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뉴스앤조이 = 유영 기자] 지난 9월, 어느 주일 저녁에 있었던 일이다. 교인들과 5시에 모여 예배를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전화가 왔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였다. 검사가 물었다.

"(한국에) 못 들어오시지요?"

"외교부에서 여권 반납 제재를 했잖습니까. 제가 들어가서 조사를 받으면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게 조치해 줄 수 있나요? 제가 여기 생업이 있는 사람이라."

"…… 들어오는 건 '여행증명서' 받아서 오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지 못합니다. 그럼 영사관에 가셔서 화상 통화로 조사받으시는 건 어떨까요?"

"그래요?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새벽 5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스쿨버스 운행을 합니다. 시급으로 일한 만큼 급여를 받아서, 함부로 빠질 수 없으니 토요일 저녁에 화상으로 만나시지요. 제가 있는 곳에서 영사관까지 자동차로 4시간 정도 걸립니다."

"미국 동부에서 토요일 저녁이면 이곳은 일요일 아침인데요. 그건 어렵겠습니다. 일요일 저녁에는 어떤가요?"

"일요일에는 제가 예배를 준비해야 해서 시간이 안 됩니다."

"그럼 조사 없이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럼 이만."

이 통화를 마치고 얼마 후 검찰은 통화 당사자를 공직선거법(국회 선거운동 방법 위반 및 탈법 방법 문서 배부 등) 위반 혐의로 기소한다. 독립운동가이자 민주화의 주역인 고 장준하 선생의 3남 장호준 목사가 그 주인공이다.

▲ 새벽 5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스쿨버스를 운전하는 것이 장호준 목사의 일이다.

장 목사는 지난해 12월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재외 동포들의 뜻을 담아 해외 한인 신문에 광고를 게재한다. 이를 시작으로 총선이 있었던 지난 4월에는 '불의한 정권을 투표로 심판합시다'라는 문구가 담긴 광고를 신문 광고로 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를 특정 정당을 지칭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검찰에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고발과 동시에 여권 반납과 2021년까지 여권 발급 정지 제재를 했다.

이를 두고 장호준 목사는 웃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선관위와 검찰이 '새누리당'을 불의한 정권이라고 인정한 꼴이다. 유추가 가능하다고 했으니 말이다. 선관위에서 여권 제재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렇게 이야기했다. 지금 나라 꼴이 이런데, 내가 어디 놀러 갈 일이 있겠냐고. 그러면서 고발까지 한 건데, 어쩌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검찰이 소환한 날은 하필 장준하 선생 기일이었다. 장 목사는 검찰 소환에 답신을 보내 '41년 전, 내 아버지께서 박정희 정권에 의문사당한 대한민국 역사의 고난을 품고 있는 날인지라 반드시 출석하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얄궂은 운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대를 이른 불의한 정권과의 투쟁, 핍박을 두고 한 말이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장 목사를 검찰에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동시에 여권 반납과 2021년까지 여권 발급 정지 제재를 했다. ⓒ<미주뉴스앤조이> 경소영

하지만 장호준 목사는 그저 마음에 있는 큰 부채를 아주 조금 덜어 냈을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1999년 미국 회중 교회인 미국연합그리스도의교회(UCC) 초청으로 코네티컷에서 20년 가까이 지내면서, 국민에게 늘 빚진 마음이 컸다.

"늘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광화문과 팽목항, 강정마을에 한 번 가보지 못했다. 여기서 내 일상을 살면서 해야 할 이야기만 했다. 뜨거운 아스팔트에 쭈그려 앉아 함께한 적이 없어 늘 죄지은 마음이다. 그런데 검찰이 기소해 주니 아주 조금 빚을 갚은 심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검찰에 고맙다."

검찰이 유추한 '불의한 정권'이 결국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왔다. 검찰은 수사 대상을 축소하고, 증거인멸할 시간을 주고 있다는 의혹을 계속 받고 있다. 수사받아야 할 '불의한' 인사에게 늘 칼끝이 무딘 것 아니냐는 비판은 불의를 지적한 사람에게 날카롭게 다가온다.

