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교회는 인수분해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뉴스앤조이> '해체의 교회'를 연재하는 주원규 목사(동서말씀교회)가 지난 8월 인터뷰 자리에서 말했다. '해체'라는 키워드를 중요시하는 줄은 알았지만 '인수분해'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순간 멈칫했다. 그가 지칭하는 '대형 교회'는 말 그대로 규모가 큰 교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형 교회 정신을 지향하는 개척 교회도 분해 대상이다. 그는 한국교회에 '과정으로서의 해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주원규 목사 칼럼은 거침이 없다. '교회 오적(五賊)', 계급의 교회', '세습의 교회', '폭력의 교회', '차별의 교회', '눈먼 자들의 교회'…. 칼럼 제목이 그의 성향과 지향점을 드러낸다. 교회 전체를 하나로 싸잡아 욕하는 것 같이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강력하게 교회를 비판하며 '해체론'을 꺼내드는 것은, 그래야 교회가 재주체화 과정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까닭이다. 칼럼에 드러난 교회 현상은 일종의 '해체' 징후들이다.

'비선 실세' 최순실로 시끄럽던 10월 31일, 성공회대 신학전문대학원 정례 모임에서 '한국교회 해체'를 놓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주원규 목사가 이제껏 <뉴스앤조이>에 연재했던 칼럼을 정리해 발표하고, 교회 해체의 구체화를 위한 밑그림을 내놓았다. 이후 날카로운 토론이 진행됐다. 자리에 모인 성공회대 교수와 학생들은 최순실 정국이 남 일 같지 않은 한국교회의 방향성을 함께 숙고했다.

▲ 성공회대 한 세미나실에 열댓 명 남짓 되는 교수와 학생들이 모였다. ⓒ뉴스앤조이 강동석

주 목사는 시국을 이야기하면서 발표를 시작했다. 최순실 씨를 둘러싼 사건들을 놓고, 터질 게 터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친일과 독재로 명맥을 이어 왔던 전체주의적 국가 체제의 끝으로 인식된다고 했다. 동시에 친일과 독재의 동조자였던 한국교회도 명운을 다한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같은 현실 인식에 기초해 교회 해체의 당위성, 해체의 신학적 의미와 필요성을 짚어 냈다.

그는 신학적 의미에서 신과의 소통 불화가 한국교회 부패와 타락을 불러왔다고 봤다. 물신주의, 천민자본주의, 탈정치화의 가속 등에서 볼 수 있는 생각 부재 현상이 소통 불화의 원인이라는 것. 이 불화의 상태를 경고하고 해체해 나가는 과정에서 인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욕망의 굿판' 벌이는 한국교회

한국교회 부패와 타락의 현상, 해체의 징후로는 무엇이 있을까. 그가 쓴 칼럼 '교회 오적(五賊)'이 이를 잘 끄집어내고 있다. 주 목사는 칼럼에서, 교회 내에 있는 다섯 가지 문제점을 '규모의 괴물', '표절의 왕국', '해석의 부재', '선민의식의 창궐', '상실의 시대'라고 이름 붙였다.

먼저 규모를 키우는 게 대세가 되어 버린 한국교회에 대한 뼈아픈 성찰이 있었다. 이 '규모의 논리'는 공격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 단단해진다고 했다. 그는 교회를 '표절의 왕국'이라고 명명했다. 단순히 설교 뱅크를 베끼는 것을 넘어, 체제 결속과 교인 관리 등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에만 치중하는 목회 현실까지 표절 대상이다.

'해석의 부재'는 사회적 맥락을 빼놓고 '무조건 믿으라'는 프로파간다(propaganda)만 내세우면서 자기 교회의 체제 결속만을 목표로 하는 교회 현실을 지적하는 말이다. 이는 '그래도 구원은 받는다'는, 근거 없는 '선민의식 창궐'과 교회가 교회다움을 잃어버린 '상실'에 대한 방관으로 이어진다.

