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노벨 문학상은 밥 딜런에게 돌아갔다. 어느 미국의 유명 음악 평론가가 이렇게 말했다. "밥 딜런의 음악은 20세기 대중음악의 정신 혁명과 관계된다." 밥 딜런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심오한 사상을 가사에 담아내며 음악인들에게 연주하고 노래하는 것 못지않게 가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주었다. 그의 노랫말은 오만한 문학 지성계에까지 크게 인정받으며 2008년 퓰리처상에 이어, 마침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미국의 대학에서 딜런 음악의 문학적 가치를 논하는 강좌가 열리고 있다.

밥 딜런의 노랫말은 하나의 철학이며 문학이다. 감상자의 가슴을 찌르는 통렬함을 지녔고 초현실적이었으며 심오한 사고의 깊이를 간직했다. 밥 딜런의 많은 노래들 중, 본인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준 노래는 바로 'Like a Rolling Stone'이다. <Rolling Stone>지는 이 노래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로 선정하기도 했지만, 나 역시 개인적으로 내 인생의 노래 한 곡을 뽑으라면 이 노래를 언급하곤 한다. 지금까지 수천 번을 넘게 들어 왔지만 여전히 질리지도 않고 들을 때마다 새로운 영감과 전투력이 급상승되곤 한다.

대중음악 역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단어를 하나 꼽자면 아마도 "Rolling Stone"이 아닐까 생각된다. 영국 속담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A rolling stone gathers no moss)"에 나오는 이 단어는 대중음악의 가장 권위 있는 음악 매거진의 이름이며, 50년 이상 장수하며 지금도 젊을 때처럼 건들거리며 무대를 누비는 록그룹의 이름이기도 하다.

"구르는 돌처럼(Like a Rolling Stone)" 이 말처럼 청춘들의 삶과 그들의 록 스피릿을 더 잘 대변해 주는 표현이 있을까? 옥상달빛이 그랬던가? "어차피 인생은 굴러먹다 가는 뜬구름 같은 질퍽대는 땅바닥 지렁이 같은 걸." 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고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 이 "구르는 돌멩이" 정신은 청년 정신의 키워드일 것이다.

1965년 통기타 포크의 영웅, 밥 딜런은 파격적인 변화를 감행했다.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그는 통기타가 아닌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무대에 섰다가 팬들의 야유를 받았지만, 이후 팝 역사는 그를 '포크록'의 창시자로 각인시키는 순간이었다. 밥 딜런은 "록으로부터 젊음의 폭발하는 사운드를 끌어온 대신, 록한테는 가사를 가르쳐 주는 공적을 남긴 것이다." 포크의 심오한 노랫말과 에너지 넘치는 록 사운드를 공유한 포크록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청년 세대의 음악 문법으로 1960년대와 1970년대를 풍미했다.

이런 변혁 직전에는 위대한 만남이 있었다. 밥 딜런과 비틀스는 1964년 뉴욕에서 만나 깊게 교류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밥 딜런과 존 레논은 동갑내기이다. 비틀즈에게 약물을 전수한 이도 바로 밥 딜런이었다. 흥겹고 단순한 사랑노래를 부르던 비틀즈는 밥 딜런의 노랫말에 충격을 받고 1966년 'Rubber Soul' 앨범부터 깊이 있는 노랫말을 만들기 시작했다. 또한 같은 해 발표한 다음 앨범 'Revolver'에서 비틀스는 포크 문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반대로 밥 딜런은 비틀스의 다이나믹한 로큰롤 사운드의 영향력을 목도하며 과감하게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무대에 서며 포크록의 창시자가 됐다. 이런 밥 딜런의 음악적 변신의 중심에, 명곡 'Like a Rolling Stone'이 있다. 이 노래는 1965년 그의 세 번째 음반 'Highway 61 Revisited'에 실려 빌보드 차트 2위에 올랐다.

