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무엇일까?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고 있지만 '삶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만약 지금 이 순간 이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은 철학자이거나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4세기 최초의 영성신학의 기초를 세운 영성가 에바그리우스는 '고통이 주는 선물'이 바로 삶을 바라보게 하고, 자신을 바라보게 하고,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과 진리를 바라보게 한다고 설명하였다.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

▲ <참 재미없는 세상> / 신동필 지음 / 홍성사 펴냄 / 128쪽 / 9,000원

많은 성공학자와 동기 부여 강사들, 심지어 교회 강단에서도 '목적'을 바라보는 삶을 살라고 강조한다. 분명 이 세상을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건강한 목적과 그 목적을 향해 분별과 절제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탐욕적이거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 그리고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목적'이 독이 될 수 있다. 목적이 탐욕을 가리는 수단이 되고, 어려움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목적이 될 때 불신앙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통 중에라도 고통이 주는 선물을 받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고통이 주는 독에 죽어 가는 사람도 있다.

본서의 저자는 병마와 씨름 중이다. 그의 능력과 스펙이 엄청남에도 하나님은 그에게 탁월한 재능과 은사와 함께 병도 주셨다.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답을 주시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본서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상상해 본다. 왜냐하면 본서를 통해 저자가 하나님께서 '왜 이 병을 주셨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보기에 아프지만 않다면 저자는 이 세상을 놀이터로 삼아 마음껏 자신의 능력과 재능으로 살아갈 수 있는 분처럼 보인다. 하지만 병마는 그 모든 것을 재미없게 만들어 버렸다. 중요한 것은 저자가 '병을 고치는' 목적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삶의 목적에 치우쳐 있는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보여 주고 있다.

침묵과 상징

한국교회는 말과 글이 너무 많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말을 통해, 글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부인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침묵과 말의, 글과 상징의 균형과 조화가 필요하다. 고통을 당한 이에게는 어떤 말로 위로해 주려 하기보다는 그냥 조용히 그 아픔을 말없이 공감해 주고, 같이 아파해 주며 곁에 있어 주는 것이 훨씬 더 위로가 된다. 또한 수십 페이지 되는 논문을 읽을 때보다 조그마한 그림이나 사진 한 장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다.

본서의 저자는 최대한 글을 줄이고 있다.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을 자신이 보고 있는 사진으로 보여 주고 있다. 자연과 이 세상 또한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말씀이다. 우리는 성경을 해석하는 데에는 익숙하지만, 자연과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 너무나 서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자.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 성경을 먼저 주셨는가, 자연을 먼저 주셨는가. 어쩌면 성경은 우리가 자연과 삶을 바르게 해석하라고 주신 하나님의 주석이기도 하다. 성경을 폄하하거나 제한하고자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글과 상징이 균형과 조화를 이룬 하나님과의 소통이 확장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재미난 책

글로 된 책은 한 번 읽으면 다시 읽는 경우가 잘 없다. 그러나 필자는 이 책을 벌써 세 번이나 보았다. 아니 정확히 말해 사진들을 보았다. 그런데 이 사진들이 저자의 마음을 보여 줄 때도 있고, 필자의 마음을 보여 줄 때도 있다. 볼 때마다 새로운 의미들이 발견된다. 이것이 기호가 줄 수 없는 상징의 무서운 위력이다. 필자는 앞으로 이 책을 강의나 수련의 묵상 교재로 쓸 계획이다.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무궁무진한 의미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강도헌 / 크리스찬북뉴스 운영자, 제자삼는교회 담임목사, 프쉬케치유상담연구원 원장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