▲ <뉴스앤조이>에서 '해체의 교회'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주원규 목사. 발표하는 모습. ⓒ뉴스앤조이 강동석

주 목사는 이어서 '계급', '세습', '폭력', '차별', '저항'을 주요 키워드로 꺼냈다. 계급 문제 같은 경우, 유교적 가부장제가 한국교회 계급화의 첨병이라고 지적했다. 목회자와 교인 간 수직적 관계가 그 단적인 예라고 했다. 목회자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교인들은 비판 의식을 가질 수 없도록 체질화된다. 이것이 교회 재정의 불투명성과 주먹구구식 운용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세습도 비슷한 지점에서 생기는 문제의식이다. 목회자는 천국 티켓을 미끼로 교인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하고, 현세의 축복과 마음의 평화 등을 메시지로 전하며 '욕망의 굿판'을 반복한다. 여기서 교회는 조직 논리로 운영되고 목회자는 세습을 정당화한다. 이렇게 집단주의화된 교회는 낮은 자리에 있는 이들을 이해하는 바닥 정서가 아닌 '폭력'을 드러내는 쪽으로 나아간다.

주 목사가 중점적으로 다룬 교회 내 차별은 성차별이다. 교회가 성차별에 대해 근본적인 침묵을 강조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봤다. 목회자와 성도 간 위계에서 발생한 성추행, 성폭력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된 편이지만, 성서 속 '성차별'의 맥락을 질서 유지로 보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 지적했다. 이런 습속이 해체의 징후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저항하지 않는 '눈먼 자들의 교회'

그는 교회의 '저항하지 않음'을 또 하나의 해체 징후로 보았다. 최근 유기성 목사의 영성 일기 논쟁을 예로 들며 설명을 이어 갔다.

"오늘의 교회는 저항보다는 무기력의 심화를 찬양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유기성 목사 같은 경우, 영성 일기를 주창하며 내적 세계 추구를 심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거기에 절반의 정답과 절반의 오답이 있다. 자기에 대한 성찰을 독려하는 측면에서는 일변 그 의의가 있지만, 절반의 오답이 그것을 망치고 있다.

내면의 성찰이라고 하는데, 인간은 혼자 섬에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다. 사회적 관계망에서 문제의식을 가져야 된다. 그 지점에서 내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그런데 교회는 현대사회 병리 현상을 보고 오히려 깊은 환멸을 느끼고 한 걸음 물러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며 찬양한다.

세상은 '이러이러하니 신에게로 돌아가자’고 하는데, 나는 지금 명운을 다한 교회 뼈대에서 찾을 수 있는 신은 없다고 본다. 갑을 사회가 잉태한 수습이 불가능한 모순의 환부 앞에서 마라나타(Maranatha: 주님, 오시옵소서)만 외치고 있다. 이 수동성이 각자도생을 강조해 성공에 집착하게 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한국의 경제성장 속도에 비례해 놀랄 정도로 양적 성장을 이뤘다. 주 목사는 교회가 양적 성장에 따라 강고한 종교 세력으로 자리 잡으면서 독재의 망령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독재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독재 체제에 동화하는 과정을 반복해 왔다는 것이다.

겉으로만 포장된 자유민주주의를 슬그머니 받아들이면서 정치에 기생하는 형태로 한국 기독교 주류는 생존해 왔다. 주 목사는 이렇게 비정상적인, 독재를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독재의 그늘에 안식하려 하는 권력 지향적인 교회 모습을 '눈먼 자들의 교회'라는 말로 표현했다.

 

▲ 주 목사는 한국교회가 명운을 다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명운을 다한 교회 뼈대에서 찾을 수 있는 신은 없다"고 말했다.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

주 목사는 해체 징후들을 제시한 뒤, 이론적이고 실제적인 해체 방법을 이야기했다. 추상적이지만 밑그림을 제시했다. 이론적으로는 공공성 확보를 위해 기득권이 아닌 바닥 정서를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재주체화를 위한 동력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보와 보수, 이념적 스펙트럼을 흡수하면서 현실적인 공공성에 대한 합의를 도출할 때 광장으로 나아가 행동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적 해체의 방법으로 세 가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1) 개교회 기관을 대표하는 연대들의 난립을 난립 그대로 방치하되, 그로 인한 환멸과 그 너머의 의지를 해체론의 신학적 근거로 제시하여 해체의 의지를 밝히는 교회들 간의 해체의 방법론을 구체적, 제도적으로 모색한다.
(2) 교회라는 이름, 간판, 전통적 인식의 후경화 작업을 위해 한시적, 장기적 관점에서 종교의식의 최소화를 추진한다.
(3) 그와 동시에 바닥 정서의 공공성에 대한 함의와 연대에 대한 대안 기관으로서의 연합체를 구상해 나가면서 사회, 인간, 신의 관계를 재구성해 나가는 일련의 작업을 시대의 변화에 맞게 새롭게 재구성한다.

