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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괜히 원로가 아니었다
진정한 교계 '원로' 한완상 박사 만나다…배우려는 열정, 나이와 상관없어
  • 이은혜 기자 (eunlee@newsnjoy.or.kr)
  • 승인 2016.10.2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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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일에 오래 종사하여 경험과 공로가 많은 사람."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표준국어대사전에 '원로(元老)'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나오는 설명입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원로들은 어쩌다 한번 뉴스에 등장합니다. 그들이 젊은 시절 했던 일은 별로 조명받지 못합니다. 지금 '원로'로서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조언해 주는 존재 정도로 소개하는 것 같습니다.

교계에서도 '원로'라는 단어를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가장 흔한 단어 조합은 역시 '원로목사'입니다. 원로목사는 통상 20년 넘게 한 교회 담임목사로 있으면 부여받는 호칭입니다. 오랜 헌신의 상징이지만 근래에 '원로목사'가 긍정적으로 쓰이는 경우를 그다지 자주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노욕(老慾)이 지나쳐 교회를 욕되게 하거나 사회 지탄을 받는 원로목사들 소식만 귀에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대형 교회 담임목사가 은퇴 후에도 교회를 떠나지 않고 강단에 선다는 소식, 자기가 키운(?) 교회가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는 것이 싫어 아들에게 세습했다는 소식 등이 '원로목사' 단어를 들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 한완상 전 부총리는 차분하게 자신이 정리한 신학을 설명했습니다. 그의 집 주방까지 가득찬 책들을 보며 그가 얼마나 배움에 열린 사람인지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습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원로에게 배우는 즐거움

우연한 기회에 교계 '원로'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인터뷰에 따라나서게 됐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한완상 전 부총리를 잘 모릅니다. 그가 왕성하게 활동할 때 저는 중학생이었고, 이후에도 정치에 큰 관심 없었습니다. 과거 <뉴스앤조이> 기사로 그가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도였습니다.

한완상 전 부총리는 박정희 정권에서 민주화 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옥살이 경험을 종종 이야기했습니다. 전두환 정권에서 군사재판 피고석에 서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미국으로 망명해 에모리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고, 유니언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많은 독자가 아시는 것처럼 김영삼 정부 부총리 겸 통일원 원장, 김대중 정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노무현 정부 대학적십자사 총재를 역임했습니다. 한완상 전 부총리는 제가 만난 교계 인사들 중 가장 권력에 근접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사실 인터뷰가 그렇게 내키지 않았습니다. 이름은 익히 들어왔지만 그가 한 업적을 잘 알지 못하는 데다(제 무지함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대화 주제가 '사드'였기 때문입니다. 이미 <복음과상황> 9월호에 사드 관련 인터뷰가 장문으로 나간 터였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제 좁은 식견으로는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2시간 30분의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한완상 전 부총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메모지에 빼곡하게 적어 준비했습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약속 장소인 한 전 부총리의 아파트에 들어서자 이상하게 편안했습니다. 한때 권력에 몸담았던 사람 집이라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서재 벽면을 가득 메우고도 모자라 거실·부엌까지 침범한 책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래된 가구, 가족 얼굴이 담겨 있는 수많은 액자에서 그의 소박한 삶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에 임하는 저희는 그래 봐야 30대. 올해 80줄에 들어선 원로 눈에는 혈기만 왕성하지 사회나 교회를 보는 식견이 부족한 청년으로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인터뷰(사실 강의에 가까웠습니다) 시작 전, 그는 하고 싶은 말을 이미 깨알같은 글씨로 정리해 왔습니다. 얼핏 보니 중간중간 강조할 부분을 빨간색으로 긋고 별표까지 그린 흔적이 보였습니다.

2시간 30분의 알찬 강의였습니다. 사드 이야기는 짧게 끝났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정립한 신학, 푯대로 삼은 성경 한 구절이 어떻게 인생관, 신앙관으로 자리 잡아 평생 영향을 미쳤는지 알기 쉽게 풀어 설명했습니다. 이야기 듣는 내내 시간 가는 줄 몰랐고 틈을 파고들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한완상 전 부총리는 엄밀히 말하면 이제 변방에 있는 사람입니다. 더 이상 권력 구조 한복판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에게서 전혀 '노욕'이나 '초조함' 따위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지혜를 후대에 구술로 전해 주는 할아버지처럼, 듣는 저희가 잘 이해하고 있는지 되물을 뿐이었습니다.

성경을 바탕으로 자신이 사회에서 해야 할 일을 찾고, 용기 내어 최선을 다해 행동한 뒤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도 끊임없이 배우려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한 전 총리와 만나기 전, 과연 이 만남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의심했던 제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바라기는 이번 한완상 전 부총리 인터뷰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한 분야에서 묵묵하게 해야 할 일을 했던 '원로'가 지금 이 시대 기독교인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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