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쓰임 받게 해 달라 기도했더니 진짜 '큰사람' 됐다." 현재 국가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미르·K스포츠재단 몸통으로 지목받고 있는 박근혜 정부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 광고감독의 말이다. 이 말뿐만 아니라 크리스천들의 성공에 대해 성경적 검토와 이해가 필요하다.

아직 이 사건과 관련 어떠한 혐의나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이나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여러 가지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 다만 탁월한 그의 재능과 자질이 잘못된 방향으로 간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동안 한국교회에서 잘못 배운 진리와 성공 지향으로 얼마나 많은 인재가 사회적으로 몰락하거나 사회적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했던가. 거기에 목사들과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비유를 들자면, "어떤 사람이 열심히 노를 저었다. 그런데 그 배가 해적선이었다면?" 그 행위를 어찌 해석할 것인지. 그래서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했는지 모른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이러한 기회에 수많은 크리스천이 곡해하는 성공, 이에 대한 성경적 관점에서의 그 성격이나 의미에 대한 규정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사회적 성공에 대한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의 구분과 경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중요한 기준을 제시해 줄 것이다. 크리스천들은 신앙생활에 있어 수많은 관심사가 있다. 그중 중요한 한 가지가 바로 사회적 성공에 대한 관점이다. 이 사회적 성공이란, 개인에게 사적 이익으로서의 자기만족이나 성취도 중요한 만큼 사회적 평가나 검증도 중요하다.

이러한 성공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과는 무관하게도 이룰 수 있다는 점이다. 흔히 말한 사회적 지위나 위치, 성공을 엄밀하게 조명해 보면 자신에게 부여해 주신 하나님의 거룩한 소명이나 성경적 가치관이나 세계관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래서 올바른 성경적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요구된다. 예수님께서는 철저히 하나님의 뜻 안에서 모든 사역을 감당하셨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 17:4).

잘못하면 타락한 자기의 욕망이 목표 지향으로, 마음에 불타오르는 탐욕이 열정으로 변질될 수 있다. 궁극에는 반성경적 진리나 가치에 매몰되거나, 반사회적 행위에 천착할 우려도 있기에 성경적 분별과 경계가 요구된다. 신앙적으로도 성경 말씀은 "돈을 사랑함은 일만 악의 뿌리"(딤전 6:10)라고 했고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약 1:14,15)고 했다.

성경은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을 언급한다. 이 특별은총은 일반은총에 속하는 피조 세계에서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계시된 은혜이기 때문이다.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은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일반은총 영역은 일반은혜(common grace)이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은 자연법칙 속에 내재된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를 통해서 살고 있다. 일반은총의 과도한 강조는 특별은총의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 일반은총 안에서 세상을 보존하고 관리하라는 '문화 명령'은 인간이 죄악된 방향에서 하나님을 향할 수 있게 한다.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에 대한 분별과 이해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데, 모든 악보의 앞부분에 J.J.(Jesus Juva, 주여 도우소서)를, 마지막에는 S.D.G.(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를 기재하는 습관이 있었다. 이는 "예수님의 도움으로 작곡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의미와 "이 작품의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리겠다"는 의미가 함축된 것이다. 때로는 마지막에 "당신의 보좌 앞에 내가 섰나이다"라고 썼다.

바흐는 의도적으로 그의 음악을 성경 말씀과 관련지었으며, 자신의 신앙과 예술을 조화시키려고 했다. 그의 일상에서 영적이지 않은 것은 없었다. 바흐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마침표 찍으신 것을 당신이 물음표로 바꾸지 말라." 하나님의 뜻과 의지에 화답하는 인생이 복 있는 삶이다. 하나님은 항상 옳으시다.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에 감탄과 찬송으로 반응하는 인생이 행복하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일반은총으로 형성된 모든 산물들이 미래의 영광의 나라에 편입되어 간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은 서로 대립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특별은총을 기반으로 일반은총과의 균형을 잘 유지하는 것이 건강한 기독교 세계관이다.

특별은총은 구원의 은혜(saving grace)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함을 받은 것, 구속함을 믿고 확신하고 날마다 그리스도와 동행하고 체험하는 신앙이다. 구원의 은혜는 특별은혜(special grace)이다.

일반은총은 공공적(communal)인 은혜로 죄인의 구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웨슬리는 구원과 선재적 은총과 인간의 자유의지적인 응답과 책임으로 조명한다. 칼빈에게 구원은 특수한 부르심(소명), 또는 특별은총으로만 가능하다. 이는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에게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이다. 이 소명은 제한적이며 불가항력적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구원을 받는다. 일반은총은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 5:45).

성경에는 행위에 따른 보응의 원리가 있다.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일반은총의 섭리와 이러한 일차적 원리를 초월한 특별은총의 섭리가 있다. 전자는 극히 현세적으로 성도나 불신자들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선에 대해서는 보상적 보응이, 악에 대해서는 심판적인 보응이 따른다는 의미다. 후자는 내세적, 종말론적 차원이다. 성도들은 보응의 원리에 우선하는 구원받은 백성으로서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골 3:5,6).

