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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네 아이들 첼로 가르치는 터줏대감 목사
[10.31 전남 광주] 마을을 섬기는 시골·도시 교회 워크숍…사례 소개 8 여수열린교회
  • 김재광 (today@pastormentor.kr)
  • 승인 2016.10.2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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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멘토링사역원과 공동체지도력훈련원은 10월 31일(월) 전남 광주벧엘교회(리종빈 목사)에서 '마을을 섬기는 시골·도시 교회 워크숍'을 엽니다. 워크숍에서 총 9개 교회 사례를 발표합니다. 교회 본질을 추구하면서 마을을 아름답게 섬기는 9개 교회 이야기를 연재 글을 통해 미리 소개합니다. 워크숍 참여하시는 데 도움 받으시길 바랍니다.

이제 나이 60을 바라보는 정한수 목사는 한숨을 내쉬면서 창가를 응시했다. "근데 말이지. 멀리까지 와서 인터뷰도 해 주고 고맙긴 하지만…" 인터뷰가 시원찮았나. 무례한 질문이 있었나. 잠깐 숨을 죽였다. "그나저나 우리 애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몰라. 요즘 자꾸 알려져서 별로 안 좋아해. 그게 걸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근래에 취재다 인터뷰다 해서 많이도 드나들었다. 산동네 아이들 데리고 오케스트라를 꾸려 오지 섬마을에 공연을 다니는 가난한 작은 교회 이야기에 각종 매체들이 러브콜을 보냈고, 애들한테 좀 도움이 되려나 해서 한두 번 응했더니 그 뒤로 취재 요청이 우후죽순 늘어나는 통에 이젠 아이들도 싫은 내색을 하는 중이었다.

   
▲ 산동네 아이들에게 클래식 악기 가르치며 오케스트라를 꾸린 교회가 여수에 있다. (사진 제공 여수열린교회)

광무동

26년이다. 1988년 가난한 동네, 가난한 이웃 섬기려고 교회를 세우고 지금에 이르렀다. 지지리도 가난해서 달동네, 산동네 이름 붙인 곳 중 전국서 으뜸가는 동네를 맡았다. 광무동. 여수는 물론 전국에서 이름난 가난한 동네다 보니, 개척 초기에는 외국에서도 온정의 손길이 끊이지 않았다.

여수 인근 100개 섬에서 육지 진입을 노린 사람들이 뭍으로 나와 처음으로 정착하는 곳이 바로 이곳 광무동이었다. 젊은 부부들은 맞벌이에 나섰다. 아버지는 여천 공단 하청 업체에 일용직이나마 감지덕지했고, 어머니는 서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면서 하루 벌이 생계를 가까스로 유지하며 살았다. 자연 아이들은 알아서 컸고 저절로 자랐다.

동네 아이들을 거둔 것은 교회였다. 26년 동안 그 자리에서 동네 아이들을 거뒀다. 1988년과 2016년이 다른 점이 있다면 맞벌이 젊은 부부들이 손자, 손녀 기르는 할아버지, 할머니로 바뀌었다는 점뿐이다. 객지에 어렵게 사는 자식들 대신 손자, 손녀를 거둬서 기르는 노인들이 광무동 주민 대다수를 차지했다. 시절은 바뀌었지만 제 스스로 자라야 하는 아이들은 광무동에 여전히 남아 있다.

처음에는 무료 탁아소로 시작했다. 독일에서 가난한 동네에 보내는 원조의 손길이 있었다. 그 덕에 10년 동안 아이들을 잘 돌볼 수 있었다. 10년이 지나니 보조금은 더 가난한 나라로 넘어갔다. 하지만 광무동은 여전히 가난했다. 가뜩이나 IMF 여파로 타격이 극심한 동네에 탁아소 지원도 끊기니 이래저래 발이 묶였다.

눈물을 머금고 탁아소 운영을 중지하긴 했지만, 동네 아이들이 눈에 밟히는 건 교회의 숙명이었다. 평일 오후 아버지, 어머니는 일터로 나가고 점심도 거른 채 동네를 배회하는 아이들 몇을 교회로 불러들였다. 세수 시키고 늦은 점심도 먹이고 밀린 숙제도 좀 봐 줬다. 공휴일이 되면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도 같이 나갔다. 생일도 못 챙기고 넘어가는 애들이 많아서 생일 잔치를 월별로 나눠서 교회가 맡아 열었다.

20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동네 아이들 40여 명이 교회로 몰려와서 시끌벅적 자기들 세상을 만들었다. 5년 전에는 매일 오는 애들이 70명을 넘어섰다. 교회는 포화 상태가 되었다. 무리하지 말자. 이러다 오는 애들 하나하나 잘 못 살핀다. 아이들을 더 이상 받지 않기로 결정하기까지 뒤숭숭한 마음이 일었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했다. 2016년 오늘도 여수열린교회에는 40여 명의 아이들이 교회로 뛰어 들어온다.

   
▲교회로 몰려드는 동네 아이들 데리고 주말이면 역사 유적지도 가고 문화 체험 활동도 다녔다. (사진 제공 여수열린교회)

열린챔버오케스트라

아버지는 몸 한쪽을 전혀 못 쓰고 종일 누워 계신다. 어머니는 몇 해 전 교통사고를 당해 장애 판정을 받으셨다. 집에선 가장이지만 학교에서는 아직 친구들이랑 공 차고 놀 때다. 한참 꿈을 펼칠 나이지만 일찍부터 포기하는 법을 배웠고, 무언가에 몰입하거나 끈기 있게 돌파해 나가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공부방 아이들과 도자기 체험 활동을 하러 간 날이었다. 공부는 담 쌓고 지내던 한 아이가 물레를 돌리는데 눈빛이 반짝 빛났다. 어쩜 저리 몰두를 하고 있었을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물레를 돌리는 아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정 목사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놀아 주고 숙제 도와주고 생일 축하해 주는 걸 넘어 이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줄 수 있는 뭔가가 있다면 한번 도전해 보자.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일이다. 아이들에게 클래식 악기를 가르쳐 주기로 했다. 도자기 만들려면 재료를 항상 공급해 줘야 하는데, 작은 교회 형편에 엄두가 나질 않았다. 대물려서 할 수 있고, 즐겁게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가르침을 받으면서 인내심도 끈기도 기를 수 있고, 함께하는 이들과의 호흡도 연습할 수 있는 것. 악기 연주보다 더 좋은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이면 클래식 악기를 가르쳐 주고 싶었다.

