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다. 그런데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말하기를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려 왔습니다.” 하였다. 헤롯왕은 이 말을 듣고 당황하였고, 온 예루살렘 사람들도 그와 함께 당황하였다. 왕은 백성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을 다 모아놓고서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태어나실 지를 그들에게 물어 보았다"마 2:1-4).

전쟁의 시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미국의 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거의 막바지 고비를 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전쟁은 여전히 지속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확전의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의 관계단절을 선포했고 전쟁을 불사할 기세에 들어서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요격미사일 억제 조약인 ABM조약 탈퇴를 공식화했다. 군사주의적 패권체제가 일방적인 기세로 지구촌의 운명을 압박해들어 오고 있는 것이다. 생명과 평화, 사랑과 정의를 꿈꾸며 사는 기독교인들은 이런 시대에 예수 탄생의 의미를 도대체 어떻게 새겨야 하는 것일까? 우리의 신앙은 이 시대의 폭력 앞에서 무력하게 침묵해야 하는 것일까?

마태복음이 기록한 예수 탄생의 시대적 상황은 ‘헤롯왕 때에’라는 말속에 압축된다. 그것은 내적으로 헤롯의 잔혹한 압제가 있었고, 외적으로는 그를 분봉왕으로 들어 앉힌 로마식민체제가 유지되고 있던 배경을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당시 히브리 백성들이 안팍으로 고달프고 희망을 갖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든 주도권은 헤롯과 그를 지탱해주고 있는 로마제국에게 집중되어 있었으며, 이에 대하여 항거한다는 것은 감히 생각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것은 곧 반역죄에 대한 십자가형을 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당시 이미 가난한 농어민들이 살고 있는 갈릴리를 근거지로 하여 헤롯과 로마체제에 저항하는 유격대들이 끊임없이 출몰하고 있었고, 때로 일어나고 있던 농어민들의 조세저항에 따른 반발이 진압되는 사태가 반복되고 있었다.

따라서 로마의 총독부는 물론, 이스라엘 역내(域內)의 치안 내지 공안을 담당하고 있는 헤롯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체제에 도전해올 만한 조짐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사전에 싹을 재빨리 잘라내지 않으면 안심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헤롯은 각지에 정보망을 펼쳐 놓았고, 저항세력의 미미한 움직임이라도 포착되면 잔혹하게 진멸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헤롯체제의 유지를 위해 지식인들은 헤롯에게 빌붙어서 그에게 온갖 정보와 통치전술의 간계(奸計)를 공급하고 있었음은 물론이었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동방의 현자’들이 이곳을 방문한다. 동방의 현자들은 이들 헤롯과 결탁하고 있던 율법학자나 대제사장들과는 대조된다. 우선 동방이라고 하는 지역의 상징은 ‘신비로운 지혜의 근원’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고, 거기에서 오는 지식은 불투명한 미래를 여는 열쇠처럼 인식되었던 것이다. 우리 나라의 중세사 속에서 불교문화가 ‘서방정토(西方淨土)’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떠올리면 이는 쉽게 이해가 갈 일일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출현은 헤롯을 비롯하여 모두의 관심을 모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이 어찌해서 그 먼 곳에서부터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는 실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들 동방의 현자는 자신들을 인도해낸 것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뜻하는 별’이라고 밝힌다.  별의 움직임은 세상대세의 운명과 관련이 있다고 믿는 시대에 이러한 발언은 놀라울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것이 동방의 현자의 입에서 나온 것은 헤롯 체제에 일대 충격과 위협이 아닐 수 없다.  

헤롯을 대체할 새왕의 출현이라고 하는 선언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새 왕의 등장을 별이 증언했다고 하는 것도 충격적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동방의 현자들이 가지고 있는 관심의 내용을 보게 된다. 그들은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갈 기운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졌고, 그것이 동방에서가 아니라 이 작고 작은 나라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주목한 것이다.

거대한 제국의 움직임에서 역사의 새로운 탄생을 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제국의 식민지 백성의 현실에서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시성 타고르가 3.1운동을 치룬 1919년의 조선을 보면서 ‘동방의 등불’이라고 했던 것처럼 세계의 새로운 희망이 이 소국(小國) 이스라엘의 어디에선가 일어날 것임을 감지했던 것이다.  