한 여인의 스토리를 담고 있는 이 노래는 사실 정확한 의미를 해독하기 쉽지 않다. 얼핏 보면 떵떵거리며 잘나가던 한 여인이 모든 걸 잃고, 이젠 다음 끼니와 잠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추락한 것에 대한 조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1절 가사를 돌아보자.

옛날 너는 옷을 근사하게 입고
잘나갈 때 거지에게 잔돈이나 집어 주었지, 안 그래?
사람들은 말했지, "조심해, 아가씨, 떨어질지 몰라"
너는 그들이 그저 농담한다고 생각했을 거야
너는 하찮게 돌아다니는 그들 모두를 비웃곤 했어
넌 지금은 말도 크게 못하고, 부끄러워하는 것 같구나
비참하게 다음 끼니를 찾아 헤매 다녀야 한다니 말야

밥 딜런은 장밋빛 꿈을 꾸던 한 여인을 비아냥대며 노래를 시작한다. 물질적 풍요만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가난한 사람들의 비천한(성실한) 삶을 비웃는 현대인의 망상을 꼬집는 듯하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사람들은 돈과 학벌과 권력을 통해 사회적 명망과 향락을 누리며 떵떵거리는 삶을 꿈꾼다. 현대인의 일상은 온통 쇼핑과 오락거리들로 넘쳐나고 삶의 희로애락이 거기에 맞춰 춤을 춘다. 영화나 드라마 속 젊고 부유한 이들의 일상은 평범한 이들의 소박한 꿈을 우습게 만들고, 우리 정신에 '과잉 실제'(hyper-reality)의 스펙터클을 불어넣어 거대한 판타지를 형성한다.

화폐의 노예가 되면 모든 것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좀비 바이러스'가 현대인의 의식과 마음에 무한대로 복제되고 있다. 그런 허영된 삶의 그림은 계속된 2절과 3절에서도 이어진다.

미스 론리, 그래 당신은 명문 학교를 다녔어
그러나 넌 그 속에서 우쭐하곤 했지

너는 사교에 능한 친구와 금속 말을 타고 다니곤 했어
그는 어깨에 샴고양이를 매고 다닌 자였지

탑 위의 공주, 그리고 모든 이쁜 척하는 녀석들
그들은 마셔대며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결과는 어떠한가? 이런 장밋빛 꿈이 무너진 후 이 여인은 도와주는 친구 하나 없이 거리를 부랑하며 다음 끼니를 걱정하고 있지 않은가? 돈과 힘이 있을 때 흥청망청 함께 놀던 친구들은 이제 그녀의 곁에 없다. 그들은 단지 그녀를 이용하려고 했던 것뿐이니까?

nobody has ever taught you how to live on the street
And now you find out you're gonna have to get used to it

아무도 네게 거리에서 사는 법을 가르쳐주진 않았겠지
지금은 그런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을 알 거야

노래가 말하는 대로, 잘나갈 때에는 "아무도 네게 길 위에서 사는 법을 알려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거리의 부랑아들도 그녀 곁에는 없다. 잘나갈 때 값싼 동정이나 무관심으로 외면하고 비웃던 그녀에게 여기에도 친구가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노래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억울함을 대변해 주기를 애걸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녀의 편이 되어 주지 않는다. 딜런은 후렴에서 이렇게 질문한다.

How does it Feel? How does it feel?
To be on your own, with no direction home,
Like a complete unknown, Like a rolling stone

기분이 어때? 기분 아주 더럽지?
너 혼자 동떨어져, 거처할 집도 없이
철저히 무시당하며,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처럼 말야

딜런은 이 노래에서 성공을 꿈꾸지만 경쟁에 뒤처진 젊은이들의 좌절된 욕망과 다음 끼니를 걱정하며 비정규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한 그들의 비참한 삶, 그리고 개인주의적 경쟁 사회 속에 동료 의식을 배우지 못하고 혼자가 되어버린 그들의 외로움을 통렬하게 고발하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의 어떤 학교에서도, 미디어에서도, 자기 개발 강연과 서적들도 그들에게 "길 위에서 사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끊임없는 경쟁과 판타지를 주입할 뿐이다.

