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팽목항에 미수습자 가족들이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올해 안에는 인양할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달래."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미수습자 조은화 양 아버지가 담배를 뻑뻑 피우며 말했다. 가을 햇살이 반사되어 진도 바다는 작은 빛들로 반짝거렸다. 아버지는 눈이 부신 듯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 없이 연기를 뱉었다. "뭐 어떻게 하겠어. 믿고 기다려야지."

11월 6일 일요일. 이날 점심께 김영석 해수부장관이 팽목항에 다녀갔다. 그는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올해 안 인양을 약속했다. 해수부는 올해만 해도 7월까지, 9월까지 인양을 완료하겠다고 했다. 아직 세월호는 바닷속에 있다.

"올해 안에 가능은 한 거예요?"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맞아 들어가면…."

나의 물음에 은화 엄마는 대답을 흐렸다. 세월호가 있는 맹골수도는 물살이 거세다. 한 달에 두 번, 유속이 느려지는 '소조기'가 있다. 사실상 소조기에만 다이버들이 물속에 들어가 작업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달을 일한다 해도 현실적으로는 며칠밖에 작업할 수 없는 환경이다. 소조기에 날씨가 좋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또 보름을 보내야 한다.

은화 부모님과 다윤이 부모님, 권재근 씨의 형이자 권혁규 어린이의 큰아버지 권오복 씨가 팽목항에 남아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믿을 수밖에 없는 미수습자 가족들

해수부는 11월 1일 인양 방식 변경을 발표했다. 당초 선미 쪽에 넣을 리프팅빔(인양 받침대) 8개는 해저면 굴착 방식으로 하나씩 끼워 넣을 계획이었는데, 이를 변경했다. 리프팅빔을 2개 더 추가했고, 굴착이 어느 정도 진행된 3개(20·21·28번)는 기존 계획대로 하되 나머지 7개는 선미를 1.5m 정도 들어 올려 한 번에 집어넣기로 했다.

416연대는 해수부의 인양 방식 변경을 비판하는 논평을 냈다. 그도 그럴 것이, 해수부는 올해 7월까지, 9월까지 인양하겠다고 발표해 놓고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416연대는 "뒤늦은 방식 변경은 정부가 세월호 인양에 있어 제대로 된 검토 없이 잘못된 방식을 고집해 왔음을 시인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또 "세월호 인양 작업에 있어 끝없는 무능함을 보여 준 담당자들을 경질하고, 끝까지 밝히지 않고 있는 세월호 참사 7시간과 더불어 세월호 인양 과정과 자료 역시 낱낱이 공개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해수부는 11월 1일 인양 방식을 변경하겠다고 발표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그러나 어느 누구보다 인양을 기다리는 미수습자 가족들은 시원하게 비판 한번 할 수 없다. 왈가왈부해도 인양은 정부가 한다. 그래서 정부를 믿을 수밖에 없다. 2년 반을 기다린 상황. 욕을 한 바가지 해도 모자랄 상황이지만 속으로 삭인다. 배가 올라오고, 가족을 찾을 때까지는 참아야 한다. 속이 까맣다 못해 하얗게 타 버렸다.

"현장에서 28번 빔이 성공했네요. 선미 공정이 보완되고 바다가 잔잔해서… 온전하게 인양될 수 있도록 계신 그 자리 기도해 주셔요…."

최순실 씨 구속영장 심사가 진행되던 11월 3일, 세월호 선미에 28번 리프팅빔을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 소식은 미수습자 조은화 양 엄마 이금희 씨 페이스북을 통해 알려졌다. 하지만 언론 기사에서는 이 같은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삼킨다. 세월호 관련 내용도 좀처럼 이슈가 되지 못한다. 그나마 현 정국에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한 가지 이슈는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무얼 했는지는 밝혀져야 한다. 미수습자 가족들도 그걸 원하지만, 지금은 큰소리를 낼 수 없다.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인양이 먼저다. 인양하지 못한 해수부의 무능을 탓하며 '경질'을 주장할 수도 없다. 최순실 사태로 내각이 바뀌어 인양 관련 인사들이 바뀌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지금 와서 바꾸면 또 누구를 데려온단 말인가.

"하나님은 우리 편이라는 거"

11월 6일 팽목항에는 마침 홍요한 목사(신전중앙교회)와 홍 목사의 부모님이 찾아왔다. 은화 엄마 이금희 씨, 다윤 엄마 박은미 씨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은화 엄마와 다윤 엄마는 세월호 참사 전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집사였다. 참사 이후로는 교회에 가지 못한다. 그렇게 2년 반이 지났다. 기성 교회에 가면 목사 설교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사람들 시선에 힘겹다. 하지만 엄마들은 한편으로 교회가 그립다. 뭔가 따져 묻고 싶고 때로는 조용히 기도하고 싶다.

11월 6일, 다윤 엄마 은화 엄마가 홍요한 목사, 그의 부모님과 대화하는 모습. 뉴스앤조이 구권효

대화 중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신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다윤 엄마가 말했다. "우리가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지는 않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어요. 하나님은 우리 편이라는 거. 하나님은 고통받고 소외된 사람들 편이라는 거…."

엄마들은 홍요한 목사와 그 부모님들과 대화하며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찾았다. 참된 신앙이 무엇이고 기독교인이라면 어때야 하는지 이야기했다. 대화를 마치며 홍 목사가 기도했다. 세월호가 온전하게 인양되어 빨리 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엄마들은 눈시울을 적셨다.

백발의 홍 목사 아버지가 말했다. "사랑은 오래 참고, 마지막에 가서는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라고 했어. 그러니 어떻게든 견뎌. 그 다음에 무엇이 있는지는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그게 사랑이라고 했으니 견디자구." 그들 역시 자식을 잃어 봤다. 노인들은 사랑은 견디는 것이라는 말로 엄마들을 위로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기다리고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사람들과 만나고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것이 미수습자 가족들에게는 예배다. 원망하고 눈물짓고 호소하고 그렇게 하루를 견디는 것. 이건 기독교인들만이 할 수 있는 작은 위로다. 엄마들은 팽목항이 너무 멀다고 미안해하면서도, 꼭 한 번씩 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오늘도 휑한 팽목항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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