일반은총에서의 예이다. "경제에는 기적이 없습니다. 오직 피와 땀이 있을 뿐입니다." <한국경제신문, 2015.12.27> 기사이다. "1990년 11월, 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예방을 받고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한국의 경제 발전을 치켜세웠다. 당시 정 명예회장은 시베리아의 천연가스를 블라디보스톡을 거쳐 한국으로 반입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소련을 찾았다. 이 자리에는 이명박 당시 현대건설 사장도 함께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칭찬을 받은 정 명예회장은 정색을 한 표정으로 '종교에는 기적이 있을 수 있지만, 경제에는 기적이 없다'며, '오직 피와 땀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현실에 적용할 때 "자식들 대부분을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했다"는 고 정주영 회장이야말로 신학자들보다 더 탁월한 성경 해석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세계적 기업이나 한국의 대기업들이 크리스천 기업이 아니어도 부와 경제력을 보유한 것이다.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은 교세라(교토세라믹)의 창업자로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이다. 그의 말이다. "훌륭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하는 사람이다. 상대에게 먼저 이익을 주면 결국 그 이익이 한 바퀴 돌아 나에게 기회라는 모습을 하고 찾아온다. 더 나아가서는 나 자신의 이익이 창출된다."

자동차를 만든 회사의 사장인 헨리 포드는 의사를 부르러 말을 타고 가는 도중에 그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말보다 더 빠른 것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품고 결국 자동차를 만들었다고 한다. 디트로이트 자동차 기념관에 가면 헨리 포드의 사진 밑에 이런 글귀가 있다고 한다. "The Dreamer(꿈꾸는 자)."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자를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잠 22:29).

'근실한 사람'(man who is skilled)은 수완과 기술이 능숙한 사람, 충실한 사람, 탁월하게 잘해 내는 사람, 부지런한 사람을 말한다. 이렇게 일반은총 영역에서 성공이나 축복의 관점에서 보자면, 교회에 다닌 사람, 교회에 다니지 않은 일반 사람들도 정직, 근면, 성실, 실력, 인격이 있다면 얼마든지 세상에서의 권력, 재력, 명예를 얻고 누릴 수 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도, 훌륭한 운동선수도 될 수 있다. 이 두 영역의 삶의 차이라면 바로 가치관, 관점, 세계관의 차이인 것이다.

'청지기 정신'이 성경적 가치관의 원칙이다

'부자와 나사로 비유'의 교훈이(눅 16:19~31) 있다. 사람이 죽은 다음에 어떻게 평가되는가 그 예를 보여 준다. 부자의 집 대문 앞에는 나사로라는 거지가 있었다. 헌 옷에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고 했다. 개들까지도 와서 그의 헌 데를 핥을 정도로 비참했다. 부자는 날마다 호화로운 연락을 누리면서도 대문 밖의 굶주림에는 눈을 감았다. 가난한 자를 돌보라는 율법과 선지자의 외침을 무시했다.

그 거지는 죽어서 천사들의 인도로 천국의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었고, 부자는 지옥의 불구덩이로 갔다. 부자는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며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보내서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서 내 혀를 시원하게 해 달라"고 애원하나 거절당한다. 아브라함은 지상에서 부자의 삶을 정리한다. "되돌아보아라. 살아 있을 동안에 너는 온갖 호사를 다 누렸지만, 나사로는 온갖 괴로움을 다 겪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는다. 천국과 지옥은 왕래할 수 없는 곳이다." 이 비유는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기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경고이다. 겉으로는 의인 행세를 하지만 속에는 탐욕이 가득한 그들의 위선을 고발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 출생과 삶의 방향에 관하여(삼상 16:1), 생명과 운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삼상 2:6), 세상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삼상 2:7,8), 자기 백성을 지키시는 하나님(삼상 2:9),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삼상 2:10)이다. 국가의 일에 대하여(욥 12:23; 행 17:26), 우주 전체에 대하여(시 103:19; 엡 1:11), 물리적 세계에 대하여(욥 37:15,10; 마 5:45), 동물계에 대하여(시 104:21,28; 마 6:26) 관여하시며 주권적인 통치를 행하신다.

문제는 일반은총을 특별은총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부자나 재벌이 되거나, 사회적 성공은 특별은총인 구원과는 다른 차원의 은총인 것이다. 두 가지 은총의 영역을 구분하고 각 영역에서의 자기 사명과 역할을 아는 것은 중요한 삶의 기준이 된다. 그래서 사람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기준으로 평가받게 된다. 이 땅에서의 모든 삶과 경제활동도 나중에 심판대에 서게 될 시점에 모든 것이 드러난다. 막스 베버는 기업인들이나 정치 리더들이 이러한 의식을 적용할 때 온전한 기업 윤리나 정치 윤리가 실현되고 스스로를 강제할 수 있다고 했다.