문제는 악기를 구하는 일. 고가의 악기를 그것도 10여 개를 구할 방도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곳곳에 편지를 보냈다.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비슷했다. '서울 중산층 아이들도 엄두를 못 내는 클래식 악기를 너희들이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한마디로 '꿈 깨라'는 것이었다. 냉담한 반응에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한번 마음을 먹었으니 끈질기게 매달려 보기로 했다. 결국 서울의 한 기업에서 응답이 왔다.

처음에는 돈을 주겠다고 했다. 후원금으로 좋은 일에 써 달라는 뜻이었다. 대뜸 "돈은 필요없다"고 했다. 저쪽에서 당황했다. 악기보다는 돈이 더 급한 거 아니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돈은 있으면 다른 데 금세 써 버리는데, 악기는 그렇지 않다. 악기는 두고두고 우리 아이들 대물려서 연주할 수 있다. "우리는 악기가 필요하다. 악기를 보내 달라." 바이올린 3대, 비올라 2대, 첼로 2대, 플룻 2대, 클라리넷 2대가 교회로 도착했다. 그길로 산동네 아이들 모아 놓고 오케스트라를 꾸렸다.

고맙게도 지역의 재능 있는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가르쳐 주었다. 여수크리스찬앙상블 단무장 집사님이 1대 선생님이 되어서 아이들을 가르쳐 주었다. 그분은 이발소를 운영하면서 저녁이면 틈틈이 악기 가르치는 곳을 쫓아다니며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을 배운 숨은 실력파였다.

가장 최근에 아이들 악기를 가르쳐 주신 분은 광주 광신대 교수로 있으면서 매 주일 오후에 여수까지 와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합주 연습이 끝나면 밥을 사 주고, 연말에는 받은 강사비를 모아 책 선물을 해 주는 천사 같은 분이었다.

   
▲ 악기 연습에 열중하는 아이들 모습. (사진 제공 여수열린교회)

악기를 배운 지 3년 만에 제1회 정기 연주회를 열었다. 이름을 열린챔버오케스트라로 지었다. 올해 2월에는 제11회 정기 연주회를 여수 예울마루에서 열었다. 예울마루는 여수뿐 아니라 전국에서 알아주는 근사한 공연장이다. 지난 1년 동안 지자체는 물론 오지 섬마을, 병원 등을 다니며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 공연을 꾸준히 연 덕분에 아이들 실력은 일취월장 늘었고 지역에서는 이름난 오케스트라로 알려졌다.

초등학교 2~3학년 때 처음 악기를 배운 아이들이 이제는 커서 대학생이 되었다. 예술대 음악과에 진학한 친구들도 있고, 사범대 음악교육과에 간 친구들도 있다. 광주와 목포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주말이면 후배들 가르쳐 주겠다고 여수에 와서 연습도 시키고 지휘도 한다. 15년 동안 지속된 관계라 그런지 오케스트라 단원들끼리는 아주 단합이 잘되어서 선배는 후배들을 이끌고, 후배는 선배들을 모델로 삼는다.

   
▲ 열린챔버오케스트라는 여수에서 알아주는 연주팀으로 자리매김했다. (사진 제공 여수열린교회)

지역 교회의 길

2004년 교회는 건축 계획을 세웠다. 건물은 낡고 비좁은데 드나드는 사람들은 젊고 어리다 보니 공간이 버틸 수가 없었다. 그런데 건축 이야기가 나오면서 이참에 동네도 바꿔 보자는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마침 반대편 동네에 신도시가 개발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교회가 재도약을 하기 안성맞춤인 때라는 주장이 교회 안에 퍼졌다. 처음엔 반대 의견을 냈지만 결국 성화에 못 이겨 신도지 예정지에도 한두 번 들렀다 왔다.

결정을 내려야 하는 회의석상에서 떠날 수 없다는 뜻을 굳혔다. 우리가 가면 이 동네는 누가 돌보느냐. 이웃 할머니들이 자식들한테 온 편지를 못 읽어서 끙끙대다가 교회로 와서 도움을 받고, 광주에 병원 갈 일이 있어서 발을 동동거리고 있을 때 교회 봉고로 모시고 갔다 오고, 아이들 악기 연주 한참 잘하고 있는데 교회가 떠나 버리면 누가 이 아이들 건사를 하겠느냐고 교회 이전 불가 방침에 못을 박았다.

여수열린교회는 광무동 터줏대감이다. 정한수 목사는 "무슨 일이든 30년은 해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로 광무동에서만 26년째인 정 목사와 여수열린교회는 앞으로 꿈이 뭐냐는 질문에, 오케스트라 하면서 음악 꿈 키운 아이들이 이 지역에서 연주도 하고 후배들도 가르치고 생업도 해 나갈 수 있는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을 만드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동네 아이들 코흘리개일 때부터 교회가 곁에 있지 않았나. 청년이 된 이 친구들 앞길도 교회가 나서서 도와주는 게 어쩌면 26년 전부터 정해진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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