이러한 한국의 답답한 상황을 장호준 목사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를 만나 '무당이 국정을 운영한 상황'이라고 평가받는 시국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검찰이 기소한 재판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부가 재외 국민 투표 억제에 그 힘을 사용하고 있으니 그게 마음이 아프다. 불의한 정권은 외국에 있는 동포들을 억누르고 입을 막고 싶어 한다. 실제 나를 기소해서 재외국민에게 투표를 억압하는 목적을 이루려는 것이다. 지금 정부가 국민을 상대하는 방법이다.

여당은 재외 국민 투표가 야당에 유리한 게 두렵다. 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 지지율이 고작 23% 나왔다. 걱정이 클 것이다. 어떻게든 재외 국민 선거 열기를 식히려고 한다. 고소·고발할 수 있으니 너무 열심히 정치 참여하지 마. 이런 메시지를 전하려고 기소했다고 생각한다.

▲ 장 목사는 국민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광화문과 팽목항, 강정마을에 한 번 가 보지 못해서 늘 죄지은 마음이다. 그런데 검찰이 기소해 주니 아주 조금 빚을 갚은 심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검찰에 고맙다." ⓒ<미주뉴스앤조이> 경소영

- 박근혜 대통령의 본모습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배신감을 느끼는 이들도 많다고 하는데,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우리는 그동안 새누리당이 내세운 정치인들의 본모습을 많이 보았다. 특히 이명박과 박근혜는 여러 잘못된 모습을 보였는데도 지지를 받았다. 이런 일이 일어난 배경이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잘 아는 것처럼 이명박은 물신주의가 그 배경이다. 사기꾼이라는 것 다 알면서도 찍었다. 바로 돈 문제에 눈이 어두웠다. 박정희 때부터 이어진 고질적인 문제, 대한민국 정신세계에 박힌 '있는 사람이 장땡'이 작동했다.

조금이라도 힘이 있거나 돈이 있는 사람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들어오면서 자신들이 힘과 돈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나누어야 하니까. 그런 상황이 심화하는 것 같으니 이명박을 딱 찍는 것이다. 천민자본주의 방식으로 사고한 결과다. 돈 더 준다고 하니, 안 찍을 사람이 누가 있나.

그런데 박근혜는 이명박과 전혀 다르다. 성격과 배경이 모두 다르다. 아마 박근혜를 찍은 사람들 대부분은 '파블로프의 개'로 알려진 조건반사 실험과 같다. 종을 치고 밥을 주면, 나중에 종만 쳐도 개가 침을 흘리는 것과 유사한 반응이다. 바로 '박정희의 신화'다.

박근혜 지지자들은 '우리를 잘 먹고 잘살게 해 줄 거야'라는 것과 상관이 없다. '박근혜는 바로 박정희다'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박근혜가 당선될 때 110만 표가량 차이가 났다. 이를 두고 50대의 반란이라는 말이 많았다. 10년 전에는 노무현을 찍었던 50대가 박근혜에게 투표했다는 것이다.

▲ 박근혜는 끊임없이 박정희를 투사한다.

그건 잘못된 표현이다. 노무현이 당선될 때, 투표하지 않았던 이들이 박근혜를 찍은 것이다. 노무현과 이회창이 붙었다. 이들에게는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상관이 없다. 그야말로 종소리가 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가 나오니까 종이 울렸다. 종소리가 나니, 지난 정부가 실정을 했든, 역사에 반하는 선택이든 상관이 없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58년 개띠로 대표되는 이들은 그야말로 박정희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 시대 언저리에 태어났다. 박정희가 죽을 때까지 이들에게 대통령은 그저 '박정희' 외에는 없었다. 인격 형성 기간이 박정희의 18년이었다.