이 동방의 현자들이 한 발언은 이들 이스라엘 지식인들에게도 권위 있었고, 따라서 헤롯은 이 발언의 진위여부가 가장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서는 그 자신에게 도전해올 지 모를 새로운 저항세력의 진원지를 속히 파악하여 이를 진멸시키지 않고서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마태복음 본문이 “헤롯과 온 예루살렘이 당황했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은, 헤롯을 중심으로 한 예루살렘 기득권 체제의 깊은 불안감을 나타내고 있는 셈이다. 이들의 압제에 짓눌린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이들 기득권 세력과 체제자신에게는 무서운 도전과 위협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제 주도권이 그들의 손에서 새 왕에게 넘어간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헤롯왕 밑에 있던 지식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은 헤롯체제를 위협할 지 모를 진원지에 대한 정보를 헤롯에게 제공한다. 헤롯의 공격목표를 제시해주는 것이었다. 이 결과가 16절 이하에 기록된 유아학살의 현장이다. 새로운 역사의 출몰은 언제나 이렇게 기득권체제의 공격으로 고난을 치루게 된다. 그리스도 탄생은 바로 이러한 사탄의 공격을 뚫고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세상을 쥐고 있는 권세에 맞서서 하나님의 주도권, 하나님이 기르시는 공동체의 주도권이 확립되는 과정이 바로 그리스도 탄생의 핵심적인 메시지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선과 정의, 평화와 사랑 등이 이 세상에 주도권을 갖게 하는데 얼마나 자신을 바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그리스도 탄생은 2천년 전 팔레스타인의 한 땅에서 태어난 나사렛 예수를 기억하고 기뻐하는 일로 끝나는, 반복적인 종교적 행사가 아니다. 그것은 헤롯처럼 사람들의 삶을 짓누르고 선하지 않는 것을 ‘현실이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라고 패배주의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일체의 악한 것에 대한 도전의 의지를 불태우는 일이다. 또한, 아무리 그러한 의지를 이들 사악한 세력들이 학살하려 해도 결국 그리스도의 주도권이 이 모든 것을 이기고야 만다는 점을 일깨우고 함께 감사한 마음으로 힘을 모으는 사건이 바로 그리스도탄생의 진정한 기림이다.  

지금 이 시대의 주도권은 누가 쥐고 있는가

그렇지 않고 그저 동화적 신비주의의 수준에서 그리스도 탄생의 종교적 의미를 짚어 내거나, 또는 이 세상의 악한 세력들을 몰아낼 구주의 오심으로 받아들여, 그를 한사코 따를 차비를 하려는 결전의 의욕 등이 존재하지 않는 성탄의 새김은 결코 복음적인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탄생에 대한 우리들의 기쁨이 이 세상의 악한 기득권 체제를 당황하게 만들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의 성탄에 대한 자세는 깊이 돌이켜 볼 일이다. 크리스마스 캐롤과 성탄예배에서 그리스도 탄생의 의미가 새겨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헤롯왕 체제에 두려움을 주었던 강력한 영적 능력의 충만함이 우리 안에서 태어날 때 비로소 그 성가와 예배는 우리에게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사탄은 이러한 우리를 보고, ‘아, 이런 인간과 이런 공동체를 내가 이길 방도가 없겠구나’ 하고 지레 겁을 먹고 기가 꺾이는 그런 사건이 우리에게서 일어나야겠다. 모든 선한 싸움에서 이길 전략과 능력을 훈련시켜 주실 대장이 오셨는데 이 아니 기쁜가? 여기에서 우리는 용기가 생기고, 투지가 자라며 세상의 약한 것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펼칠 기회를 얻은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이다.  

전쟁의 시대에, 폭력이 기승을 부리는 시대에 기독교인의 양심으로 돌아가 성탄의 진정한 역사가 우리 자신과 이 시대를 바꾸어 나가는 놀라움이 있게 되기를 빈다. 하나님 나라의 주도권을 굳게 믿는 이에게 참된 용기와 고귀한 헌신 그리고 뜨거운 사랑의 영이 넘칠 것이다. 그런 이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이 세대를 하나님 나라의 평화와 생명의 길로 인도해낼 것임을 굳게 믿는다. 그 믿음에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축복이 충만하게 임하실 것임을 우리는 기쁨에 차 증언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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