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성식 씨는 학원 강사, 교육 사업 모두 관두고 한국사 대안 교과서 <생각이 자라는 한국사>를 출간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문성식 씨(33)는 최근 <생각이 자라는 한국사 ⓵>(단군과제우스)을 출간했다. 사설 학원에서 역사를 가르치면서 참고 자료를 만든 적은 있지만 직접 책을 만든 건 처음이다. 원고 쓰기부터 편집, 출판까지 모두 도맡았다. 현재 문성식 씨는 1인 출판사 '단군과제우스' 편집자 겸 대표를 맡고 있다.

문성식 씨는 대학에서 역사교육을 전공했다. 같은 과 선후배, 동기 중 절반은 역사 선생이 되었고, 일부는 대학원생, 다른 일부는 입시 학원 강사가 되었다. 나머지는 공무원 시험에 뛰어들었다.

그는 졸업하자마자 사설 학원에 강사로 들어가 토론과 논술, 역사를 가르쳤다. 금방 일에 적응했다. 수업하면서 학생들과 토론하는 시간이 좋았다.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익히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뿌듯했다.

하지만 곧 한계에 부딪쳤다. 원장과 학부모는 입시를 위한 교육을 원했다. 시험관이 좋아하는 대답, 시험에 나올 만한 내용, 높은 점수를 받는 방법에 모든 초점이 맞춰졌다. 싫증과 염증을 동시에 느낀 문성식 씨. 3년 일하다 그만뒀다.

"수업하면서 만난 중·고등학생들은 역사를 어려워했어요. 연도·인명·지명 등 암기할 게 많거든요. 고대국가 제도나 문화를 어렵게 생각했죠.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흥미를 가질까 생각했어요. 직접 보고 만지며 역사를 체험하게 하자. 그렇게 '에픽토리아'를 만들었어요."

에픽토리아는 현장학습 기획을 대행하는 회사다. 박물관, 전시관, 유적지에서 체험 학습하는 교육과정을 만들어 학교에 제공한다. 부모, 친구와 함께 떠나는 여행 상품도 개발했다.

스마트폰으로 쉽게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도 제작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움직이며 공부하고 퀴즈도 풀 수 있다. 한국관광공사, 중소기업청이 국가 지원 사업으로 채택해 1억 원을 지원할 정도로 콘텐츠가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마케팅에 있었다.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팔지 못하면 무용이었다. 홍보·영업을 잘 못해 실적이 나오지 않았다. 계속 적자를 이어 가다 창업한 지 2년 반 만에 사업을 접었다.

이번에는 책을 만들어 보자

나이는 서른을 넘겼고 옆에 결혼할 여자 친구도 있었다. 안정된 소득이 필요했다. 다시 학원에서 교편을 잡을까, 고민이 깊었다. 문 씨는 한 번만 더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한국사 대안 교과서를 만드는 일이었다.

선사시대부터 현대사를 망라하는 국사책을 홀로 만드는 건 불가능한 일. 집필진을 구하기 위해 동문을 찾았다.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김용천, 손석영 씨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이민재 씨가 반응을 보였다. 네 사람은 2015년부터 수시로 만나 책을 구상했다.

"크게 읽기와 토론 두 가지에 집중했어요. 교과서가 좀 딱딱하잖아요. 생소한 용어가 자주 등장하니 재미가 없죠. 마치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문체를 구어체로 했어요. 역사 속 인물이 등장해 직접 말하는 부분을 넣어 극적인 효과를 살렸죠. 참고 사진과 삽화를 추가해 이해도를 높였고요.

토론을 강조했어요. 역사교육은 과거를 돌아보며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하는 교육이에요. 각 장에 토론 질문을 두었어요. 학생들에게 여러 입장을 제시하고 너희는 어디에 동의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하도록 하는 게 목표에요."

