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목사는 목회만 해야 할까?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없어진 요즘 사회에서, 목사는 설교하고 교인 돌보는 역할만 해야 할까.

교회 생태계가 변하고 있다. 교회 밖에서 활동하는 목사도 많아졌다. 도서관지기, 바리스타로 변신한 목사도 늘고 있다. 목회자 이중직은 교회 안팎에서 꾸준히 논의되고 있지만 깊이 있는 담론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중직을 단순히 생계 수단으로 이야기할 때가 많다.

10월 17일, 비영리단체 실무자에게 전문 지식을 전하는 공익경영아카데미가 열렸다. 이날은 특별히 이중직에 관심 있는 목회자를 위한 자리였다. 생계 수단이 아닌 다중 소명 차원에서 이야기를 풀어 갔다.

현장에는 10여 명이 참가했다. 난민을 위한 비영리 기관을 세운 사역자, 목회와 심리 상담을 함께하는 목사, 노숙인 돕는 활동을 하고 싶은 개척교회 목사, 다중 소명에 관심이 있는 교인이 왔다.

▲ 공익경영아카데미가 다중 소명을 지닌 목회자를 위한 자리를 준비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1회 강의는 주로 거시적인 측면을 다뤘다. '비영리운동의 새로운 기회, 협동조합', '교회 밖 세상에서의 역할'을 주제로 이야기했다.

최혁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전 본부장이 나와 '사회적 협동조합'을 소개했다. 협동조합은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시스템이다. '선키스트', '제스프리 키위'가 한국에 잘 알려진 협동조합이다. '공동 소유, 민주 운영, 자율적 단체'가 협동조합의 특징이다.

초창기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인건비나 원자재 가격을 낮춘다. 결국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원자재를 제공하는 농어민은 노동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자 노동자, 농어민들이 스스로 권익을 지키기 위해 출자금을 걷고 회사를 세우기 시작한 것.

물론 협동조합에도 부작용은 있다. 자본주의 기업에서는 이윤 창출이라는 공동 목표가 있지만 협동조합은 아니다. 각자가 다 다르다. 안정된 생활을 원하는 사람, 삶의 가치를 높이고 싶은 사람 등 여러 관심사가 있어 이를 조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럼에도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언급된다. 먹거리, 은행, 보험, 병원 서비스 등 한국 사회는 거대 기업 중심으로 운영되는 분야지만, 해외에서는 협동조합이 활동 중이다. 

▲ 최혁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전 본부장은 기독인들에게 협동조합을 소개했다.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기독교사회적기업지원센터'를 안내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기독교, 협동조합과 만나다

최혁진 전 본부장은 지역사회에서 공익 활동을 하려는 교회에 협동조합을 권했다. 돈이 아닌 인간에게 권력을 부여하자는 협동조합은 기독교 가치와 부합하는 면이 있고, 협동조합의 역사를 봐도 기독교가 미친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성과 경제활동이 만나는 지점에 협동조합이 있다"고 말했다.

최 전 본부장은 스페인 호세 마리아 신부와 일본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를 예로 들었다. 호세 마리아 신부는 몬드라곤 청년 실직 문제를 고민하다 몬드라곤협동조합을 1956년 설립했다. 일자리가 없어 청년들이 마을을 빠져나가는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위한 대안으로 협동조합을 세운 것이다.

그는 인간은 하나님을 닮은 존재라고 말하면서, 처참한 노동 현실을 개선하는 데에는 왜 침묵하는지 교회에 질문을 던졌다. 하나님 닮은 존재에 걸맞은 노동을 창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현재 10만 명이 근무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간 한 사람도 해고하지 않았다.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는 일본 협동조합의 아버지로 불린다. 신학을 공부한 뒤, 일본에서 빈민 운동을 했지만 빈민이 사라지지 않는 상황을 목도했다.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현재 일본은 소비자 협동조합원이 6,700만 명에 달한다. 일본 인구 중 절반이 조합원이다.

최혁진 전 본부장은 협동조합을 시도해 보려는 기독인들에게 '기독교사회적기업지원센터'를 소개했다. 기독인을 대상으로 강의 및 워크숍을 진행하고, 다양한 사례를 접할 수 있다고 했다.

강의를 들은 한 목사는 "노숙인 돕는 사역을 하고 싶다. 이런 사역은 후원금이 없거나 어려움에 부딪히면 금방 지치게 되더라. 수익 창출을 위해 협동조합을 생각했다. 실제 알아보니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다. 강의가 개척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 도움과나눔 최영우 대표. 그는 목회자들에게 사회와의 연결을 강조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내 위치를 잊고, 사회와 연결되자

도움과나눔 최영우 대표는 다중 소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최 대표는 '망각'과 '연결'을 강조했다. 그는 마태복음 6장 3~4절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를 언급했다. 오른손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모르게 하라는 말씀을 하셨을까.

위 구절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남에게 선을 베풀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최영우 대표는, 말씀이 뜻하는 바는 자신이 목사라는 사실과 타인을 돕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교회, 기업, 사회에서 목사가 '목회자'라는 정체성을 잊을 만큼 하나님나라에 깊게 몰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회와 사회의 연결을 강조했다. 사회와 분리되어 자신만 보살피는 예배를 위해 교회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하나님 역사는 교회 밖에서도 일어나고, 목회는 우주를 회복시키는 하나님과 연결돼 있음을 지적했다.

"한국교회는 고립된 섬이 됐다. 사회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참가자가 던진 질문에 최영우 대표는 예배를 답으로 꺼냈다. 교인이 자신의 삶, 의문과 고민을 유보하지 않고 기도, 예배 자리에 가져오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에서 살고 있는 교인이 회복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모든 교회가 교육, 사회복지에 투자하는 모델을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진 않았다. 존재의 역설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업을 진행한다고 교회가 맡은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생계 수단으로만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지속 가능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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