'해체'를 통해 건강한 공공성 만들자

발표 이후 토론에서는, 교회 해체를 이야기했을 때 '교회'와 '해체'를 어떤 개념으로 볼 것인가가 주요 쟁점이었다. 신익상 교수(성공회대)는 "교회 바깥이면 몰라도 교회 내부에서 해체론이 나오게 되면 어디까지 해체를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애매해진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와 주 목사는 해체를 아노미 상태를 추구하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해체가 되어도 공동체는 응집되기 마련인데, 이런 반복되는 운동 과정에서 스펙트럼을 평등하게 가져가자는 이야기라는 것.

신 교수는, 다만 교회가 광장으로 내려간다면 적군과 아군이라는 구별 자체가 희미해져서 어디까지 품을 수 있을 것인지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해체가 현실 적합한 방법이 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은 끊임없이 나온다고 했다. 주 목사는 이 같은 문제의식에 동감했지만 한국교회가 광장에 모이는 일도 서툴기 때문에 과정적인 해체를 좀 더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 신 교수는 '해체'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문제를 놓고 질문을 던졌다. ⓒ뉴스앤조이 강동석

양권석 교수(성공회대)는 교회론적 개념에서 교회는 하나로 이야기할 수 있지만 현상으로서 교회를 단일한 대상으로 이야기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그는 "교회를 단일하고 통일적인 대상으로 이야기하면 해체 못 한다는 얘기로 나아간다. 누가 누구를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 주체도 대상도 성립되지 않는 관계가 된다. 교회가 다양한 모습으로 충돌하고 있는데, '교회'에 대한 개념이 정리가 안 되면 그거 하나로 대책이 없어진다. 일반화시키기보다 '교회'라는 말을 개념적으로 정리해야 한다"라고 했다.

양 교수는 이어, 기득권에 서 있는 대형 교회들의 신학이 오히려 성서를 더 과감하고 자유롭게 해석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고 했다. 복음과 신학, 교회를 기득권과 일치시키기 위해, 기득권의 이데올로기 작동을 돕기 위해 텍스트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과감하게 해석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형 교회는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돈을 들여서라도 자기네 기질, 신학 체계 안에 가두는 데 훨씬 더 용의주도하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전선이 대형 교회만이 아니라 큰 교회와 작은 교회들 사이, 신자들 사이를 가로질러서 다른 모습으로 전선이 짜이고 경계선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개념을 정립했으면 좋겠다. 작은 교회 목회자가 생각하는 교회하고, 대형 교회가 생각하는 교회는 하늘과 땅 차이다."

▲ 양 교수는 '해체'를 이야기하려면 먼저 해체해야 하는 '교회'가 무엇인지부터 정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강동석

이에 대해 주원규 목사는, 대형 교회에서 볼 수 있는 샤머니즘과 1인 숭배 카르텔이 외연을 용의주도하고 치밀하게 구상할 수 있지만 내부는 빈 동굴처럼 비어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부분이 자극될 때 작은 교회가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더욱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국교회가 작은 교회와 대형 교회로만 양극화되는 추세를 보이는데, 이것은 문제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해체를 어떻게 건강성으로 이어 갈 수 있겠느냐는 문제 제기도 있었다. 교단 벽을 허물고, 자기 지역성과 개교회주의를 해체하는 작은 교회 운동에 더 집중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주원규 목사는 이 의견에 동의하면서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작은 교회 운동으로 대안을 마련하는 것과 동시에 교회가 가지고 있는 '허위의 우상성'을 언론과 신학하는 사람들이 계속 성토해야 한다는 것. 대형 교회가 '피플 파워'에 기대고 있기에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다만 힘 대 힘으로 맞서겠다는 논리는 배격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대안 논리로 헤게모니를 세워 맞서 싸우기보다 공동체를 환기하는 역할로 '해체'를 지향하고 건강한 공공성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교회 안에서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상호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것 안에 부정적인 것이, 부정적인 것 안에 긍정적인 것이 담겨 있다고 본다. 지금 교회를 사로잡고 있는 집단 무의식, 정치적 무의식 등 악성을 탈각하는 역할로 '해체'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 유산을 해체하자는 게 아니라, 한국교회를 형성하고 있는 악습들을 밝혀내는 과정으로 해체가 필요하다. 그게 신학하는 자들의 자세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