청지기 정신이 성경적 가치관의 원칙이다. 하나님이 주신 권력(단 2:21), 재물(전 2:26), 지식(잠 2:6), 달란트(마 25:15), 환경(창 1:26) 등을 잘 사용하고 창조적으로 확대재생산하고 지혜롭게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경제란 용어의 '이코노미(economy)'의 어원적 의미는 헬라어 오이코노무스(oikonomous)에 근거를 두고 있다.

'집'을 뜻하는 오이코스와 '법', '규제 또는 규칙'을 뜻하는 노무스가 합쳐진 합성어로 '가정과 가족을 맡은 자'를 뜻한다. '오이코스'는 '집, 성전, 거하실 처소, 건물'이라는 뜻한다. 교회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인 '권속'도 오이코스의 파생어인 오이케이오스이다. '가족의 일원'이라는 뜻이고 '건물'도 오이코스의 파생어인 오이코도메이다. 이는 건축물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하나님의 '경륜'은 '오이코노모아'이다, 경제정책, 경제계획을 의미한다. "집을 운영하다, 관리하다"는 뜻이다. 즉 하나님의 경륜은 "하나님의 집을 운영하는 계획"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 집안의 행정 관리 및 재정을 맡아 관장하는 '지배인' 또는 '관리인'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의 바른 경제관과 윤리관 위에서 모든 경제활동과 삶을 영위해야 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님의 경제계획으로 우리는 '시민권자들'(엡 2:19)이 되었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 나라의 경제계획'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피조물을 관리할 권세(창 1:28)를 사람에게 주셨다. 청지기, 권한의 대행자인 것이다.

사명 감당을 위한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재주'

청지기 역할을 잘 수행한 자를 칭찬한다. 청지기의 가장 중요한 성품은 충성심이다. 충성은 하나님께 먼저이고 부모, 국가나 소속된 단체에 헌신하는 것이다. 리더는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사명과 목적에 절대 충성을 다해야 한다. 개인의 명예나 지위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공동체를 위해서라면 자기희생의 결단이 필요할 때도 있다. 희생이 없는 충성이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명과 직업, 주어진 일을 통해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과 세계를 돌아봐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 확연하게 나타나게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헌신하고 충성해야 한다. 이러한 성실하고 정결한 수행 과정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총으로 주어진 일과 자아실현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나의 진정한 나 됨이 나타나고 실현된다. 일과 돈의 기준이다. 돈이 모든 직업과 일에서의 선택 기준이라면 그것은 단순한 직업이다. 그래서 일과 과업이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고 사명과 연결돼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중요한 사역을 감당하도록 사람을 부르신다. 유다 지파 사람, 훌의 손자이며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셔서 그에게 하나님의 영을 가득하게 하시고, 지혜와 총명과 온갖 지식을 갖추게 하셨다. 여러 가지를 생각해 내어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고, 온갖 기술을 발휘하여 보석을 깎아 물리는 일과 나무를 조각하는 일을 하게 하셨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와 단 지파 사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에게는 남을 가르치는 능력도 주셨다.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출 31:3).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재주로"는 NIV에서는 이렇게 "skill, ability and knowledge in all kinds of crafts"로 나온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충만해져 그들에게 더해진 'skill(기술)'과 'ability(능력)'이다. 하나님 안에 있어야만, 하나님의 영, 성령이 충만하게 되는 것이 skill과 ability를, 지혜와 총명을 얻는 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들어 쓰시는 사람들을 지명하여 하나님의 영을 충만하게 하면, 그 사람을 지혜와 총명으로 가득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명과 일을 이루도록 도우신다.

지혜는 히브리어로 '호크마'라고 한다. 현명해지다, 명철, 다양한 학식, 실제적인 지혜를 의미한다. <호크마 종합 주석>에서 정의한 지혜다.

"성경적인 지혜란 단순히 기교적인 지식이나 사변적인 학식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이는 초인격적인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올바로 유지시켜 주는 이론적인 총명함과 명철함, 실천적인 유능함과 슬기로움, 도덕적인 성실함과 정직함, 영적인 온전함과 청결함을 총체적으로 의미하고 있는 말이다. 이러한 지혜는 결코 세상에서 얻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 얻을 수 있다."

황준배 / 목사(교회 개척, 선교 사역을 해 왔지만 비정상적 한국교회에서 성경적 원칙에 입각한 정상적인 목회가 힘들다고 생각, 스스로도 자격 미달이어서 목사 직분을 내려놓을까 기도 중). <카리스마적 리더십>, <통일과 크리스천 리더십>, <기도와 크리스천 리더십>, <인생성공의 7대 비결>, <SQ영적지수>의 저자. 성경적 세계관(정치, 사회, 경제, 통일, 리더십)을 정립하는 '소셜 디자인'(Social Design)을 위해 강의하고 칼럼이나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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