당시 이러한 상황을 알고 투쟁한 건 대도시와 대학가로 대표된다. 그런데 대학 진학률이 25%도 안 되던 시기였다. 대다수가 대학에 가지 못했다. 대학에 못 간 정도가 아니라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지방 도시와 농촌에서 일하면서 지냈다. 박정희가 죽을 때까지 박정희 찬양 외에 배울 수 있는 게 없었다.

결국, 박근혜를 지지한 뿌리는 정신세계 지배에 있다. 그건 수십 년 전, 교육의 결과다. 박근혜도 박정희에게 교육된 상태로 살아왔다. 박근혜 자체도 정신세계를 지배당한 상태에서 대통령이 된 것이다. 거기에 고착된 사람이다. 이 불이 꺼지지 않도록 부채질한 게 '최태민과 최순실'로 우리에게 알려진 최 씨 일가라고 볼 수 있다.

▲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근혜는 박정희라는 신화가 있다. 그리고 박근혜도 이러한 정신세계가 형성되어 있다. 이를 부추기고, 끊임없이 부채질하는 사람이 최 씨 일가다.

- 박근혜의 배경을 이제서야 많은 시민이 알았다. 이를 보며 많은 이가 유신 시대로 후퇴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시민사회가 이전처럼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어떻게 보는가.

우선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시대가 유신 시대로 돌아갔다는 표현은 맞는 말이다. 민간 사찰은 물론 공안 정국이라는 표현이 다 1970년대에 사용되던 것 아닌가. 하지만 시민사회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표현은 동의하지 않는다. 역사는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예를 들어 이번 사태를 드러낸 이대 학생들의 투쟁만 봐도 시대가 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대 학생들도 당장 자기에게 닥친 일이기에 모두가 들고일어났다. 여기에 대다수 학생과 교수들이 동조하고 나섰다. 이전에 김활란 문제를 두고도 몇몇 학생들이 시위했다. 그때는 이 정도의 동조가 없었다.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니 나설 일이 없었던 것이다.

거기에 투쟁하는 방식도 변했다. 오늘날 대학생들이 투쟁하는 방식을 보면, 우리 세대가 대학 다니던 때랑 확실히 달라졌다. 우리가 대학 다닐 때는 맨날 최루탄 맞으며 싸웠다. 그때는 그 방식으로 투쟁했다. 그런데 지금의 학생들은 그들만이 싸우는 방식이 있다. 그러니까 이전 세대는 지금의 학생들에게 뭐라고 하면 안 된다. 싸우는 목적이 같다면 역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지금 젊은 세대가 싸우는 방법은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 현재 젊은 세대의 투쟁 문화는 이전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번에 고 백남기 농민이 사망과 경찰과 시민의 대응을 보면서도 많은 변화를 느낀다. 경찰은 변하지 않았다. 시민이 변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그 당시 한국 대형 교회는 어느 하나 고개 한 번,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걸리면 죽는다', 이 생각만 했다. 그걸 본 김수환 추기경이 명동성당으로 오라고 권유했다. 결국 거기서 장례를 치렀다.

실제 백남기 농민 사망 후 일어난 사건과 비교되는 건 장지로 갈 때 있었다. 서대문 형무소 앞에 내려서 추모만이라도 하고 가자고 했는데, 경찰들이 나와서 버스 문을 열지 못하게 막았다. 난리도 아니었다. 행진하자고 한 것도 아닌데, 장지로 가던 버스 다섯 대를 모두 막아섰다. 근처 도로에 지나던 사람들, 그냥 힐끔 보고 지나갔다. 우리를 둘러싼 경찰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 백남기 농민의 시신을 지키는 시민들과 대치한 경찰. 이들을 또 시민들이 둘러쌌다. 역사는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 백남기 농민 돌아가셨을 때를 생각해 보라. 시신을 탈취할 것을 염려한 시민들이 백남기 농민과 유가족을 둘러쌌다. 그걸 경찰이 둘러싸고, 부검한다고 난리를 쳤다. 그런데 경찰 밖을 시민이 다시 둘러쌌다. 엄청난 변화라고 생각한다. 

