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 '다가오는 것들'(L’avenir, 2016) 일부 장면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어머니의 급작스런 죽음, 25년간 같이 살았던 배우자와의 파경, 아꼈던 제자와의 사상적 엇갈림. 어머니 장례식을 치르고 난 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창가에서 풍경을 바라보다 우연찮게 남편의 외도를 목격하듯이, 절규의 순간은 우발적으로 찾아온다. 이 같은 순간을 연속적으로 겪으면 울부짖기보다 그 어처구니없음에 되레 헛웃음을 내뱉게 된다. '다가오는 것들'의 주인공 나탈리(이자벨 위페르 분)처럼.

황혼에 이르기까지 견고하게 쌓아 온 '일상'은 모래성처럼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다. 그녀는 외도를 고백하는 남편에게 왜 그걸 말하느냐고 모른 척 살 수는 없었느냐고 되묻는다. 일상의 안온함과 평온함을 지키고 싶었던 것.

이전까지는 매번 히스테리로 그녀를 곤혹스럽게 하는 어머니만 유일한 걱정거리였다. 고등학교 철학 교사로서, 한 남편의 아내와 두 남매의 엄마로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일상은 덧없이 무너져 내린다.

▲ 나탈리는 자기 자신을 덮치는 상실들 앞에서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다. 조용히 삭이면서 몸과 마음을 추스릴 힘을 비축한다. ('다가오는 것들' 스틸컷)

영화는, 우리에게 급작스럽게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언제든 현재의 위치를 흔들 수 있는 것들이다. 그것은 한꺼번에 올 수도 있고, 하나씩 올 수도 있다.

'다가오는 것들'은 이런 순간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 것인지 보여 준다. 그녀는 생각보다 의연하게 현실과 대면한다. 그게 삶의 당연한 단면이라는 듯. 남몰래 눈물도 흘리고 힘겨워하지만, 결국 받아들여야 하는 것임을 알기에 제자리를 찾는다.

영화는 그녀가 울음을 터뜨리는 손주를 안고 달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끝난다. 삶이란 결국 불확정성 속에서 울고 있는 자기 자신을 어르고 달래며 주어진 길을 있는 그대로 걸어가는 것이다.

이제 막 새로운 세상을 접한 갓난아기처럼, 생의 비극과 마주하는 것은 낯선 환경 속으로 던져지는 것이다. 어머니 장례식을 집전하는 신부의 강론이 낯선 환경 속에 던져지는 것을 어떻게 견딜 수 있는지 힌트를 준다.

신부는 말한다. "신앙은 의혹, 질문과 엮여 있다." 이 명제에서 '신앙'을 '삶'으로 바꿔도 문제 될 것 없다. 의혹,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고 신앙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때, 이 자명한 진실을 받아들일 때 살아 내는 것이 가능하다.

견뎌 내며 그렇게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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