딜런은 3절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너는 누더기를 걸친 나폴레옹과 그가 쓰는 언어를 좋아하지. 그에게 가. 그가 부르면 넌 절대 거절 못 할 거야." 차디찬 현실 속에서 그렇게 아픔을 겪지만 또다시 물질적 단물을 제시하면 곧바로 이전의 판타지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 현대인의 생리이지 않은가? 이런 서글픈 모습은 단지 딜런이 노래했던 1960년대 미국의 현실만이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낸 정서적 기재와 욕망의 재배치 가운데 거리에 흔하게 굴러다니는 돌멩이처럼 버려져 외롭게 투쟁하는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의 정확한 자화상일 테니까?

하지만 밥 딜런은 이 노래 후반에서 전혀 다른 "구르는 돌멩이"의 또 다른 삶을 노래한다. 아무런 미래의 보장도 없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삶은 엄청난 고통과 두려움으로 다가오지만, 동시에 아무 것도 잃을 것 없고, 아무도 의식할 필요도 없는 순전한 자유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3절 후반을 보면 다음과 같은 반전 문구가 등장한다.

When you got nothing, you got nothing to lose
You're invisible now, you got no secrets to conceal.

아무것도 없을 때, 잃을 것도 없지
넌 이제 눈에 띄지 않아, 그러니 감출 것도 없어

그렇다. 지금까지 내가 쫒던 꿈이 허황된 망상임을 자각한 순간 우리는 절대적인 자유를 얻게 된다. 이제 우리가 바라보는 나 자신과 세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올 것이다. 앞 절에서도 계속 반복되었던 이제 이 노래의 후렴을 다시 들어 보자. 이 순간 전혀 다른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와 해석될 것이다. 우리는 아무 것도 없이 무시당하며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하찮고 비참한 돌멩이가 아니다.

How does it Feel? How does it feel?
To be on your own, with no direction home,
Like a complete unknown,
Like a rolling stone

기분이 어때? 기분이 어때? (아주 새롭지)
너 자신으로 산다는 것이, 묶여있는 집도 없이
어느 누구의 시선에서도 자유롭게,
마치 (깨지지 않고 진취적인) 구르는 돌처럼

이 중의적인 반전의 후렴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힘차게, "Like a Rolling Stone"을 힘차게 따라하며 자유를 꿈꾸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우선 누군가 우리 머리에 심어 놓은 중산층 삶의 '기준'(standard)을 놓아 버리자. 그걸 하나의 기준으로 삼는 이상 우리의 삶은 계속 몰개성적인 헐떡임이 빠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배워야 할 더 중요한 삶의 비결은 "길 위에서 사는 법" 그리고 "더불어 사는 법"이다.

인생을 늘 유랑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말씀을 전한 예수님, 그분이 꿈꾼 세상은 바로 이런 자유로 충만한 세상이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이런 물질적인 것들에 종속되어 염려하며 살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이런 것들은 이방인들이나 하는 거라고, 오히려 우리 자신이 물질보다 더 귀한 존재 아니냐고 반문하시며, 우리가 나 자신의 더 큰 존재 의미와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구한다면 이런 것들은 덤으로 주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마 6:26-33).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도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전을 넣어 가지고 다니지 말고, 식량 자루나 여벌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도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오히려 가는 곳마다 평화를 심으며 당당히 더부살이하는 법을 일러 주신다(마 10:9-12).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의 가치가 영원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땅에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들을 감사하며 누리는 사람들이다. 다만 우리 안에 가치가 '소유'에서 '자유'로 무게중심을 옮긴다면, 우리는 이 광야에서도 이끼가 끼지 않는 "구르는 돌처럼" 굳세게 살아갈 수 있을 거다. 어느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도 종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나 자신으로 사는 삶을 꿈꾸어 보자. Like a Rolling Stone!

윤영훈 / 빅퍼즐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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