▲ 문성식 씨는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사고하는 법을 기르기 위해서는 토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시민들 제작에 참여해 함께 만든 '대안 한국사 교과서'

좋은 의도를 갖고 시작했지만 출판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올해 초, 초고를 들고 중·대형 출판사를 찾았다.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웬만한 출판사들은 이미 한국사 총서를 갖고 있는데, 이를 두고 새로 발간할 정도로 저자들 인지도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앞이 안 보였다. 그렇다고 이제 와 포기할 수도 없었다. 결국 직접 만들기로 했다. 컴퓨터 학원에 등록해 편집 디자인을 배우고, 제작에 필요한 사진·폰트 등을 구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다. 몇몇 유적지와 유물은 직접 촬영했다.

제작비 마련이 큰 과제였다. 역사책은 고화질로 컬러 출력을 해야 해서 인쇄비·재료비가 만만치 않다. 삽화가에게 줄 인건비도 필요했다.

고민 끝에 펀딩을 요청했다.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https://www.tumblbug.com/)에서 '대안 한국사 교과서 만들기'라는 제목으로 시작했다. 결과는 대박. 2016년 3월부터 두 달 동안 펀딩한 결과, 263명이 목표액 1,100만 원을 후원했다.

"예상 외였어요. 목표액을 채우자 기쁨보다 걱정이 컸어요. 사람들이 우리 취지에 공감해 줘서 힘을 얻었지만, 이제는 정말 제대로 해야겠구나 하는 부담이 들었죠. 문장 하나도 몇 번이나 확인했어요. 고려대 사학과 박사 과정에 있는 분들에게 검수를 받고, 저희를 지도한 교수님에게 감수를 의뢰했어요. 지적받고 고치는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했죠."

▲ 혼자서는 책을 만들 수 없었다. 동문들과 함께 집필을 하고, 시민들에게 후원을 받았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서점 역사 코너에 가면 대안 한국사 책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생각이 자라는 한국사>가 다른 책들을 제치고 어떤 면에서 '대안' 교과서가 될 수 있는지 물었다. 문성식 씨는 "대안 교과서요? 펀딩할 때 그런 용어를 쓰긴 했지만, 송구스러울 뿐이에요" 하며 한 발 물러선다.

"그저 대안적 성격을 지녔다고 하고 싶어요. 쉽게 읽을 수 있는 구어체로 쓰였고 토론을 적극 권장하고 있으니까요. 요즘 역사책이 많이 출간되고 있어요. TV에 나오는 유명한 역사 선생님이 쓴 책도 많고요. 자기만의 스토리텔링 기법을 개발해 역사를 재밌게 소개해요. 이런 책들이 앞으로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스마트폰 시대, 오감으로 학습하는 교과서

<생각이 자라는 한국사⓵>은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를 다룬다. 문성식 씨는 앞으로 5권을 더 출간할 생각이다. 펀딩해서 받은 돈은 첫 번째 책 제작비와 인건비로 썼다. 두 번째 책부터는 출판물로 낸 수익으로 제작할 계획이다. 1년에 1~2권씩 내는 게 목표다.

학원으로도 다시 돌아갔다. 자신의 교육 방식에 동의해 주는 원장 선생님을 만나, 학생들과 토론 방식의 역사교육을 하고 있다. 책을 만들때 실제 학생들이 어떤 교육을 원하는지 알아야 했다. 문 씨는 "학생들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책을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직 먼 얘기지만 디지털 교과서도 구상 중이다.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다. 음악을 듣고 영상을 보는 건 기본이다. 올해 초 전 세계가 열광한 게임 '포켓몬 GO'처럼 증강 현실(VR) 기술로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도 있다. 이런 기술을 활용하면 학생들이 오감으로 학습하는 교과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요즘 증강 현실, 맵핑, 위치 기반 서비스 같은 기술이 발달해서 이를 교육 현장에 활용하면 학생들이 쉽고 재밌게 학습할 수 있어요. 역사 뿐 아니라 철학, 미술, 문학 디지털 교과서도 만들고 싶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후회해요. 괜히 강사를 관두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닌지. 이왕 시작했으니 학생들을 위한 교육 자료를 계속해서 개발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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