릭 신자들뿐 아니라 청교도들도 아무 생각 없이 이러한 모든 이윤 활동들을 종교의 범주 안에 포함시키게 되었다. 가톨릭 신자들 뿐 아니라 청교도들까지 이러한 경제활동을 기독교적 관행으로 바꾸는 거대한 작업을 시도하게 되었다." (114쪽)

청교도주의는 그런 면에서 영국의 정치혁명과 상업주의로의 변화의 첨병이 되었다.

결국, 토니는 17세기 칼뱅주의자들보다는 칼뱅 자신에게서 기독교 사회주의적 희망을 본다. 이윤 추구 자체를 금하지 않으면서도, 이윤 추구의 최대치를 상정하고, 비록 그 최대치가 정해져 있더라도, 가난한 자들에게는 무상으로 돈을 빌려주어야 하고, 정당하지 않은 이윤 추구에 대한 매우 엄격한 징벌과 훈육(discipline)을 시행한 제네바의 모범이 그것이다.

토니에 의하면, 교회의 문제는 찬란한 신학적 유산이나 엄격한 도덕적 규율에 있는 것이 아니다. 상업주의와 탐욕, 부의 우상에게 독자적 경제 체계라는 이름의 자유로를 터 주고 그것을 기독교적이라 이름 붙여 준 데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이해하기 너무 어려웠다. 1920년대 영어인데다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쓴 듯한 만연체 문장들은 간명함을 추구하는 현대식 글쓰기와 많이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베버의 그 유명한 칼뱅주의와 자본주의 관계가 가지는 일방성에 적절한 비판을 가한다.

전통적인 교회와 특히 칼뱅주의가 가졌던 '기독교 사회주의'―이윤 자체보다 인간성 존중, 탐욕의 제재와 훈육, 그리고 엄격한 시행―의 요소를 역사적으로 규명해 내었고, 개신교 윤리가 자본주의에 대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비판적 특징들을 잘 짚어 내었다고 생각한다.

후기 상업주의로 넘어가는 현대의 개신교회들―특히 칼뱅주의 교회들―이 이윤 추구와 부의 우상을 칼뱅처럼 제어하고 다스리기보다, 오히려 후기 청교도들에게서 보였던 것처럼 강화하고 추종하는 현실은 토니의 '기독교사회주의'에 우리가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가 된다. 그뿐 아니라 그것이 이 시대의 칼뱅주의자들이 더욱 칼뱅을 따라 시행해야 하는 경제 윤리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신동수 /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시카고 한미장로교회 영어권 목사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