시민들이 연대하고 함께한다. 그 시민들은 그러한 역량으로 싸우고 있다. 화염병 던지지 않는다고 민주주의가 후퇴한 건 아니다. 다른 방법으로 다른 역량으로 성장한 시민이 불의한 권력과 싸우고 있다.

▲ 명동성당에서 진행한 고 장준하 선생의 장례미사.

-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를 짝사랑한 한국교회와 한인 교회는 특별한 반성이 없어 보인다.

최순실 최태민 사건이 있어도 대형 교회들이 아무 소리 안 하는 건, 자신도 다 같은 행동을 하는 탓이다. 스스로 무당질하고 있으니 무슨 말을 하겠나. 거기에 현재 기독교, 한국교회가 기득권이니 놓치기 싫은 것이다.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거기에 목사들이 실제로 공부한 대로 살지 않는 탓이 크다고 본다. 이전에 하버드대와 예일대에서 신학 공부한 사람들, 한국 돌아가서 다 똑같은 짓하고 먹고살았다. 배운 게 다 소용없다. 졸업장만 있으면 되는 구조에서 공부하고 목회한다. 자리를 지키고 유지하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이 정부를 두고 무슨 이야기를 하겠는가.

그러나 아직 싸우는 교회는 있다. 다만 숫자가 적을 뿐이다. 예전에는 기장이 앞장섰는데, 지금은 기존 교단과 크게 다르지 않은 행보를 보인다. 지금은 각자 목소리 내는 교회만 있는 것 같다.

▲ 장호준 목사는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이루어 가도록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고, 자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미주뉴스앤조이> 경소영

- 앞으로도 계속 불의한 정권에 목소리를 낼 것인가.

목회자의 정치 참여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정치는 바르게 다스리는 것이다. 사회 전 영역을 바르게 다스리도록 바른 방향성을 제시하는 사회적 목회가 필요하다.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 이뤄 가기 위해, 주기도처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뤄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해야 한다.

맨날 무릎 꿇고 앉아서 기도만 하라고 가르치는 이들이 많다. 그럼 예수님은 왜 5,000명 밥 먹였을까. 병은 왜 고쳤을까. 기도만 하지 왜 그랬을까. 기도만 하지 왜 십자가에는 달렸겠나.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이루어 가도록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

자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행동할 수 있도록 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 평등하다.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우리 위에 설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의를 위해 움직여야 한다. 하나님의 공의라고 하지 않나.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모든 사람이 정의롭고 자유롭게 살 수 있으며, 어떤 무엇으로도 차별받지 않는 것을 하나님나라라고 생각한다. 그 일에 목사가 앞장서야 한다. 무슨 행동이라도 해야 한다. 그게 정치다.

▲ 장 목사는 "최순실 최태민 사건이 있어도 대형 교회들이 아무 소리 안 하는 건, 자신도 다 같은 행동을 하는 탓이다. 스스로 무당질 하고 있으니 무슨 말을 하겠나. 거기에 현재 기독교, 한국교회가 기득권이니 놓치기 싫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주뉴스앤조이> 경소영

예수께서 영혼 구원만을 위해 온 것이 아니다. 내가 믿고, 내가 바라보는 예수는 이 땅 위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려고, 자기 생명을 버린 행동을 한 사람이다. 그걸 믿는 목사라면, 하나님께 서원한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믿는다면, 정치는 나와 상관없다고 말하지 못한다. 목사가 먼저 나서야 한다. 먼저 앞에 나서고, 먼저 총을 맞아야 한다. 불의 앞에서 굽히지 않아야 한다.

아버지께서 "불의한 정권에게 억압받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셨다. 예언자들이 불의한 왕 앞에서 억압받지 않으면 거짓 예언자다. 계속 이를 위해 살아갈 것이다. 

유영 / <미주뉴스앤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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